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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족 마을, 암보셀리 국립공원

Joyfule 2007. 10. 16. 01:27
케냐 비전 트립 2(Kenya Vision Trip)

나이로비에서 암보셀리로

 

나이로비에서 남서쪽으로 250km 떨어진 암보셀리 국립공원을 향한다. 매연 자욱한 나이로비 시내를 벗어나 평원 속으로 난 길을 달리니 숨통이 터지며, 오늘 보게 될 야생동물이 있는 아프리카 정경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오른다. 케냐에서 사파리를 위한 가장 좋은 계절은 7월에서 10월이라고 한다. 이때 동물들의 대이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직 6월이니 좀 이른 셈이다. 4월, 5월은 대 우기인데, 우기를 금방 지나 아직도 초원은 푸르름을 간직한 채 우리를 맞는다.

 

이곳 사바나에서 특별히 시선을 끄는 것은 아프리카를 느끼게 하는 아카시아 나무들이다. 물론 한국에서 보던 아카시아와는 다른 종류이다. 일반 나무들과는 달리, 나무의 끝이 둥글거나 뾰족하게 올라가 있지 않고, 오히려 평평한 옥상처럼 역삼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런 나무들이 광활한 평원위에 외롭게 서서 멀리 지평선이 맞닿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은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인 듯 싶다. "Out of Africa" 영화 속에서 노을진 하늘을 배경으로 선 이 아카시아 나무의 실루엣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여기 아카시아 나무는 세 종류가 있어요. 노란 나무껍질 아카시아, 검은 나무껍질 아카시아, 토프리스(Topless) 아카시아" 이 토프리스 아카시아 나무는 윗 부분이 평평한 탓에 카누피(Canopy) 아카시아라고도 불린다고 운전사 조지가 말해준다. 아이작 디네슨은 그녀의 책 "Out of Africa"에서 이 카누피 아카시아 나무를 "돛을 한껏 올리고 바다에 떠있는 배들 같다"고 묘사한다. 작고 연한 연두색의 잎새들을 단 가지들이 평평함을 이루며 납작한 지붕이 되어 있는 토프리스 아카시아. 그 가지와 잎새 사이로 환히 올려다보이는 하늘. 이 나무를 빼고 어찌 동부 아프리카의 사바나를 말할 수 있겠는가?

 

 

**나이로비에서 암보셀리로 가는 길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아프리카 나팔꽃

 

평원위에 간간이 선 아카시아 나무와 함께 어제 나이로비에서 보았던 예의 보라빛 미소를 머금은 통꽃으로 된 하얀 나팔꽃들이 길 연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지 않은가? 이렇게 커다란 나팔꽃은 처음이다.

 

마사이 족의 땅을 지난다. 양들과 소들이 길 위를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붉은 만또같은 겉옷을 몸에 휘감은 마사이족의 청년이 긴 소치는 막대기를 들고 간다. 길가에 작은 가게들은 누추하고 볼품이 없다. 가끔 소들을 몰고 가는 마사이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멀리 타조 두 마리가 어기적어기적 걸어간다. 이곳 마사이 사람들은 타조를 사냥하지 않는단다. 타조를 신성한 동물이라 여기기에, 죽이면 자기에게 해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길 옆 나무 주위에 붕긋 붉은 황토흙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하나 둘이 아니고, 크고 작은 황토 봉우리가 수없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사람들에게도 음경 숭배사상이 있나보네..." 짐짓 혼자서 생각하고 있는데, 일행들을 세운 선두차가 정차한다. 눈앞에 사람 키를 넘는 거대한 황토 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흰개미 언덕(Termite Hills)입니다. 수백만 마리의 개미들이 흙을 먹으며 파서 만들어 놓은 개미 언덕이지요." 조지의 설명이다. 마사이족의 작품이 아니라, 개미가 만들어 낸 산물임을 알고 혼자 웃었다.

 

     **흰개미(터마이트)들이 쌓아놓은 흙 언덕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 도시, 나망가(Namanga) 가까이에 이르니 수많은 이 지역 사람들이 부산하게 거리를 오간다. 서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지 길가에 가게들도 많이 늘어서 있다. 이제부터 암보셀리 국립공원까지는 비포장 도로이다. 앞차가 가면서 황톳길 위에 먼지들을 죄다 들쑤셔 놓아 시야를 가린다. "먼지가 이는 땅"이란 명성(?)까지 얻고 있으니 그대로 감수할 밖에...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고충은 또 어떨까? 우리 일행을 태운 여섯 대의 차가 앞다투어 가며, 뙤약볕 아래 길가를 걷고 있는 마사이 여인들에게 구름같은 먼지를 뒤집어 씌우는 것을 보면서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 된다.

