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렁한 기도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훔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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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가장 쉬운 기도는 무엇인가? 손 안대고 코를 푸는 안수기도이다. 목회자에게 머리를 들이밀고 있으면 되니, 이보다 더 쉬운 기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안수기도의 성경적인 사용은 직분자의 임명이나 성령을 받기 위한 기도에 한해서였지,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예배가 끝나고 담임목사의 안수기도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또한 헌금봉투를 가져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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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쉬운 기도가 바로 방언기도이다. 방언은 성령이 임재하는 증거로서,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성령의 은사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네 교회는 기도할 때마다 방언을 함으로, 자신의 기도위상을 다른 교인들에게 알리는 행위로 변질되었다. 그 방언이 성령이 주시는 방언일 리가 없다. 이들이 내뱉는 방언은 알 수 없는 음절을 무한 반복하는 것으로, 자의적으로 지어낸 것이거나 악한 영들이 속여서 넣어준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힘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냥 입으로 알 수 없는 음절을 무한반복하면서, 머릿속에서는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러한 기이한 기도행위가 성경적인 기도이겠는가? 이들이 수십 년동안 이런 기도를 할지라도 다른 성령의 증거나 능력도 없으며 기도응답도 없다. 방언기도를 빙자해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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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쉬운 기도가 바로 작정기도이다. 작정기도는 삶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을 위한 기도를 작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헌금봉투를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도를 자신의 욕심을 채우거나 문제해결을 위한 방편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거나 욕심이 채워지면 작정기도도 덩달아 끝이 난다. 이런 가증스런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실 리가 없다. 기도란 피조물이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고 감사하는 영적 행위이다. 그러나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무슨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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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는 우리네 교회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기도방식이다. 새벽기도는 이른 새벽에 교회에서 간단한 예배의식을 마친 후에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말한다. 피곤함을 물리치고 일찍 일어나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동반하여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적인 기도는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해야 한다. 특정시간에 특정장소에서 하는 기도에 응답해주신다는 얘기는 성경에 없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교인들의 신앙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를 드러내거나, 기복적인 신앙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관심을 갖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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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기도는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금식기도가 다른 어떤 기도의 행위보다 희생의 강도를 요구하므로,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강력하게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도역시 자신의 희생행위를 드러내고 응답을 강요하면서 하나님의 목을 죄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또한 최근에는 일천번제 기도회라는 새로운 기도풍습이 우리네 교회에 자리 잡았다. 천일동안 헌금봉투를 가져오면서 기도하는 것이란다. 일천번제는 솔로몬이 천 마리의 소를 잡아서 번제를 드렸다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기도행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기도회는 기복신앙에 뿌리를 두고, 헌금이 탐이 난 목회자들이 지어내서 만든 기도의 행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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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도행위들이 우리네 교회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기도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기도행위로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자신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기도행위에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 지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보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 목숨을 드리고 마음을 바칠 생각이 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외면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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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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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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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원칙은, 희생의 강도를 더하는 기도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인지의 여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성품이나 청결한 삶이 없이, 오직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기도의 방식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손쉬운 기도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방식은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성령의 내주를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깊고 친밀하게 성령과 교제하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불러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에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목적으로 손쉬운 기도를 찾아다니다가 제풀에 지쳐서 주저앉고 만다. 그러므로 이런 기도를 가르치는 목회자와, 그런 기도를 따라하는 교인들 모두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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