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득한 - 마종기
야 정말, 잎 다 날린 연한 가지들
주인없는 감나무에 등불 만 개 밝히고
대낮부터 취해서 빈 하늘로 피어 오르는
화가 마띠스의 감빛 누드, 선정의 살결이
그 옆에서 얼뜬 미소로 진언을 외우는
관촉사 은진미륵 , 많이 늙으신 형님
야 정말 잠시 은근히 만져보기도 전에
다리 힘 다 빠져 곱게 눕는 작은 꽃
꽃잎과 씨도 못 가린 채 날아가버리지만
죽은 풀 시든 꽁가지 잡초 씨까지 모두 모아
뜨거운 다비에 부쳐 사리나 찾아보고
연기냄새 가볍게 껴안고 꽃을 떠날밖에
저 산에 흥청이는 짙은 단풍에 비하면
옳다 우리들의 일상은 너무 흐리다
산 너머 저쪽빛 바다에 비하면 옳다
우리들의 쪽배는 너무나 작다
그러니 살아온 평생은 운명일밖에
눈을 뜬 육신의 마주침도 팔자일밖에
멀고 가까움, 높고 낮음이 가늠되지 않는
야 정말 아득한 것만 살아남는 이 가을
어렵게 살아온 천지간의 이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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