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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늦추기

Joyfule 2021. 5. 8. 14:01

 

 

 

            속도 늦추기   

 

 

오늘날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기계 더미 속에 갇혀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실행하지도 못할 계획들, 지키지 못할 약속들, 소화해내지 못할 바쁜 일정들, 그리고 지키지 못할 마감일정 때문에 당황하게 될 뿐입니다.


서두름 병
현대인들은 생산성, 속도, 효율성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빠른 것, 즉 속도와 사랑에 빠졌다. 운전도 빨리하고, 음식도 빨리먹고, 심지어는 사랑도 빨리한다. 기록을 깨는 일에 목을 매고, 일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느라 안달한다. 우리의 인생을 소화하고, 경험을 농축하고, 생각을 압축한다. 우리는 메모와 광고에 둘러싸인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다른 문화들은 조급함이 쓰레기를 만들어낸다고 믿는 반면, 우리는 빠른 것이 빈틈없는 것이며, 힘이고 성공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미국사람들은 항상 빨리빨리 서두름 병에 빠져 있다.


시계는 본래 기도와 노동시간을 규칙적으로 잘 지키기 위해서 수도사들이 발명했습니다. 6세기경에 기록된 성 베네딕트의 계율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공동체는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거나, 거룩한 독서에 힘써야 한다." 베네딕트 전통처럼 노동과 기도는 분명 우리의 영혼을 고취시킵니다. 수도사들은 열심이 일했지만 여전히 하루 4~5시간 정도는 독서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에게도 시계가 있었지만 우리처럼 '빨리빨리 병'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인간이 "기계를 발명했지만, 우리 손으로 만든 기계를 삶의 모델로 삼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프레드 테일러는 스톱워치를 필라델피아의 미드베일 철강회사의 과업관리에 적용했습니다. 생산성은 급상승했습니다. 1911년, 과학적 관리법이라는 기록에서 테일러는 이 무정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우선이었으나, 미래에는 시스템이 우선할 것이다."


성과중심적인 세상
성과중심적인 세상은 "당신은 자신이 생산해내는 것만큼만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무슨 믿음처럼 여기게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서 우리의 가치는 자신이 생산해내는 것으로 평가되어, 많이 생산할수록 더욱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돈이다."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금언도 생산력이 가치를 좌우한다는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항상 급한 일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현대인들이 멀티태스킹, 즉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처리하려고 하는 증상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에서조차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
교회에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교회가 시키는 모든 일을 하려는 '만능 일꾼'들이 있습니다. 약간 뒤틀어서 얘기한다면, 교회의 운영마저도 때로는 세상적인 프레드 테일러 방식으로 운영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교회가 지나치게 혹사시켜서 거의 탈진상태까지 이른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이 일처리를 잘하기 때문에 교회는 계속해서 새로운 위원회에 속하게 하고, 또 다른 사역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주함과 과로 때문에 결국 쓰러지고 맙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가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으로 우리 삶을 파고듭니다. 무시무시한 괴물의 모습이나 성적인 유혹처럼 항상 붉은 악마의 모습으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 마음 가운데 잘못된 생각(이를테면 우리의 성과가 가치를 결정한다는)을 집어넣습니다. 일단 그런 잘못된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됩니다. 사탄이 우리 마음에 몰래 불어넣은 잘못된 믿음, 오해와 편견은 대부분 '신앙적인 모습'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쉽게 눈치 채지 못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아주 잘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성공의 제단위에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하나님과의 교제, 우리 가정, 우리의 영적인 건강과 육체의 건강-을 희생물로 바쳤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면, 이미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존 오트버그 목사가 상당히 막중한 사역을 새로 맡게 되었을 때 달라스 윌라드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달라스 윌라드 교수는 "자네의 삶 가운데서 조급함을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리게." 오트버그 목사는 그것을 받아 적었습니다. "오케이, 그 다음은요?" 오트버그 목사가 묻자 교수가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은 없네. 그냥 그렇게 해, 존. 그럼 모든 게 잘 될거야." 존 오트버그 목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급함을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둘러서는 안되는 일
삶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들은 결코 쫓기듯 처리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일, 생각하는 일, 음식을 먹는 일, 웃는 것과 기도하는 것까지 쫓기면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다른 말로 하면, 시간입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급함과 분주함에 쫓겨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영적인 훈련이나 자기관리(예를들면,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같은) 등의 정작 중요한 일들을 소홀히 여깁니다.

영적 성장은 아주 더딥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몇 달 동안 성경공부를 하고, 짧은 기간 기도훈련을 통해 극적인 변화를 맛보고 싶어 합니다.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면 뭔가 잘못했거나,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자책하며 좌절감에 빠지고 맙니다.


어떤 학생이 총장에게 찾아가서 학교 커리큘럼에 있는 것보다 더 속성으로 졸업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물론 있지." 총장이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자네가 뭐가 되고 싶은지에 달려있다네. 하나님이 떡갈나무를 만드실 때는 100년이 걸려서 만드시지만, 호박을 만드는 데는 겨우 6개월이면 된다네."
떡갈나무는 1년에 겨우 두 달 정도만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열 달은 그 성장을 견고하게 하는 데 시간을 들인다고 합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변화의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급함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내면세계의 상태입니다. 칼 융은 "조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마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속도를 늦추고 살아갈 때의 유익
오랫동안 매우 탁월한 부목사로 섬겼던 매트 목사는 매년 더 많은 사역의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매사에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분주함이 영적인 삶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내와 상의한 후, 매트는 담임목사를 찾아가 자신의 사역업무를 줄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물론 사역을 줄이면 사례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지만, 매트는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요즘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예수님 발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영적인 교제의 시간) 더 늘렸다고 합니다. 확실히 그는 이전보다 덜 일하고 성과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몰론 재정적으로도 부족함을 경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영혼은 놀랄 만큼 성장하고 있습니다. 매트는 자신에게 꼭 맞는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느리게 살다보면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속삭여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고, 또한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그때 우리는 이 두렵고 지친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 이 글은 『선하고 아름다운 삶』(제임스 브라이언 스미스 지음, 생명의말씀사)의 제 9장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