암보셀리 국립공원이 가까워지면서 마을은 사라지고, 차창 밖으론 새집이 마치 열매가 달린 것처럼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진풍경이 심심찮게 전개된다.

 

마사이족 마을 (Masai Village)

 

암보셀리 국립공원 근처에 위치한 마사이부족의 전통마을을 방문한다. 마사이부족은 이곳 케냐에 산재한 42개의 아프리카 부족 중 가장 용감하고 강한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도 사바나를 터전으로 풀을 찾아 초원을 떠도는 유목민의 삶을 살아간다. 이 마을은 관광객을 상대로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가로 입장료를 받고 자신들이 만든 토산품도 판다. 마음대로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한다.

우리 일행이 마을에 도착하니, 마사이 족 남자들과 여자들이 마을 앞에 나와 도열해 서 있다. 환영의례라면서 마사이족의 춤을 추어 보인다.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단조로운 노래를 부르며 일렬로 서서 춤을 춘다. 서로 누가누가 높이 뛰나 내기라도 하듯 높이 점프하며 춤을 춘다.

  **마사이부족의 환영 노래와 춤

 

그들이 신고 있는 커다란 샌들은 낡은 타이어를 짤라 만든 신이다. 마사이족 사람들은 대나무를 연상시키는 큰 키, 비쩍 마른 몸에 보라색 혹은 붉은 색 계통의 두툼한 천으로 몸을 두르고 손에는 으레 소치는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닌다. 여자들은 목걸이, 귀걸이 등 현란한 장식으로 시선을 끈다. 손님을 환영하는 춤이 끝나자, 이 마을 추장의 아들이 우리를 마을 안으로 안내한다. 약 20여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다.

 

소똥이 아무 데나 널려져 있는 마을 공터 위를 염소 서너 마리가 돌아다닌다. 한 마사이 남자가 어떻게 불씨를 만들어 내는지를 시범삼아 보여준다. 작은 나뭇가지 같은 것을 가져와 나무 통 위에서 수없이 반복하며 돌리니 그 열기로 나무가 뜨거워지고, 지푸라기를 그 위에 놓고 후후 입김을 부니 연기가 나면서 작은 불길이 오르기 시작한다. 불씨를 만들어낸 그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듯 웃음이 번진다.

마사이 사람들의 그 유명한 소똥집이 소개된다. 소똥에 흙과 풀, 나뭇가지들을 섞어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다. 지붕엔 소가죽을 얹으므로, 간혹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있다. 집을 짓고 사용하기까지 약 3주가 걸린다. "우리 마사이 남자들은 부인을 다섯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부인을 얻으면 집을 하나씩 주어 그 아이들과 살게 하지요. 나는 아내를 둘만 얻겠어요. 집을 주어야 하는데 너무 벅차거든요." 영어가 유창한 마사이 청년의 인도로 소똥을 빚어 만든 집 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간다. 깜깜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방 한쪽을 들치니 밖으로 난 작은 창구멍에서 빛이 들어온다. 한 남자가 방에 누워있는 것이 얼핏 보인다. 양쪽으로 간신히 누울만한 방들이 있고 중앙은 부엌으로 사용한다. 가운데 불씨를 보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집이 그렇듯, 마사이족의 음식 역시 소에서 나온 것들이다. 소에게서 고기와 우유와 피를 받아먹는다. 반 사막 지대에서의 삶이기에 농사를 지을 수 없으므로, 채소를 먹지 못한다. 소들은 이들의 삶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결혼을 해서 신부를 데려오려면, 장인에게 신부 값으로 소를 지불해야 한다. 평균 5마리의 소를 주어야 한다. 당장 줄 소가 없는 신랑은 장인 장모와 흥정하여 할부로 소를 지불하기로 하고 신부를 데려오기도 한다.

 

마사이족에게 있어 모든 노동은 여자의 몫이다. 여자들이 소를 몰고, 집을 짓고, 아기를 기르는 등 모든 일들을 하고, 남자들은 하릴없이 빈둥대며 지낸다. 남자의 일이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가족과 종족을 지키는 전사(戰士)로서의 업무뿐이다. 이제 부족간의 싸움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이 왔으니 마사이족 남자들은 더 더욱 할 일이 없어진 셈이다. 전사로서의 정체감이 백수(白手)로 변하기 전에, 남녀의 역할을 재조정할 전환기가 온 것이 아닌지...

