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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졸도 직후 뇌사진 입수,

Joyfule 2012. 4. 26. 16:37

 

김정일 졸도 직후 뇌사진 입수,

 

국정원의 大특종: '김정일 졸도 직후 뇌사진 입수, 사망기간 정확히 예측'

北이 프랑스 의료진에게 보내는 電送파일 입수, 암호 풀어.
趙甲濟   
 

2008년 12월호 月刊朝鮮은 아래와 같은 요지의 특종기사를 실었다.

<우리 정보기관이 8월 중순 북한에서 외국으로 전송되는 金正日(김정일)의 ‘腦(뇌) 사진’들을 입수했고, 뇌 사진 파일에 걸린 암호를 풀어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음을 정확하게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정보당국이 김정일의 뇌 사진을 입수한 시점은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 8월 중순이었고, ‘뇌 사진’은 북한의 정보기관이 프랑스 의료진에게 의료 자문을 구하기 위해 평양에서 전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보당국은 이 자료를 중간에서 가로채 파일에 걸린 암호를 해독한 후 국내 의료진 등과 김정일의 ‘뇌 사진’을 정밀 분석, ‘김정일의 통치가 5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이 5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정보당국의 보고서가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이 본격 제기된 지난 9월 9일 노동당 창건일 행사 이전에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전했다.>
 
이 보도를 당시 우리 정부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정보기관의 속성상 情報源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최 근 만난 한 정부 고위 인사는 김정일의 뇌사진을 입수한 것은 국가정보원인데, '김정일이 2008년 8월 현재 앞으로 2년6개월 내지 5년 정도밖에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고 확인해주었다. 김정일은 3년4개월 뒤에 죽었으므로 예측이 적중한 것이다.

김정일의 病狀(병상)에 대하여 國情院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확실한 정보를 얻었다는 이야기이다. 남북간에 이뤄진 정보전에서 가장 큰 개가를 올린 셈이다. 언론의 용어로 표현하면 '최대의 특종'을 한 것이다.

국정원은 이 특급정보를 밝힐 수 없었으므로 당시엔 북한 사정에 어둡다고 언론과 야당의 질책을 받았다.  정부 당국자들은 변명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잠시 우리가 바보가 되자'고 서로를 위로하였다는 것이다.

[大특종] 한국 정보당국 金正日 뇌 사진 확보, 뇌졸중 확인

지난 8월 중순 북한에서 외국으로 전송된 여러 장의 金正日 뇌 사진 가로채.
파일에 걸린 암호 해독에 성공


글 : 金演光  

 

‘腦 사진’ 분석 결과 ‘金正日 통치, 5년 넘기기 힘들다’ 결론
腦 사진 분석자료 李明博 대통령에게 정권 창건일(9월 9일) 이전에 보고
  우리 정보기관이 8월중순 북한에서 외국으로 전송되는 金正日(김정일)의 ‘腦(뇌) 사진’들을 입수했고, 뇌 사진 파일에 걸린 암호를 풀어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음을 정확하게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정보당국이 김정일의 뇌 사진을 입수한 시점은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 8월 중순이었고, ‘뇌 사진’은 북한의 정보기관이 프랑스 의료진에게 의료 자문을 구하기 위해 평양에서 전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보당국은 이 자료를 중간에서 가로채 파일에 걸린 암호를 해독한 후 국내 의료진 등과 김정일의 ‘뇌 사진’을 정밀 분석, ‘김정일의 통치가 5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이 5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정보당국의 보고서가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이 본격 제기된 지난 9월 9일 노동당 창건일 행사 이전에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전했다.
 
  다음은 복수의 정부 관계자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김정일의 ‘뇌 사진’을 입수한 시점은 언제인가.
 
  “8월 중순이다. (북한 지역에 대한) 도청과 감청, 위성 정찰을 통해 김정일 주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평양 핵심부가 분주했고, ‘(김정일이) 쓰러졌다’는 감청이 있었다. ‘얼럿(alert-주의를 기울임)’하고 있는데 평양에서 중요한 정보가 외부로 전송되는 것을 해킹했다.”
 
  ―외부 어디로 가는 것이었나.
 
  “외국이다.”
 
  ―외국 어디인가.
 
  “프랑스다.”
 
