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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Joyfule 2018. 8. 30. 02:40



 
   기도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필자가 기도훈련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머리에 쌓이게 되었다. 그들이 기도를 시작하면 수많은 난관에 부딪친다. 악한 영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가 기도를 시작하면, 이에 불만을 품은 남편이 이혼을 하자면서 언어폭력과 심지어는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가정도 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어린 자녀가 감기나 몸살 등으로 고통 받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질병은 대부분 악한 영이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낫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굴의 투지로 기도를 계속하면, 그 때서야 자녀를 공격하는 카드를 버린다. 어려움은 이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상사의 공격이나, 자영업자의 경우 수입이 줄어드는 것도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래서 왜 기도가, 이런 어려움을 꼭 동반해야 하는지 살펴보겠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18:1~8)

 

예수님이 소개하는 비유는 한 가난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불의한 재판관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에게 뇌물로 줄 돈이 없으니, 그녀의 소원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 과부는 새벽에 그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간청하고, 저녁에는 관청에서 퇴근을 하는 재판관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아마 집 하인에게 몰매를 당하기도 하였고, 관청의 직원들에게 굴욕적인 일도 수도 없이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판관을 끈질기게 찾아가서 호소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이 재판관이 두손 두발을 들고, 이 과부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하는 목적은 기도의 태도를 말씀하시기위해서였다. 기도의 태도는 다름 아닌, 낙심하지 말고 끈질기게 하나님께 요청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기도를 하지마자 단박에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낙심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믿음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자녀가 기도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보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 아무런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지켜보기만 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도를 하다가 응답이 없으면 실망하고 좌절하여서 기도를 포기하기 일쑤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일을 해결해 주시는 원칙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서 기도를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의 기도를 응답해주실 수가 없다.

 

필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고 있는 사역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훈련을 요청하였지만, 기도하면서 갖가지 어려움이 닥치자,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서 늘 조급해 한다. 조급하면 조급해 할수록 기도에 집중할 수 없다. 조급함을 넣어주는 이가 바로 악한 영이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다양한 계략을 써서 기도를 집요하게 방해한다. 그중에서도 조급하게 하는 마음을 넣어주는 것은 일반적인 공격이다. 조급한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오래 기도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려와 걱정, 불안과 두려움 등의 부정적인 행각과 의심, 회의, 낙심, 조급함 등이 들어오면 전심으로 예수피로 외치면서 악한 영의 공격을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악한 영은 포기할 줄을 모르는 놈들이다. 그러므로 24시간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그 때마다 즉각 사라질 때까지 예수피를 외치면서 축출기도를 해야 한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18:8)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응답이 더디어지면, 낙심하고 절망하며 중도에 기도를 포기하기 일쑤이다. 그런 사람들을 일러,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신다. 문제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허다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는 게 무척이나 드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투는 천국이 좁은 문이라서,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무척이나 드물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교인들은 자신들이 믿음이 없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없다. 교회에서 1분짜리 영접기도를 마치면 천국은 따 논 당상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은 담임목사가 지어놓은 게 아니라면, 이들이 천국이 들어갈 확률은 결코 없다. 예수님이 허투루 하신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당신이 기도하는 것이 응답이 없다면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첫째는 탐욕을 채우는 내용으로 하나님이 듣지 않는 기도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믿음이 없어서 응답이 내려오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중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 당신이 만약 이런 사람이라면, 천국에서 당신의 얼굴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천국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아무나에게 열려 있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그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기도를 시작하면 응답이 올 때까지 절대로 중도에 포기하지 마시라. 그런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도 모르고 계시며, 이름도 기억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