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마음의양식

혼자 읽기는 아까워서...

Joyfule 2005. 7. 28. 01:33




요한 세바스찬 바흐,
오르간을 위한 코랄 전주곡 BWV 731
"Liebster Jesu, wir sind hier"
사랑하는 예수님, 우리는 지금 여기에 왔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오르간 (1935년 녹음)




      우리 어릴적에 `누구를 존경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죠.
      나는 대책없이 슈바이처와 베토벤을 자주 들먹였던 것 같습니다.

      바흐의 오르간 음악을 듣다가 불현듯 슈바이쩌가 생각났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슈바이쩌는 생명외경사상을 정립한 철학자요,
      또 신학자, 의사로써 평생을 쉬임없이 각계각층에서 부지런히 활동했었고
      또한 그 만큼 성과도 혁혁히 올렸던 사람이죠.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슈바이쩌가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였다면
      과연 그 사실을 믿을 수 있겠어요? 믿거나 말거나..,
      슈바이쩌는 바흐 음악에 특출난 실력을 보였던 음악가였답니다.
      그것도 동네 예배당에서 아는 사람들 몇 앉혀 놓고서 연주회를 갖는
      그런 서투른 아마추어가 아니고, 나름대로 독자적인 연주자의 계보를 갖을 만큼
      프로펫쇼날한 바흐 스페셜리스트였대죠.

      오아시스 레코드사(지금도 있나?)에서도 1950년대에 녹음했던
      그의 LP레코드가 발매된 적이 있을 만큼, 그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가히 대가의 평판을 들을 정도였다는 거죠.

      누가 만일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슈바이쩌를 들어서 증명한다면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요. 그 정도로 그는 인생과 학문,
      그리고 예술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가졌었고, 또 아는 만큼 실천을 했던
      용기와 성실함을 겸비한 사람이었다는 건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죠.

      그런데, 그가 보따리 싸 짊어지고서 아프리카의 오지마을로 의료봉사를 하러 들어갔을 때,
      그가 아끼는 파이프 오르간까지 함께 챙겨서 가져갔다는 얘기를 나는 못들었습니다.
      기타 한 대, 피아노 한 대라면 가져 갈 수도 있었을런지 모르죠.
      허지만 음악에 관심이 조금 있거나 교회에 나가시는 분은 알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교회의 box형 전자 오르간과는 달리 파이프 오르간의 규모는 정말 엄청난 거죠.
      오죽하면 파이프 오르간을 만들 때 서양에서는 make가 아닌 build로 표현하겠습니까?

      그렇게 슈바이쩌는 문화적 토양이 비옥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또 성장했던 인간이었던 즉,
      그 오지마을의 척박함과 고즈녁함이 온몸을 파고 들 때 왜 오르간 연주의 유혹이 없었겠습니까?
      그래도 그는 그 유혹을 잘 이겨내고 자신의 생명에의 존경과 사랑을 실천하는데 꿋꿋했었다는 거죠.

      예술가들은 비교적 창조적이고 감성적인 반면, 그 경향의 역작용으로
      즉흥적이며 자유분방한 기질 또한 만만치 않다더군요.
      그래서 대부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헤메는 경향이 없지않다는데...
      (그런 갈등과 방황의 소산으로 예술작품이 나온다는 게 그들의 아픔이겠죠.)
      음악감상을 아주 좋아하는 나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음악을 단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금단증상 비슷한 방정을 떨며, 금방 음악을 찾게 돼죠.

      하물며 슈바이쩌야... 그런데 슈바이쩌의 그런 음악고픔은 하루 정도가 아니었죠.
      듣는 사람을 고막이 아닌 영혼까지 떨리게 만든다는 그 파이프 오르간,
      천정 높은 예배당 안을 가득 채우는 그 육중한 페달 진동음을 오랜 세월동안
      그저 꿈속에서만 느끼며 아름다움에 대한 유혹과 아쉬움을 이겨내야 했겠죠.

      그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 소소한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싶은 일`과 `해야만 할 일`에 대한 순서를 그는 가려서 정할 줄 알았고
      또 일상 가운데 인내하며 그 순서를 지킬 줄 알았다는 겁니다.
      고향에서 엘리트로 보장받을 수 있었던 독일의 여러 상류생활을 마다하고
      우리 범인들은 정말 상상키 힘든 경지의 절제된 삶을 살면서
      자신의 삶의 철학을 실천하는데 매진한 그였기에, 그는 존경받아서 마땅한 거죠.

      교육이 별건가요? 바로 이런 삶의 태도를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또 학교와 사회가
      스스로들 먼저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꾸준히 자식들의 몸에 베게끔 하는게 아닐런지요.

      교육이네, 절제네 뭡네.. 하고 이렇게 나불대고는 있지만 정작 나는,
      하다못해 원숭이가 삐에로 흉네내듯이라도 슈바이처 흉내 한 번 내보지도 못하고,
      회한 속에 속절없이 이렇게 또... 하루가 늙어가버리는군요.

                         "To sir with love, Dr.Schweit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