  이 정부당국자는 평양에서 전송된 정보를 어느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낚아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일본의 후지TV는 지난 10월 2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씨가 지난주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한 뇌신경외과 전문의를 만났으며, 이후 이 의사가 평양으로 떠났다’고 보도했다. 후지TV는 이날 김정남이 파리의 한 병원을 나서는 장면과 김씨를 면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의사가 이틀 뒤 파리 주재 북한 유네스코대표부 차량을 타고 샤를 드골 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후지TV는 뇌신경외과 전문의가 ‘프랑수아 사비에 루’(57)라고 밝혔다. 프랑수아 사비에 루 씨는 지난 10월 30일 중국의 베이징에서 AP통신과 전화통화를 갖고 “이번 베이징 방문의 목적은 뇌전문의들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며 “최근 평양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우리 정보당국은 평양의 김정일 주치의들이 프랑스의 의료진에게 이메일로 보낸 ‘뇌 사진’, 즉 CT(컴퓨터 단층촬영)와 MRI(자기공명 단층촬영) 사진 등을 중간에서 낚아챈 것으로 추정된다.
 
  韓·美·日(한미일) 정보당국은 정보 교류과정에서 공유된 정보를 흘릴 필요가 있을 때 전통적으로 일본 언론을 활용해 왔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북한 정보의 대부분을 한미 정보당국이 입수·생산한다. 한미 정보당국은 자신들의 정보 역량을 은폐하기 위해, 제3자적 위치에 있는 일본 언론을 이용하는 셈이다.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1992년 8월 9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는 金日成(김일성)의 愛妾(애첩) 김송죽과 그의 딸 김백연(당시 5세), 김송죽의 어머니 김종수의 사진과 함께 이들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김송죽이 무용수 출신의 美女(미녀)라는 사실, 스웨덴 경찰이 이들 일행을 경호한다는 사실을 상세히 전했다.
 
  김일성의 애첩 김송죽이 스톡홀름에서 장기 체류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였다. 우리 정보당국은 김일성이 김송죽과 나눈 국제전화를 감청하는데 성공했다. 안기부 고위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김일성이 걸쭉한 목소리로 김송죽과 나눈 대화 내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젊은 여자(김송죽)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에게 반말을 했다.
 
  “나 없는 동안 다른 여자한테 한눈 팔지 말아요.”(김송죽)
  “어허 안 그런다니까.”(김일성)
  “나 보고 싶어요?”(김송죽)
  “그래, 그래.”(김일성)
 
 
  암호 푸는데 1주일 가까이 걸려
 
일본 후지TV는 “김정남이 지난 10월 24일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뇌신경외과 전문의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후지TV가 방영한 김정남의 모습.
  한미 정보당국은 김일성이 1989년 6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연설을 한 직후 동구권의 한 나라에 나가 있던 딸에게 건 국제전화를 감청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와 안기부의 고위간부들은 김일성이 딸과 나눈 대화를 肉聲(육성)으로 들었다.
 
  “야, 너 내 연설 들었어?”  
  “예.” 
  “어땠어?” 
  “아주 멋졌어요.” 
  “나 앞으로 10년은 끄떡 없을 것 같애.”
 
  다시 정부 관계자와의 대화로 돌아간다.
 
  ―북한이 프랑스로 전송한 중요한 정보는 무엇이었는가.
  “파일에 암호가 걸려 있어서 처음에는 뭔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정보요원들이 암호를 풀어내는데 성공했다.”
 
  ―암호를 푸는데 얼마나 걸렸나.
  “사나흘 넘게 걸렸고, 일주일을 넘기지는 않았다. 암호를 푸느라 고생이 많았다.”
 
  ―암호가 걸렸던 정보의 내용은 뭐였나.
  “김정일의 뇌 사진이었다.”
 
  ―CT 사진인가, MRI 사진인가.  
  “김정일의 뇌 어느 부위에 이상이 생겼고, 얼마나 마비가 진행됐는지를 알 수 있는 ‘뇌 사진’이었다.”
 
  ―그때 첫 해킹에 성공한 이후 계속 ‘뇌 사진’을 가로챘는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나가는 것(프랑스로 전송한 파일)을 ‘인터셉트’(intercept-가로채다)했다. 입수한 뇌 사진은 여러 장이다.”
 
  컴퓨터 보안 시스템을 판매하고 있는 IT업체 책임자에게 우리 정보당국이 어떤 방식으로 이메일을 가로채고, 여기에 걸린 암호를 어떻게 풀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50대 초반의 그는 미국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북한이 10월 11일 공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민군 제 821부대 산하 여성포중대 시찰사진. 계절과 맞지 않는 배경 때문에 조작설이 제기됐다.
 
