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디트리히 본 회퍼(Dietrich Bon hoeffer)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내게 말하길
내가 꽉 막힌 감방에서 걸어 나올땐
마치 자신의 성에서 나오는 영주처럼
차분하고 쾌활하고 자신만만 했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내게 말하길
내가 간수들에게 말을 건넬땐
마치 내 명령을 따르는 내 사람들에게 하는냥
거리낌없고 다정하고 명쾌했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또 내게 말하길
내가 승리에 익숙한 사람처럼
움츠러들지 않고 웃어가며 또 당당하게
불운한 날들을 견디어 냈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남들이 말하는 바로 그런 사람일까
아니면 내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일 뿐일까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해하고 애타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누군가의 손에 숨이라도 조이는 냥
화려한 빛깔과 꽃과 새소리에 갈급해하고
친절한 말, 상냥한 말 몇 마디에 목말라하고
거창한 사건을 기대하며 마음 오락가락하고
하염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의 안부에 속절없이 마음 졸여하며
기도, 묵상, 실천 중에조차 울적해지고 허탈해져서
기진맥진해 금방이라도 이 모든 걸 내던지고 싶은.
나는 누구인가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오늘은 이런 사람이었다 내일은 또 저런 사람인가
아니면 둘 다일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혼자 있을땐 한심스레 고통에 짓눌리는 약골인가
아니면 여전히 내 안에
이미 얻어낸 승리를 앞에 두고 오합지졸처럼 도망치는
패잔병 같은 무언가가 있는 걸까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가 되묻는
이 외로운 질문이 나를 조롱한다
오오 주여 ......
당신은 아시나이다
내가 누구이든
나는 당신의 것이옵니다
☆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옥중 서간)"에서...
디트리히 본회퍼는 독일의 신학자(목사)로 베를린 대학교의 교수.
히틀러가 총리로 취임한 이틀 후 라디오 방송에서
“젊은 세대에 있어서 지도자 개념의 변천”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다가 당국에 의하여 중단 당하며
이때부터 나치 정권의 감시대상자가 되었고
히틀러 암살 모의에 연루되어 투옥, 처형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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