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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야기를 하는 목사가 살아남는 법

Joyfule 2019. 8. 7. 22:50



 
    귀신이야기를 하는 목사가 살아남는 법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시대는 과학문명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더불어 황금만능의 물질주의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돈이 우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시대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사상이다. 그래서 자신을 중심으로 온 우주와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이 세 가지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주요한 사상들이다. 이 사상의 틈바구니에서 귀신이야기를 하는 목사가 설 땅은 좁디좁다. 그래서 오늘은 이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왜 하나님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교회가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가고 있는지 아는가? 그 이유가 바로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사상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판단하는 법을 배우게 되며, 평생 동안 이 사고방식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적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교회에 오면 영적인 사고방식을, 세상에 나가면 위에서 말하는 세상적인 방식을 말이다. 그래서 영적인 이야기는 예배의 설교시간에 듣는 성경의 내용에 족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세상에 나가면 세상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교회를 움직이는 원리도 세상의 법칙이 주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회성장이라는 말은 교인수가 많아지는 것을 말하고, 전도의 방식은 다단계 사업가나 보험설계사가 영업을 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다단계사업가는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그들의 매뉴얼로 잘 짜인 교육장에 참석하게 만들어서 세뇌를 시키는 것이며, 보험설계사가 하는 방식은 온갖 선물로 차가운 마음을 녹여서 열게 만든 뒤 팔아달라고 읍소하는 작전이다. 그래서 전도하는 사람들은 사은품으로 무장한 채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은 만나면 교회로 끌어들여 지극정성으로 환대하여 마음을 녹이고, 수많은 예배의식에 참석하게 하여 덕담과 축복, 위로와 격려로 포장한 교단교리를 정신없이 들려주어 세뇌시키고 있다. 이런 전도방식이나 교회성장방식이 성경적인 방식인가 세상적인 방식인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상가 지하를 세내어 개척교회를 시작하면 백이면 백 쫄딱 망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웅장하고 럭셔리한 대형교회에서 현학적이고 감성을 터치하는 세련된 설교를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회성공을 하려면, 처음부터 백 평이 넘는 지상 건물로 시작하든지, 아니면 중견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 받아가야 할 것이다. 이렇듯 교회 안에도 세상의 방식이 지배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성경의 교회성장방식과 전도방식은 이러한 세상적인 방식이 아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면서 영혼을 구원하면서 교회를 세워나갔다. 그러나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는 이런 영적 능력이 없으므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상의 방식을 들여와서 상식적이고 현학적이며 감정을 터치하는 설교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웅장하고 력셔리한 교회전물과 편의시설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미 자립교회나 작은 교회는 점점 자취를 감추어가고, 대형교회는 더욱 더 초대형교회로 커지면서 고도비만으로 뒤룩뒤룩 살찌는 모습이다.

 

기이하게도, 중견교회를 대형교회, 대형교회를 초대형교회로 만드는 토대는 황금만능의 물질주의 사상이다. 그래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의 설교는 항상 부자와 세속적인 성공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등식을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담임목사의 목회성공을 위해서 교인들에게 기복신앙을 세뇌시키고 있다. 기복신앙이란 성경의 방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희생적으로 복을 빌면 빌수록 더욱 더 축복을 받는다는 무속적인 신앙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교인들을 교회건물이나 교회조직을 지탱시키는 자원봉사자로 모으거나 막대한 헌금이나 십일조를 거두어들이는 데 이만한 신앙방식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부추기는 신학이 바로 번영신학이다. 번영신학은 부자가 되고 세속적인 성공을 하는 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바로미터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교회의 장로가 되는 사람들이 부자가 아니면 될 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증거라고 수군대고 있다. 이렇게 기복신학과 번영신학으로 무장한 신학사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속이고 비틀어서 교인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목적이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속내가, 세상에서 잘되고 부유하게 되며 성공하는 세속적인 축복을 받는 게 기정사실화 되어 버렸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잊히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어둠의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은 하나님이 아니라 악한 영들이며, 악한 영들과 피터지게 싸워 이기지 못하면 지옥 불에 던져진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목사를 우리네 교회와 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르치며, 세속적인 축복을 하찮게 여기고 영적인 축복을 얻는 영적 습관을 들이는 영성학교의 훈련이, 그들의 눈에 낯설고 기이하게 비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교회와는 다른 신앙방식이 곧, 이단교회라는 손쉬운 이분법을 적용하며 필자의 주장을 자신의 생각에서 떼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가 살아남은 생존전략은 기적과 이적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치유하며, 삶의 지난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지옥같이 사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필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입만 열면 귀신이야기를 하는 필자가 살아남는 생존비결이다. 그래서 충주의 한적한 시골에 있는 필자의 영성학교가,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교인들일지라도, 필자의 주장이 진짜라면 귀신에 관심조차 없는 그들의 운명에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에는 귀신을 모르고, 귀신과 싸우지 않고 살았던 이들은, 죄다 지옥의 불길에 던져진다고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뜩하고 두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