  컴퓨터 보안 전문가 “암호 해독에 수퍼 컴퓨터 동원됐을 것”
 
  ―북한이 평양에서 프랑스로 보낸 이메일을 어떻게 가로챌 수 있나.
  “제일 간단한 방법은 평양에서 보낸 이메일을 받은 사람에게, 이메일 한 부를 복사해서 받는 방법이다. 그런 첩보작전을 하지 않더라도, 컴퓨터 네트워크에 들어가서 이메일을 가로챌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다. 프랑스의 수신자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심어놓고, 이메일이 올 때마다 하나씩 이쪽으로 전송케 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 정보기관이 어떤 방법을 선택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는 “중국이 2007년 이메일 해킹을 통해 미국 무기판매업체 간부의 컴퓨터 파일을 모두 가로채 간 사건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의 이야기다.
 
  “무기 판매업체의 한 이사가 美 국방부 대령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열어보니 몇 주간 진행된 업무를 이야기하고 ‘인도에서 무기를 사겠다고 하니 견적서를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을 열고 곧바로 ‘포이즌 아이비(Poison Ivy-해킹 프로그램)가 작동했다. 그의 컴퓨터에 담겨 있던 모든 파일이 중국으로 날아갔다. 미 정보당국이 추적한 결과 파일을 훔쳐간 중국 쪽 컴퓨터는 신장위구르자치구 오지의 어느 마을에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포이즌 아이비’를 해킹하고 싶은 쪽의 컴퓨터에 심어두는 게 가장 흔히 쓰는 이메일 해킹 방식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 미국은 정보기관과 국방부에서 이메일 사용을 대폭 줄이고, 해킹을 막는 ‘비잔틴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이메일을 가로챘더라도 암호가 걸려 있으면 해독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안다. 암호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뇌 사진을 이메일로 보냈다면 그것 역시 ‘디지털 파일’이고, 0과 1로 구성되는 숫자 암호다. 암호화시켰다면 ‘키 값’ 없이는 풀 수가 없다. 우리 정보당국이 푸는데 엄청난 고생을 했을 걸로 짐작된다.”
 
  ―‘키 값’이 없이 암호를 풀 수 있나.
    “풀 수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캐비닛이나 금고를 열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똑’하는 소리가 난다. 좌우로 여러 번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열린다. 비슷한 방법이다. IBM이 컴퓨터에 심어놓은 암호화 체계의 ‘키 값’은 64비트다. 경우의 수는 2의 64乘(승)이다. 암호의 비트 값을 7경2077조 번 대입해서 암호를 풀어보면 된다. 수퍼 컴퓨터를 여러 대 동원해서 경우의 수를 다 집어넣어 보면 풀린다.”
 
  ―우리 정보기관이 수퍼 컴퓨터를 갖고 있나.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의 NSA(국가안전보장국)는 수퍼컴퓨터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NSA가 전 세계 대통령궁과 총리실에서 나오는 이메일과 전화 통화를 전부 해킹하고 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우리 정보당국이 이메일을 가로채고, 그 암호를 NSA에 가져가 협조를 요청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꼭 수퍼 컴퓨터가 있어야만 이메일의 암호를 풀어낼 수 있나.
    “그렇지는 않다. 컴퓨터 공학 전문교수들이 64비트로 숨겨진 암호를 하루 만에 풀어내는 경우가 있다. 암호를 부여할 때 어떤 의미체계가 있다든지, 단서가 있어서 일부 의미 있는 문장을 찾아내면 쉽게 암호를 풀 수도 있다.” 

 

 
  미국의 IBM은 1960년대 초 최초로 수학적인 방식의 암호체계를 고안했다. 기본적인 틀은 난수표와 비슷하다. 문장을 믹서기 갈듯이 갈아 놓아서 ‘키(Key) 값’이 없으면 절대 해독이 불가능하도록 벽을 쌓았다.
  현재 컴퓨터에서 이용되는 암호화 방식은 여전히 IBM이 개발한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우리 정보당국은 ‘뇌사진’을 입수한 후 이 사진이 진짜 김정일의 뇌를 찍은 것인지 100% 확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뇌 사진이 김정일의 것일 수 있지만, 조명록의 것일 수도 있다. 그때까지 입수한 도청 감청 자료, 위성사진, 人的(인적) 정보를 토대로 퍼즐을 한 조각씩 짜맞추고, 숨은 그림 찾기를 했다. 그리고 그 뇌 사진의 주인공이 김정일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국내 의료진에게 뇌 사진과 우리가 입수한 김정일의 건강정보를 제공하고 함께 분석을 했다.”
  
