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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 KIBI

Joyfule 2016. 8. 22. 12:06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 KIBI


 

홀로코스트(Holocaust)

 

1.개관

지금까지의 유대인에 대한 박해 중 가장 최악이었던 경우는 히틀러 치하에서 Holocaust이다. 사전적으로 엄청난 대재앙 및 파괴를 의미하는 홀로코스트 원래 완전히 타버리다는 뜻의 희랍어인 holokauston에서 나온 말로, 이후 히브리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번제물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특히 고유명사로 사용될 경우, 2차 세계대전 중 나찌 일당에 의해서 자행된 대규모 유태인 학살을 의미하게 되었다. 히틀러는 1933년 집권 직후부터 유대인 박해를 시작했으며, 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엔 반유대주의를 점령지 지배의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현지인들이 가지고 있던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이용한 것이다. 1942년 나치 독일은 독일과 점령지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을 집단 수용소로 이주시켜 대량 학살하였다. 바로 가스실에 몰아넣고 독가스를 마시게 하는 것으로 말이다. 가장 많이 죽은 아우슈비츠 -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1백 50만 명이 학살당했고, 전쟁 기간 중 무려 600만 명이라는 숫자가 죽임을 당했다.

2.
홀로코스트의 원인

기독교인의 반유대주의의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수십 세기 동안 거의 모든 교회를 지배해온 왜곡된 신학이론 때문이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가장 무서운 죄를 저질렀으므로 이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그들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죽이고 하나님을 죽인 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학이론에 근거하여 유명한 지도자들을 포함한 많은 기독인들이 예수님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한 방법으로써 예수님을 살해한 자들 즉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나타내는 것은 옳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기독교 성인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요한 크리소스스톰과 같은 유명한 설교자도 그의 설교를 통해서 유대인들을 음탕하고 탐욕스럽고 욕심 많고 불성실한 악당들이며, 상습적인 살인자들이고, 파괴자들이며, 악마에 붙잡힌 사람들이다. 또한 방탕과 술취함으로 탐욕스런 돼지와 염소같이 변했다.그들은 오직 한가지만 알고 있다. 배를 채우고, 술을 마시며 서로 물어뜯고 죽이는 것이다. (Flnnery, p. 49)고 비난했다.

 이와 같은 편견의 가장 비극적인 측면은 한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 개인이 그의 당대 주변에 대해서 그런 무서운 감정은 바로 크리소스톰과 그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 수십 세기 동안 많은 기독교인들의 태도와 신학이론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편견은 유대인들에 대한 수많은 폭력적이고 잔악한 행동을 불러 일으켰다. 예를 들면, 11세기 말 제 1차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기독교인들은 이와 같은 신학 이론에 영향을 받아, 유럽 여러 나라를 거쳐 중동으로 진격하면서 여자와 어린애들을 가리지 않고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뒤이어 십자군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한 회당에 유대인들이 모두 모여있는 것을 보고는 회당을 불태우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죽였다. 이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과 십자가의 성호로 행해졌다.

 종교개혁자들도 반 유대라는 그릇된 신학과 편견으로부터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마틴 루터가 그의 교리집을 처음 출간했을 때 유대인들이 그것을 읽고 깨달아 개종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 후 루터는 카톨릭 신자들보다 더욱 신랄하게 유대인들을 비판했다. 유대인에 대한 루터의 비난이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로 비판했던 것을 발견하고는 필자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다음은 루터의 비교적 절제된 표현들의 일부다.

 유대인들은 가장 혹독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회당과 집은 깔아 뭉개 없애야 하고 집시처럼 텐트생활을 하도록 내쫓아야 한다. 종교서적을 갖지 못하게 하고 랍비는 율법을 가르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어떤 직업도 갖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가장 힘들고 가장 지저분한 일만 하도록 해야 한다.

 돈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재산을 빼앗아 개종하는 유대인들을 돕는데 쓰여져야 한다. 이런 모든 조치들이 효과를 못 거둘 경우 미친개를 다루듯 쫓아내야 한다. (Baar,p21)

 수세기가 지난 다음 독일에 나치가 들어섰을 때 그들은 반 유대주의를 선전하기 위해서 루터의 말을 인용했다. 독일과 폴란드에서 나치가 이용했던 반 유대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깊은 역사적인 뿌리는 수 십 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 같은 비극적인 역사의 과정 속에 드러난 것을 요약하면 교회가 뿌린 씨앗을 나치는 단순히 거두웠을 뿐이다. 유대인 대사전에는 이런 루터의 태도를 가리켜 홀로코스트를 위한 화덕을 준비했다고 의미 있는 지적을 했다.

 현대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의 역사의 책임을 단순히 독일이라는 한 나라에 국한하지 않는 다. 전 수상이었던 이삭 샤미르는 홀로코스트의 원인은 유럽의 전체 기독교 국가의 방조 때문이라고 포괄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3.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방인의 책임

신구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여 가족 대부분이 대학살 중에 희생되어 상처 받은 유대인들에게 일부 선교사들은 논리로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라고 자기를 옹호 변명하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영국인인 데릭 프린스 목사도 이런 경험을 했던 것을 아래와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나 자신 그런 주장을 옹호하려 했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날 성령이 나를 깨우쳐 마태복음 23 29-31절에서 예수님이 그때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했다.