 

풀을 찾아 사바나를 헤매는 얼룩말이나 누우떼처럼, 이 마사이족들도 끝없이 펼쳐진 사바나를 소떼를 몰며 누비고 다닌다. 가장 자연에 동화되어 사는 사람들, 야생동물과 밀접하게 어울러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마도 이 마사이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암보셀리 국립공원 (Amboseli National Park)

 

한 시간 30분 정도 비포장도로를 달려, 드디어 암보셀리 국립공원에 당도한다. 총 390 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 공원으로 197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에 들어서서 얼마 달리지 않아 멀리 초원 위에 얼룩말이 눈에 띄자 모두들 환호성을 올리며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 조지는 저 정도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차를 몬다. 우선 국립공원 안에 있는 올 투카이 랏지(Ol Tukai Lodge)에 여장을 푼다. 랏지의 뜰에서도 얼룩말이며, 누우 등 동물들이 멀찌감치 풀을 뜯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바나 한가운데 자리잡은 이색적인 숙소다.

 

암보셀리는 "소금기가 있는 땅"이란 뜻이다. 염분 때문에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반 사막 상태의 건조한 지역이다. 암보셀리 호수는 우기엔 물이 고여 못을 이루지만, 건기가 오면 곧 잦아드는 건천이다. 대신 킬리만자로산에서 내려오는 물들이 늪을 이루어 동물들을 생존케 한다. 이 유명한 산을 배경으로 물을 마시기 위해 늪으로 찾아오는 거대한 무리의 코끼리들과 누우떼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사이 마을을 방문 후 암보셀리의 야생동물들을 보러 나선다. 사파리를 하도록 승합차의 지붕덮개가 열렸다. 날씬한 톰슨 가젤 세 마리가 놀라 달아난다. 원숭이 가족들. 멀리 늪에서 물을 마시는 버팔로 떼들과 누우(윌더비스트) 엄마와 아들. 그리고 아기를 데리고 물 웅덩이를 향해 걸어가는 코끼리 가족들의 느릿한 행렬. 코끼리가 소금을 좋아한다더니... 이곳이 소금기가 있는 땅이어서 그런가? 수많은 코끼리떼들을 만난다.

 

  **멀리 킬리만자로를 배경으로 석양을 걷고 있는 코끼리 가족

 

"동물의 왕국"을 보니, 이 암보셀리에 살고 있는 700여 마리 코끼리들을 하나하나 모두 알고 있는 동물학자도 있다. 각 가족 단위로 각각 서양식 이름을 부쳐주고 그들의 동태를 면밀하게 살핀다.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된 아기 코끼리가 있었다. 코끼리 엄마들은 단지 자기 새끼를 위한 정량의 젖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다른 아기 코끼리에게 줄 젖이 없다. 결국 젖을 먹을 수 없는 고아 코끼리는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곳 동물관리인들이 이들을 동물고아원에 데려다 우유를 주고 다시 야생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모습을 흥미롭게 TV를 통해 본 기억이 난다.

리더를 따라 줄을 지어 어딘가로 향해 가는 윌더비스트 십여 마리의 모습이 들판에 나타난다.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걷는 모습이 우중충하다.

 

"비가 굉장하게 쏟아져서 마치 폭포속을 뚫고 날으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곳을 빠져 나왔다. -- 그곳에는 전 세계인 양, 폭이 넓은 거대하고도 높은 킬리만자로의 네모진 꼭대기가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만큼 희게 보였다. 순간 자기가 가고 있는 곳이 바로 저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킬리만자로의 눈"/어네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 운전사 조지가 산쪽을 가리킨다. 잔뜩 구름이 끼여 산을 볼 수 없나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던 차인지라, 눈이 번쩍 뜨인다. 구름이 거치며 눈 앞에 희미하게 킬리만자로 화산 분화구가 있는 산 정상의 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산중턱은 아직도 하얀 구름이 휘감고 있어 만년설이 덮인 산봉우리만이 어렴풋이 구름 위에 떠 있다. 높이 5,895 m의 아프리카 최고봉. 적도 부근에 있으면서도 흰 눈과 빙하를 이고 있는 산. 가까이 근접하기엔 너무 신비로와 "신(神)의 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산. 마사이사람들은 이 산을 신성시하여 산에 오르는 것을 꺼려했다. 늘 눈이 덮여서인가? 킬리만자로란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언덕"을 뜻한다. 대부분의 높은 산들이 산맥과 연하여 여러 봉우리들과 어울러져 있는데 비해, 킬리만자로는 단독으로 초원 위에 우뚝 선 산으로 명성이 높다. 수십만 년 화산의 폭발작용이 만들어낸 산으로 정상은 솟은 봉우리가 아니라, 카누피 아카시아 나무처럼, 평평한 능선이다. 4천 평방km에 이르는 면적을 차지한 채 장엄한 모습으로 우뚝 선 킬리만자로는 고도에 따라, 열대, 온대, 한대의 온갖 식물군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 때문인가? 점차 눈이 녹아, 앞으로 15년이면, 이 산의 만년설이 녹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니 왠지 그 신비로움까지 녹아버리는 것 같아 아쉽다.

