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의 가시를 빼라.
손톱 밑에 가시가 박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고통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자그마한 가시가 박혔는데 왜 이렇게 아픈지 아는가? 박힌 곳이 바로 손톱 밑의 여린 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톱 바로 밑에 박혔기 때문에 빼기가 너무 어렵다. 바늘이나 이쑤시개로 아무리 밀어 넣어도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손톱 밑의 살이 얼마나 여린지 눈물이 쑥 빠진다. 그래서 빼는 걸 포기하자니 은근히 아파오는 게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손을 늘 사용하여야하기에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그대로 전달되어 죽을 맛이다. 그래서 이도 저도 못하는 아픔을 손톱 밑의 가시라는 속담이 생겼나보다.ㅎ 그런 일이 또 있다.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죄이다. 보통 죄란 살인, 절도, 불륜 등 현행법을 위반한 죄를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각과 말, 행동과 성품 등을 총망라하여 말하고 있다. 오늘은 이중에서도 성경에서 콕 집어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심각한 폐해를 입히는 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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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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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연민은 누구나에게 아킬레스건과 같은 죄이다. 자기 연민의 왜 손톱 밑의 가시인줄 아는가? 자기 연민은 자기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다. 자기 연민은 서글픔, 우울함, 억울함, 처량함, 슬픔, 서러움 등으로 표현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숭배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즐기는 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으며 죄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악한 영들은 이런 감정을 부추기고 죄를 짓게 만들어, 불행에 빠트려 고통을 주고 영혼과 생명을 사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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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연민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며,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또한 억울함이 지속되면 신경쇠약에 화병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연민의 감정을 즐기기 일쑤이다. 많은 가요들이 아련한 슬픔에 잠기거나 서글픔이나 우울함을 인용하여 인기를 얻고 있으며, 중년들이 주로 가는 카페나 커피숍도 이런 감정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자기연민의 감정은 악한 영이 부추기는 느낌이다. 성경은 지속적으로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귀신들은 자신의 감정에 빠져서 서글퍼하고 우울해하고 억울해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이런 귀신의 소리를 듣는다면, 죄에 늪에 빠져서 고통의 서곡을 알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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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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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마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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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21:20~22)
비교의식도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는 생각이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하는 것은 개개인을 만드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불평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포도밭비유에서도 보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포도밭주인에게 불평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피조물인 사람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다른 사람들이 받은 축복을 자신과 비교하여 불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대 놓고 대드는 불손의 극치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천국에 가겠는가? 두 번째 구절은 베드로가 사도요한의 앞날을 예수님께 물어보는 장면이다. 왜 베드로는 요한의 미래를 물어보았을까? 이 역시 비교의식에서 비롯된 발로이다. 아시다시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그렇다보니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시기심과 비교의식이 작동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질문을 일축하고, 남의 일에 상관 말고 자신의 일이나 잘하라는 질책성 권면을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죄악을 밥 먹듯이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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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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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한 죄이다. 성령의 열매가 인내라고 하신 이유를 보면, 조급함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마음인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네 민족이 빨리빨리 병으로 유명하며, 교회 안에도 이런 악한 습성이 스며들어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하면서 안절부절 하기 일쑤이다. 기도하면 응답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여 안달복달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며, 믿음이 없다는 것이 불신앙이 아닌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죄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희생의 강도를 높여가며 하나님의 목을 죄고 있다. 빨리 기도응답을 받으려고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기도할 때마다 헌금봉투를 가져오며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사람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가? 이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심각한 죄악만을 잉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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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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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게 바로 선입견이다. 특히 인생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선입견이 강하다. 물론 그간 살아온 경험으로 보아 미리 예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성경적이 아니다. 충분한 이유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사람들을 미리 예단하고 판단하는 것은 사악한 죄이다. 모든 사람을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 근거도 없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행위를 하나님이 좋아하시겠는가? 귀신들은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넣어주어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든 생각이나 느낌, 계획, 판단은, 죄다 악한 영이 넣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악한 영들은 교묘하게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어 죄를 짓게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놓고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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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빼지 않는다면 살아갈수록 고통이 배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죄를 싫어하시며 죄인을 가까이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심각하게 깨닫고, 전심으로 회개하며 죄와 피터지게 싸우지 않는다면 천국은 당신의 거처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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