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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박인환 작시, 이진섭 작곡, 현인(박인희) 노래)

Joyfule 2013. 11. 4. 11:44

 

 

♣ 세월이 가면(박인환 작시, 이진섭 작곡, 현인(박인희) 노래)

               술집 「銀星」에서 외상값 때문에 작사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시인 朴寅煥(박인환·1926∼1956)은 1950년대의 대표시인 중 하나이다.
그의 이름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詩작품은 「목마와 숙녀」일 것이다.
박인환은 강원도 인제 출생으로 평양의전을 중퇴하였다. 한때 서점 「말리서사」를 경영하면서 金洙暎(김수영), 金景麟(김경린) 등 후반기 동인들과 친하게 지냈다.
모더니즘적 경향으로 詩작품을 써서 「朴寅煥 시선집」(1955)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도시적 감각과 서정으로 사랑의 슬픈 추억을 노래한 아름다운 내용을 담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쓸쓸한 정서가 감돈다.

이 詩가 노래로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9·28 수복 이후에 피란갔던 문인들이 서울로 돌아왔을 때 朴寅煥 등을 비롯한 한 떼의 친구들은 명동에 둥지를 틀었다. 폐허가 된 명동에도 하나 둘 술집이 들어서고, 식당이 들어서서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나게 되었다.

당시 탤런트 崔佛岩(최불암)의 모친은 「銀星(은성)」이란 술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박인환 등이 밀린 외상값을 갚지도 않은 채 연거푸 술을 요구하자 술값부터 먼저 갚으라고 요구했다.
이때 박인환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펜을 들고 종이에다 황급히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은성」 주인의 슬픈 과거에 관한 시적 표현이었다.
작품이 완성되자 朴寅煥은 즉시 옆에 있던 작곡가 李眞燮(이진섭)에게 작곡을 부탁하였고,
가까운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가수 현인을 불러다 노래를 부르게 했다.
모든 것이 바로 그 술집 안에서 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이 노래를 듣던 「은성」 주인은 기어이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밀린 외상값은 안 갚아도 좋으니 제발 그 노래만은 부르지 말아달라고 도리어 애원하기까지 하였다.
이 일화는 이른바 「명동백작」으로 불리던 소설가 李鳳九(이봉구)의 단편 「명동」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간적 향취가 물씬 풍기던 시절의 멋스런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이 노래는 맨 처음 현인이 불렀으나, 이후 1970년대 초반 애처로운 목소리의 소유자인
가수 朴仁姬(박인희)에 의해 다시 리바이벌되어서 대중들의 크나큰 사랑을 받았다.
가수 桂壽男(계수남)이 그 특유의 저음으로 취입한 노래도 썩 들을 만하다.
지금도 분위기 있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곡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ㅡ 글쓴 이   이동순 (영남대 교수 시인, 가요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