 화 있을진 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 함이로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언자들에게 저지른 그들 조상의 죄악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무관심을 강변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야말로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후손임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똑 같은 이론이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교회의 죄악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교회의 한 부분이 아니라고 할 수 없고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했던 것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오직 하나의 교회만 있다. 우리가 교회와 하나되기 원할 때 오직 하나의 교회만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은 변개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좋은 것에 대한 유산만을 주장 할 수 없고 동시에 악한 일에 대해서도 관계를 끊을 수 없다. 특별히 우리는 기독교인들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우리의 몫을 감당해야 하며 이와 같이 무서운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로마 교황 요한 23세는 유대인에 대한 교회의 잘못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시정하려는 모범을 보인 현대 기독교의 지도자였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그는 론칼리 대주교로 있으면서 많은 유대인들을 나치로부터 구하는 데 많은 힘을 썼고 나중에 교황으로서 다음과 같은 고백과 회개의 기도문을 작성하여 모든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오늘날 깨닫고 있습니다. 수십 세기 동안 우리의 무지가 우리의 눈을 가려 당신의 선택된 민족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고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카인의 흔적이 우리의 이마에 남아있는 것을. 수십 세기 동안 우리의 형제 아벨은 우리가 뿌린 피밭에 누워 있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림으로 아벨은 우리가 자아낸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들을 유대인이라 부르며 저주했던 우리를 용서하소서. 그들의 육신 가운데 있는 당신을 또 한번 십자가에 못 박았던 우리들을 용서하소서. 주여,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1965 5 15일자 데일리 스타에 게재되었음)

마태복음 18 1-19절을 통하여 이방인 교회가 유대인들에게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관계를 개선하여 이방인과 유대인이 화해하기를 원하시며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나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18:18-19)

 

이방인 기독교회 전체가 유대인에 대한 과거의 잘못을 정직하게 시인해야만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있는 매듭을 풀어서, 그의 나라 확장을 위해 보다 효과적으로 함께 동역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서는 유대인이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이 아니라 인류의 전체 곧 나의 죄가 예수님을 못 박게 했다는 사실을 다 함께 인정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으심에는 하나님의 사전 계획과 더불어 유대인과 이방인이 나란히 동참되었다는 사실을 일찍이 분명히 증거한 바 있다. 사도행전 2 23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3. 홀로코스트의 영적 배경

인류 역사에서 대학살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류가 하나의 민족을 적대시했던 반유대주의와 같은 예는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너무도 엄청났던 참극을 정당화하기 위해 몇몇 그럴싸한 이론들을 전개하는 것은, 깊은 치유가 필요한 당사자를 또 한번 난도질하는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적인 악한 세력들이 왜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유대인 전멸을 시도하려 했는지, 그 영적 이유를 실제적 선교전략을 논하기 전에 성경에서 소고할 필요가 있다.

 

전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모두 멸절시키려는 시도는 히틀러가 처음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메시아를 탄생시킬 그 민족을 시기하는 이방인들의 심적 저변에는 어떤 공통된 심리가 작용했다고 본다.


첫째, 이집트의 바로가 유대인들이 받는 축복을 보고 위협을 느끼는 질투를 하였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 멸절을 위해 남자들을 위해 모두 죽이려고 시도하며 그들을 핍박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조차도 선하게 사용하셔서 노예생활의 상징인 이방인 땅에서의 삶에 연연하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귀환해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하셨다.

둘째, 에스더 시절에 하만이 모르드개를 비롯한 전 유대인들 멸절시키려고 시도했었고,

셋째, 예수님 당시도 헤롯이 유대인의 왕을 시기하여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2세이하의 모든 아이들을 죽었고,

넷째, 십자군 전쟁 당시의 기독교인들이 유럽과 예루살렘에 사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적개심으로 파멸시켜려 했으며

다섯째,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민족적 우월주의와 시기심에 부추겨진 악한 영을 인도에 따라 히틀러는 전 세계의 유대인들을 진멸할 것을 획책했었고 어느 정도 실행하였다.

 

만약 예수님이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이스라엘 민족이 감당하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 최초의 인간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아를 주시겠다는 메시아적 초유의 언약이 창세기 3 15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너로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의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이 성경 구절에서 지칭하는 메시아 즉, 여자의 후손은 인간이며 이 언약은 아브라함에게로 점진적으로 확대 계승되었다. 이 메시아는 우리들의 원수와 대적의 관계이다. 그 동안 반유대주의적 신학이론을 소유하여 유대인들을 괴롭혔던 사단의 책동에 그리스도인들이 부지간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스가랴서 12 10절에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유대인의 회복을  예언했다.“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나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3:39)

 

4.홀로코스트의 결과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수천 년 만에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것은 인류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유대인들은 옛 땅으로 귀환했을 뿐 아니라-, 수천 년 방랑 생활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았던 문화와 정신을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왔고 현대 그 땅에서 그것을 더욱 꽃피우고 있다.