 

"킬리만자로는 만년설이 덮인 해발 19,710피트의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이 산의 서쪽 정상 근처에는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놓여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엇을 찾아 헤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킬리만자로의 눈"의 첫 장면은 이와 같은 대사로 시작된다. 아프리카에서의 자유와 모험을 만끽했던 헤밍웨이를 떠올리며, 그가 바라보았던 킬리만자로의 영봉을 바라본다.

 

마침 산을 배경으로 코끼리 가족 예닐곱 마리가 줄을 지어 걷는다. 저녁 무렵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가족과도 같은 모습으로 걸어간다. 셔터를 누르며, 이 사진의 제목은 "귀향"이라고 정해본다. 코끼리는 모계사회를 형성하여 가족 단위로 살아가기에 이들의 리더는 암놈이다. 평균 수명이 60년으로 나이가 먹어도 계속 자라므로 큰 덩치의 코끼리는 나이가 든 코끼리라고 한다. 인간도 코끼리처럼 늙을 때까지 자란다면 어떨까? "늙어감"이 지금 보다는 좀 더 존중받게 될는지 누가 알겠는가?

저녁 여섯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동부 아프리카의 사바나에는 벌써 어둠이 내린다. 드넓은 초원위에 어스름이 깔리며, 킬리만자로도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밤중 숙소 앞에서 사바나의 밤하늘을 본다. 새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 반짝인다. 은하수 흰 줄기 강물까지 보일 만큼, 많은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운다.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야생동물의 소리다. 얼룩말일지, 누우일지, 버팔로일지 나는 모른다. 야생동물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쏟아져 내릴 듯 가깝게 보이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고 경외로울 뿐이다.


 

Kwaheri, Kilimanjaro!! 킬리만자로여 안녕!

 

아침 7시 반경, 암보셀리를 떠난다. 차 뒤편으로 킬리만자로가 뿌옇게 보인다. 비록 선명치는 않지만, 산 전체가 푸른빛으로 그 윤곽을 드러낸다. 안녕, 킬리만자로! 과헤리, 킬리만자로! 24시간도 채 되지 못한 짧은 만남이었기에 더 아쉬움이 남는지도 모른다. 저 산의 속내는 과연 어떨까? 여전히 내겐 베일 속에 남아있는 산이다. 승합차가 암보셀리 국립공원을 뒤로하며, 더 이상 킬리만자로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케냐의 특징인 평평한 지붕의 아카시아 나무와 그 순을 먹고 사는 기린.  그리고 가지에 달린 새둥우리들

 

얼마나 달려왔을까? 앞서가던 차가 길에 멈춰 서 있다. 기린. 기린들 때문이었다. 국립공원 안에서도 보지 못했던 기린들이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서성이고 있지 않은가? 처음 보는 야생의 기린에 모두의 얼굴에 탄성이 흘러나온다. 아름답고 우아한 동물. 서두르지 않는 의연한 걸음걸이. 기린은 그 긴 목을 빼고 먹이를 찾아 키 큰 카누피 아카시아 나뭇잎을 바라본다. 그 뒤엔 흰 눈을 이고 있는 푸른 산봉우리가 무대 장치 마냥 서 있다. 산을 배경으로 아카시아 나무와 기린을 모두 렌즈에 담을 수 있어 흡족했다. 그리고 그 아카시아나무는 새집까지 주렁주렁 달고 있지 않은가?

 

차는 다시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 나망가 국경마을을 거쳐 나이로비로 향해 북쪽으로 내달린다. 해발 1,670m 고원에 위치한 도시 나이로비로 가는 길은 아카시아 나무들이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지곤 하는 점차 고도가 높아지는 오르막길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