  
  “李明博 대통령 半信半疑”
 
김정남이 방문한 파리 생-안트 병원의 프랑수아 사비에 루 신경외과 과장. 프랑스 시사주간지 <르포엥>과 일본 후지TV는 루 과장이 김정남의 방문 직후인 지난 10월 24일 평양으로 떠났다고 보도했다.
  ―어떤 결론이 내려졌나.
   “당시 일어났던 ‘스트로크’가 심각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또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료진들은 ‘김정일의 뇌와 심장, 건강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오래 살기가 어렵다’고 했다. ‘5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결론이었다. 그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에게 올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반응이었나.
   “半信半疑(반신반의)하는 것 같았다. 자료를 손에 쥐고 있는 우리도 비슷했다. 그래서 김정일이 북한 정권창립 60주년인 9·9 절 행사에 나타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정일은 우리 예상대로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뇌 사진의 주인공은 김정일이었고, 우리가 맞았다. 그 이후는 지금까지 진행된 대로다.”
 
  ―‘5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은 김정일의 자연 수명이 5년 남았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김정일의 통치가 5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얘기인가.
  “두 가지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중국 군의관 5명이 뇌수술을 했다’, ‘프랑스 의사가 뇌수술을 집도했다’이런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두개골을 여는 뇌수술을 한 것인가, 안 한 것인가.
   “응급조치는 30분 만에 끝났다. 급하니까 곧바로 외국 전문가에게 뇌 사진을 보내 응급조치가 잘됐는지, 앞으로 어떤 처치를 더해야 하는지 자문을 받은 것이다.”
 
  ―김정일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2008년 8월말 현재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왔다는 게 당시 의료진의 판단이었다. 그 후 병세가 호전됐고, 지금쯤은 더 나아졌을 걸로 추정된다.”
 
  ―‘김정일이 칫솔질을 할 수 있는 상태’같은 정보보고가 나와서 ‘우리 정보당국이 옆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느냐.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을 많이 받았다.
    “김정일의 뇌 사진을 놓고 국내 의료진들이 ‘이 정도라면 숟가락을 들고, 칫솔질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 얘기들이 잘못 전달된 것으로 안다.”
 
  김정일은 2000년 8월 자신의 주치의 3명을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병원에 보내, 심장마비 처치 등 응급의료를 2주일간 연수시켰다. 또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 의료진에게 ‘장군’들의 의료 차트를 보내 자문을 구했다(月刊朝鮮 2008년 11월호 참조).
 
  한미 양국의 정보기관은 김정일의 심장과 뇌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오래 전부터 物證(물증)을 확보한 상태에서 추적해 왔고, 이번 인터넷 해킹을 통해 김정일의 뇌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됐다.
 
북한이 11월 5일 공개한 사진. 조선인민군 제534부대 직속 구분대에서 김정일이 군인들과 함께 서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와 BBC가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진실의 순간
 
  북한은 김정일의 ‘半身(반신) 마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조작한 사진을 계속 공개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은 한미 양국의 정보역량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북한은 우리가 확실한 물증을 제시할 때까지 거짓말을 계속하는 행태를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한미 정보당국이 북한의 거짓말을 마냥 방치한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정보역량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정보기관의 철칙을 깨고 비장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美(미) 중앙정보국(CIA)은 미국이 1985년부터 인공위성을 동원해서 촬영한 북한 영변 원자로의 건설과 가동 상황을 1992년 9월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공개했다. 북한 핵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한 외교관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IAEA는 1992년 8월의 제3차 임시 핵사찰(1992년 8월 29일~9월 12일)에서도 북한의 불법적 핵 활동에 관한 특별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자, 이런 평가를 공식 발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IAEA의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미국과 IAEA 사이에 갈등이 고조됐으나,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별다른 근거가 없다’는 IAEA의 입장은 단호했다. IAEA의 사찰 동향을 숨죽이고 바라보던 한국 정부는 IAEA의 평가에 안도하면서,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곧 사실무근으로 판명되고 남북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한 미국 정부는 마침내 1992년 9월 모든 희망적인 관측을 일거에 뒤엎을 마지막 카드를 뽑았다. 그것은 미국이 그간 수집해 온 북한의 핵개발 관련 위성사진들이었다. 미국은 自國(자국)의 정보수집 능력에 대한 보안 유지를 위해 구체적 증거의 제시를 회피해 왔으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되자 이를 한국 정부와 IAEA에 공개한 것이다.
 
  미국이 제시한 증거는 한마디로 더 이상의 질문이나 의문이 필요 없는 자료였다. 당시 한국 정부 내에는 핵 문제 해결보다 남북관계 개선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이들은 당초부터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적나라한 증거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