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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고향, 독일 칼브

Joyfule 2008. 6. 16. 01:09

헤르만 헤세의 고향, 독일 칼브 

 

헤르만 헤세의「수레바퀴 밑에서」에 등장하는 독일 칼브 니콜라우스 다리와 예배당.
 헤르만 헤세는 1877년 7월2일 서부 독일의 작은 도시 「칼브(Calw)」에서 태어나, 1962년 스위스 몬테뇰라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살았다.
 
  그는 유서 깊은 神學者(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끝내 신학자의 길을 저버리고 문학·그림·음악 등 예술에 열정을 몰입하며 살았다. 그의 아버지 요하네스는 新敎(신교)의 목사였고, 어머니 또한 유서 깊은 신학자의 딸이었다. 특히 헤세의 외조부인 헤르만 군테르트는 우수한 신학자로 인도에서 수년간 포교활동을 했으며, 그의 성품과 종교적인 열정은 헤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니콜라우스 다리 위에 세워진 헤세의 동상.

  헤세는 네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스위스 바젤로 이주했다가 아홉 살 때 다시 칼브로 돌아와 청소년 때까지 줄곧 고향에서 보냈다. 열네 살 때는 라틴어 학교에 입학해 모범적인 학생으로 자랐으며, 이듬해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해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선천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천재 문학가였다. 사춘기 시절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을 하다가 신학교 기숙사를 번번이 탈출해 1년도 못 되어 퇴학을 당했다. 그 후 헤세는 서점의 견습원으로 일하다가 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했지만 거기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1년 만에 퇴학당했다.
 
헤세박물관에 전시된 헤세의 의자, 모자, 옷 등 생활용품.

  청소년 시절은 그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며 정신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다.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헤세는 병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칼브의 시계공장에서 3년간 시계 톱니바퀴를 닦으면서 보냈다. 이때부터 헤세는 틈틈이 짬을 내어 문학에 열중했다.
 
  스물두 살 때 헤세는 스위스 바젤로 떠나 라이히 서점에서 점원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릴케에게 인정을 받았다. 스물일곱 살 되던 해 헤세는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카멘친트」를 발표하면서 문학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헤세의 친필 원고.

  또한 그해 헤세는 9년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한 후 가이엔호펜으로 이주해 문학에 전념했다.
 
  한평생 굴곡의 인생을 살아온 헤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문단과 출판계로부터 「나치주의를 외면한다」는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광신적인 폭정과 인간성의 말살로 무장된 나치주의에 대한 저항은 그의 문학 인생에서 아주 어려운 고난의 시간이었다. 문학과 그림에만 몰두하던 그는 1962년 8월9일 세상을 떠났다. ●
 
스무 살 청년 헤세의 모습.

마울브론 신학교에 다닐 때 사용하던 책걸상.

헤세박물관 내부.

편지, 그림 등 헤세의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 내부.

박물관에 전시된 헤세의 사진과 동상.

헤세의 안경.

헤세가 노년에 사용했던 타자기.

     

    사진·글 : 許勳 사진작가

     

      

     

     

      

    Sonata for Arpeggione and Piano in A minor, D.821

    ◁Franz Peter Schubert(1797~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