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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울 게 전혀 없는 히딩크의 '리더십'

Joyfule 2006. 10. 20. 03:54


★새로울 게 전혀 없는 히딩크의 '리더십'  
알고도 행하지 않는 우리의 몰상식이 큰 문제 
히딩크 리더십이 새삼 화제다. 
기업이나 정치권은 물론이요, 사회전반에 걸쳐 '히딩크 따라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얼마 전 <히딩크 리더십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소신, 선수선발의 공정성, 원칙과 규율중시, 전문지식 활용, 혁신추구 등이 
히딩크에게서 배울 점이라고 열거한 바 있다. 
정치권도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히딩크 이미지 써먹기'에 안달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 앞에 열거되는 '히딩크가 주는 교훈'은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우리가 늘 듣고 보는 말이다.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나, 
공정하게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는 것, 
원칙에 충실하고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따위의 말들은 
우리가 귀가 따갑게 듣고 지겹도록 봐온 것이다.
▲ 지난 5월 26일, 월드컵 개최 전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프랑스 월드컵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의 히딩크 감독.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럽게 그런 이야기들이 
'따라 배워야 할 교훈'으로 거론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는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못한다는 점, 
인재선발에 공정성이 없다는 점, 
원칙을 무시하고 '대충주의'에 익숙해 있다는 점, 
눈앞의 결과에 눈이 멀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는 부끄러운 자기 고백인 셈이다.
흔히 우리 사회를 '냄비근성'으로 표현되는 '조급증 사회'라고 한다. 
뭐 하나라도 진득하게 추진해나가는 것이 없고 쉴 새 없이 
'끓었다' '식었다'를 반복하는 점을 비판하는 말이다. 
혹자는 이런 근성이 오히려 변화시대에서 살아남는 경쟁력의 원천이라며,
 '한국만의 장점'으로 추켜세우기도 하지만, 
사실 별로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조급증은 소신을 갖고 일을 추진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시간을 가지고 인재를 육성하고 장기적 안목으로 
인재를 고르는 여유도 물론 주지 않는다. 
눈앞의 결과에 급급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다보니 
원칙이고 뭐고 다 사라지고 편법과 술수만 판을 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기본을 가르치는 교육 보다는 온통 속성교육에 정신이 팔려 있다. 
기본은 무시되고 점수만 오르는 사상누각식 교육이 판을 친다. 
서점에서 팔리는 책들까지 조급증을 부추긴다. "한번만 읽으면 된다"느니, 
"하룻밤에 다 읽는다"느니 "한 권으로 끝낸다"느니 하는 식으로 
온통 단번에 끝장을 낸다는 허황된 거짓을 떠벌린다. 
하다못해 사람의 생명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자동차 운전면허도 
'하루 만에 따도록 해 준다'고 하는 판국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분명한 것은 정치든, 경제든, 운동이든, 사랑이든 '한 번'에, 
'한순간'에 끝내거나 완성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단기간에 모든 것을 끝내라고 압박하고 괴롭힌다.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감독은 네덜란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그간의 상황과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실력이 떨어지면 남보다 더한 노력으로 이를 보충하면 되는 것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려는 의지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끝 부분에서 "모든 것은 그때에 알게 될 것이다"라고 적었다.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지만, 
"모든 것은 그때에 알게 될 것"이란 말을 특히 감동적이다. 
이는 순간의 비판과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을 갖고 묵묵히 노력할 뿐이며, 
결과는 그런 과정이 말해줄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우리가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모든 것은 그때에 알게 될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분명한 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확고한 비전과 추진 프로그램이 있다면 조급증을 부추기는 
주위의 비난과 비아냥거림은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조급증과, 그 조급증으로 인한 
'일 그르치기'는 확고한 비전과 그것을 실천해나갈 구체적인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이 히딩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특히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런 비전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행동하지 않는 계획은 그야말로 헛된 공상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행동하되 당장의 결과를 노리고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그 결과는 반드시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육이든 경제든 정치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기본을 중시하지 않는 태도다. 
기본을 무시한 교육이 인간교육을 망치고, 기본을 무시한 경제가 부실로 나타났고, 
기본을 무시한 조급증이 나라의 기본을 허약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은 그때에 알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히딩크의 말처럼, 
누구든 어느 분야에서건 조급증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기본을 준수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면 히딩크가 우리의 축구를 혁신시켰듯 
우리 사회도 지금보다 한 단계 진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중요한 점은 히딩크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점이 아니라, 
세상에 널려 있는 교훈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세상을 진보시킨 훌륭한 리더들의 공통점은 
교훈적인 내용을 보고 느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철저하게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점이다.
권태윤 기자 bigmankty@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