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지난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들려준 얘기다. 오전 자유시간에 축구를 하던 남학생들이 친구 둘을 따돌리며 끼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장면을 목격한 누군가가 학교에 신고했고, 그날 오후 학년 전체가 수업을 중단한 채 강당에 집합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인성교육 담당 교사로부터 “유사 사건이 재발되면 축구 자체를 금지하고, 부모님을 소환하겠다”는 경고를 받아야 했다.
며칠 후 학교 측으로부터 e-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자유시간 놀이와 관련해 개정된 여러 규정을 설명하면서 폭력의 범주를 고지한 공문이었다. 공문에 따르면 학생들은 개인 축구공을 더 이상 자유시간에 사용할 수 없었다. 공을 소유한 학생이 친한 학생들만 게임에 참여시킬 경우 따돌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 잡기놀이의 경우 두 손가락을 이용해 어깨와 등 상단부를 가볍게 건드리는 것만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었다. 그 이상의 행위는 폭력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은 조언 중 하나가 자녀 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 학생들이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친구를 놀리거나 폭력을 행사할 경우 퇴학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주의 사항이 대부분이었다. 친구를 “바보(stupid)”라고 놀렸다가 부모가 일주일 동안 교실 한구석에서 벌을 서다시피 했다는 등의 사례를 수없이 들었다. 얼마나 우리 사회가 학생들의 크고 작은 폭력에 관용적이었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왕따 문화는 세계 어디서나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큰 귀와 이름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미국은 다인종 사회이기 때문에 왕따의 위험성이 더욱 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사건이 터졌을 때 방지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호들갑을 떨다가 금방 망각하고 마는 한국적 상황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교내에서 행해지는 집단적인 따돌림이나 폭력은 학생 개인이 해결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교 폭력 근절은 무관용 정책에서 시작된다.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대구 중학생 권모군처럼 학교가 자기를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왕따 대책도 실효성이 없게 된다.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