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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있음에 감사하라.

Joyfule 2019. 2. 20. 13:20




 
    고통이 있음에 감사하라.



오늘 칼럼은 필자가 사역을 하면서 느끼는 일상의 생각을 옮긴 것뿐이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가 문자가 와 있었다. , 이런 일은 필자의 흔한 일상이다. 사람들이 필자의 전번을 수도 없이 요구해서, 개인적인 평안한 삶에 막대한 지장을 입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전번을 인터넷에 도배해 놓았으니까 말이다. 얘긴즉슨, 귀신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충주까지 가는 것은 무리여서 서울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이 없냐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인터넷의 칼럼과 블로그에 정신질환과 고질병은 물론,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드리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친 결과이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전화나 문자, 카톡이 도착하고 있다. 그 내용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한결같다. 영성학교에서 기도훈련을 하면 해결 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필자의 얘기를 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 그래요. 꼭 영성학교에 가서 기도훈련을 받아야 되나요? 다른 방법은 없나요?”라며 되묻는다. 자신의 생업과 자녀를 돌보아야 되므로, 혹은 자가용이 없어서, 혹은 자신이 사는 곳과 거리가 멀어서와 같은, 충주에 갈 수 없는 다양한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아니면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그게 끝인 사람도 허다하다. 필자가 이 말은 하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거나 희생을 치를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충주 영성학교에 와서 기도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대답에, 사람들이 오해를 하거나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적지 않다. 영성학교로 불러들여 헌금을 요구하거나 필자의 교세(?)를 확장한 불순한 의도를 감추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영성학교가 문을 연지 4년이 가까웠으며,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으니까 영성학교에서 그런 요구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요구에 시큰둥하게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직도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아서이다. 말하자면, 아직은 살만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을 보라. 소경 바디매오, 귀신들린 딸의 어머니인 수로보니게 여인, 간질을 앓는 아들을 둔 아버지,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병자, 황폐한 인생을 살았던 수가성 여인 등, 그들은 이 땅에서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고 여겼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명령에 즉각 그리고 군말 없이 순종하고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신의 민족이 개로 비하되는 멸시를 참고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태도를 보라. 사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불구를 회복시킨다는 소문이 유대전역과 사마리아는 물론 이방인 지역에까지 펴져나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한줄기 희망의 빛을 안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다. 예수님이 오죽했으면, 그들이 여러 날을 굶어서 기진할 것을 염려하셔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겠는가?

 

그러나 이시대의 우리네 교인들은 자신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 받을 것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희생과 고통을 걸머져야 한다고 하면, 손사래를 치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그동안 우리네 교회에서 들어왔던 교육이 남긴 쓰레기이다. 교회에 오기만 하면 손쉽게 구원을 받고, 주일성수만 하면 손쉽게 축복을 받고, 설교를 듣기만 하면 손쉽게 위로와 격려를 마구 마구 쏟다 부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아무런 희생과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기회가 나면 으레, 예수님은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고 공짜로 구원과 축복을 주신다고 노래를 불러대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있는 현실을 보라. 요즈음은 교회개척을 하면 거의 대부분 폐업(?)신고를 하고 있다. 왜 그런지 아는가? 하나님이 교회를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자립교회의 담임목사들이 빈곤층과 극빈층 사이에 내몰리고 있다. 그들이 말한 대로, 교회에 오기만하면 하나님이 축복을 쏟아부어주셨다면, 왜 인생을 하나님께 바친 목회자들이 피폐한 영혼과 황폐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그래서 필자는 고통에게 감사하고 있다. 필자가 삼십대 초반에 사업실패로 인생이 마구마구 떠내려가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을 턱이 없다. 성령께서 필자에게 기도와 고난은 정비례한다고 말씀하셨다. 필자의 인생이 불 위에 앉은 것과 같은 고통이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10년간 지속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필자가 무얼 요구해도, 지금의 삶이 지옥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군소리 없기 순종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내용을 잘 살펴보라. 온전한 믿음, 완벽한 말과 행동, 거룩한 성품, 쉬지 않는 기도, 모든 계명에 순종하고 모든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할 것을 명령하고 계시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이런 명령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떤 사람은 일요일에 한 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을, 어떤 사람은 그 위에 십일조와 교회봉사를, 어떤 사람은 그 위에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을 더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교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과 진배없이 건조하고 메마른 영혼으로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하나님은, 세상의 축복과 세속적인 성공을 얻기 위해 교회마당을 밟는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만 목회성공을 바라는 삯꾼목사들만 이들의 지갑을 털기 위해 감언이설로 값싼 축복과 공허한 구원을 마구마구 쏟아 부어 주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필자가 사역을 진행하면서, 불티가 나는 고통스런 인생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만이 희생을 껴안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고통스런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기는 하지만 희생과 대가를 치를 생각이 없다. 그들이 이 땅에서 현재의 고통을 견딜만하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옥에 던져지면 생각이 확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견딜 수 없는 현재의 고통에 감사하시기 바란다. 그 고통이 당신에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