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일본에 또 당한다
입력 : 2014.02.18 05:49
미국·일본 관계는 특수하다. 페리 제독의 흑선(黑船)이 에도(江戶)만에 나타난 1853년 이래 지금까지 일본은 여러 차례 미국을 배신했지만 미국은 그런 일본을 변함없이 '아시아 전략 파트너'로 삼고 있다.
미·일 특수관계의 토대를 쌓은 사람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앵글로 색슨 우월주의에 빠진 그는 한국·중국·필리핀을 '미개 국가'로 본 반면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할 아시아의 우등생'으로 여겼다. 그를 '친일파'로 만든 사람은 하버드에서 함께 법학을 공부한 가네코 겐타로(金子堅太郞)였다. 그는 유창한 말솜씨와 세련된 매너로 '백악관의 동창생'을 구워삶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이끌어냈다. 이 밀약으로 일본은 한반도 병합의 길을 열었고, 그 후 100년 이상 미국의 친구가 되었다.
미국은 20세기 초 일본의 공업화에도 도움을 주었다. 1940년 '미·일 통상항해조약'이 폐기되기 전까지 일본산 공산품을 대량으로 사주었고 석유와 고철을 수출해 군수공업의 성장을 도왔다. 6·25전쟁 때는 병참기지 역할을 맡겨 폐허가 된 섬나라 경제를 살렸다.
19세기 후반부터 '은인'과 같았던 미국에 대해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주목할 것은 미국에 대한 일본의 배신이 국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일본 집권층 행동 특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기 전에 이미 조선의 황후를 시해했고, 수만명의 아시아 여성을 전쟁 성(性)노예로 끌고 갔으며, 난징(南京) 시민 30만명을 학살하고, 산 사람을 동물처럼 생체 실험했다. 전후에도 일본은 미·중(美·中) 화해에 화들짝 놀라 미국보다 먼저 중국과 수교하는 약삭빠름을 보였고, 2000년대 초반 남북한이 가까워지자 그토록 혐오하던 북한과 재빨리 정상회담을 열었다.
최근 아베 정부의 행동도 이런 역사의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베는 "침략이라는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의 행동은 '일본이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침략자로 낙인찍혔을 뿐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전쟁 책임과 전범 재판을 부정하는 사고방식이다. 일본은 나아가 자신들이 오히려 전쟁 피해자라고 선전한다. 이 논리가 발전하면 일본은 언젠가 미국에 "원폭 투하를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요구할지도 모른다.
오바마 정부는 '부상하는 중국 견제'라는 눈앞의 목표에 정신이 팔려 일본의 평화헌법 무력화와 군사 대국화에 숨겨진 '배신의 씨앗'을 보지 못하는 듯하다. 한·중(韓·中)이 제기하는 일본 과거사 인식 문제가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한다. 미래 어느 시점에 미국이 일본 국익에 방해가 된다고 여길 때 '천황(일본 국왕)은 신(神)'이라고 배운 세대가 '제2의 태평양전쟁'을 생각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 날이 오면 미국인은 2014년 초 서울에서 떡볶이만 먹고 돌아간 자국 국무장관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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