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속이려 하는가!!
"그러나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단순히 듣기만 하는 자가 되어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 (약 1:22)
옳다고 인정하는 바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속이는 자입니다. 입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 사이에는 두 부류의 위선자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을 마음속에 감추고 겉으로 위선적인 종교를 내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 눈에 경건한 사람들로 비치고자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식의 종교와 자선을 내보이고 길게 기도함으로써 참으로 경건하다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다른 부류는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입니다. 그들의 종교는 실행과는 관련이 없는 한 움큼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선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속이지만, 이들에게는 참된 거룩함이 없습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행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정통 설교를 사랑하고 추상적인 교리가 담긴 설교를 듣는 데서 커다란 기쁨을 얻습니다. 상상과 불타오르는 감정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특징을 보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규례들을 행하는 데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수많은 독자들이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독자들의 이름을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이 여기에 속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바로 제가 언급하고 있는 사람임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저는 바로 그런 사람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이론상으로는 그 말씀을 믿지만 실행에서는 그 말씀을 부인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진정으로 구원하는 믿음
복음적인 믿음, 혹은 구원시키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요소가 필수적입니다. 첫 번째는 진리를 들은 후에 지적인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추상적인 진리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과 관계되는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관련된 진리, 혹은 여러분의 행위와 관계된 진리를 먼저 머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마음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마음이 찔림을 받고 자신과 관련된 진리를 인정하면 그 진리를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참된 믿음에는 이 두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진리를 머리로만 이해하는 지적 확신은 구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 마음의 변화가 수반되면, 그것은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구원하는 믿음에는 자신이 믿는 바대로 행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것을 믿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렇소. 믿소."라고 대답했다면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단순한 지적 확신을 의미합니까? 지적확신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그건 믿음은 아닙니다.
추상적인 진리를 인정하거나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나라와 그 특징과 구원 계획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견해는 추상적인 면만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나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유창한 설교를 들으면 제시된 영광과 탁월성에 흥분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진정한 믿음의 요소가 없습니다. 합리적인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진리가 추상적으로 비쳐질 때는 당연히 진리를 인정합니다.
지옥에 거하는 가장 사악한 마귀일지라도 진리가 그들 자신과 연계되지 않는 한 진리를 인정합니다.
복음이 그들 자신의 이기심을 방해하지 않으면 진리를 참되다고 받아들일 뿐만아니라 진심으로 진리를 인정할 것입니다. 사악한 사람들과 마귀들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그들 자신과 연관해서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기심에 반대하심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속에서 반역이 치솟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엄청난 미혹의 근원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참되다고 알고 사색하는 데서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자신들에게 적용하지는 않습니다. 진리가 설교되는 것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진리로 먹고 산다고는 하지만, 진리를 행하지는 않습니다.
병들어서 감정이 예민해진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친절하고 온유하신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그 사람의 마음은 녹아내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강하게 마음이 이끌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로맨스의 영웅에게 느끼는 강한 감정과 동일한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리스도께 복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추상적으로 바라보고 그분의 영광스럽고 사랑스러운 인격에서 기쁨을 누릴 뿐입니다. 그 자신은 여전히 엄청난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믿음이란 선을 행하도록 효과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믿음은 복음에 속한 믿음이 아니며, 전혀 믿음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복음이여야 합니다.
- 찰스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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