그러한 땅의 재탄생이 있기까지 유대인들은 풀려지지 않고 있는 고통과 희생의 응어리 홀로코스트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 이방인 선교사들이 어떻게 잘 이해하고 치유하고 서로 화목할 것인가의 과제야말로 직접적 선교사역 이전에 먼저 있어야 할 전 세계 기독교인의 의무인 것이다. 아직도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 사이에 풀어지지 않은 매듭들이 산재해 있기에 세계 선교 현장의 부흥은 요원한 실정이다.


[세계의 종교]라는 책 중에서 저자 휴스턴 스미드는 이스라엘 탄생과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1948년 현대적인 형태의 국가를 건설하게 된 주요한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유대인들이 세속주의에서 유대교로 돌아오는 종교적인 귀향에 대한 열망 이외에 고토인 이스라엘로 향하는 귀환하는 유대인들의 주요한 심리적 요인들을 꼽아보면 다음 4가지로 요약된다.

 

. 안전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1938-45년 사이 나치에 의해 6백만 명의 유대인들(전 세계 유대인 인구의 3분지 1)이 대량 학살을 당하게 되자, 1881년에도 러시아에서 유대인 학살을 경험했던 이들은 유럽적인 생활이나 문화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절박감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상처 받았거나 위협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자유를 호흡할 수 있는 장소를 원했다.

 

. 심리적인 이유도 있다. 어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세계 도처에서 소수인의 위치로서 살아가는 것은 심리적으로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비루함과 자아 상실은 자신의 나라를 가질 때만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문화적인 요인이다. 유대=교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그 전통도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세계 어딘가에 유대교의 정신이 지배하는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 사회적 혹은 유토피아적 이유 때문이다. 이 세상 가운데 예언자적 이상과 윤리가 역사적으로 실현된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까지 역사가 이루었던 그 이상의 총체적 삶의 양식(경제적 구조를 포함하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은 좀 더 건전한 방식을 통한 공동체 건설을 모색했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수 세대에 걸쳐 형성된 이 선구자들은 모든 삶의 방식을 규정한 이전의 모습에서 탈피한 새로운 방식의 삶을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몸 담아온 땅에서의 농사 방식과는 완전히 결별하고, 약속의 땅에서 육체의 노동과 삶에 기초한 새로운 방식과 완전히 결별하고, 약속의 땅에서 육체의 노동과 삶에 기초한 새로운 방식의 인간성을 탄생시키고자 하였다.‘키부츠라고 불리는 집단 농장 형태는 그 이념을 실현하는 표현이었다.

어떤 형태로 규정짓든 간에 현재 이스라엘은 존재하고 있다. 그 성과는 괄목할 만한 것이다. 국토는 개척되기 시작했고 유대계 이주민의 환대 정책과 노동 계급을 위한 배려, 새로운 집단생활 방식, 지적 문화적 생동력 등 모두가 현재의 이스라엘을 떠받치고 있는 힘들이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유대인들에게 두 가지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첫 번째는 대량학살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이런 엄청난 일을 겪게 되는 의미에 대하여 그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왜 그토록 큰 죄를 용인하셨는가라고 묻는 신학적 명제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또 다른 면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이스라엘이란 국가형태가 과연 이상적인 형태인가라는 물음이다. 서구 문화 건설의 기본이념이 정의와 자유라는 두 축인바, 이스라엘은 1967년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후 모든 나라에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유대인들은 자국의 안보상 이를 유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팔레스타인의 국가 이익과 이스라엘의 안보 사이의 긴장은 첨예한 것이고 아직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시온주의는 한때 전 세계 유대인의 마음에 이스라엘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이상적 비전을 소유하게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집권당이 강경파와 온건파로 번갈아 가면서 교체되어 정책을 바꾸어간다 할지라도 이상적인 국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유대인들은 1948년 독립 이후 반세기 만에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영국 제4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한때 깨어진 꿈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점령지구내에서 유대인들이 얼마나 불의한 식민정책을 펴고 있는가를 고발했다. 만약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의 대학살을 참혹한 역사라고 인지했다면, 아랍인들에게 그 고통을 재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양심 있는 유대인들은 인식하고 있다. 시온주의로는 이상적인 이스라엘이 건설 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수천 년간 방황을 한 후 본토로 돌아갔을 때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되찾았듯이, 유대인들은 이제 예수님을 온전한 통치자인 메시아로 발견하고 영접할 때만이 진정한 '쉼을 얻게 될 것이다.( 11:28-29)

 

참고 도서

 「비전 스쿨 교재」

「제2의 출애굽」  스티브라이틀

「하나님께서 결코 잊지 않으시는 이스라엘」

 

관련 웹 사이트

이스라엘 문화원 http://www.israelisreal.co.kr

(출처: KIBI 반유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