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조선 제일 뻔뻔녀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20-10-07 03:00수정 2020-10-07 03:45
지난해 10월 3일 조국 퇴진 시위
올해 10월 3일도 집회 가능했다면 추미애 퇴진 시위 벌어졌을 것
국민 우롱하는 대통령 처신에 국민은 돌아버릴 지경이다
국민은 지난해 10월 3일 100여만 명이 모인 광화문 집회로 조국 당시 법무장관의 사퇴를 이끌어냈다. 사퇴 후의 상황은 어처구니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조선 제일 위선남을 몰아냈더니 조선 제일 뻔뻔녀가 왔다. 여우나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라는 옛 표현은 이 판국에는 불필요하게 구수하다. 그냥 쓰레기차 치웠더니 똥차 온 격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지난달 1일 국회에서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의 “보좌관이 전화해서 휴가 연장에 대해 물었다는 보도가 맞느냐”는 질문에 “그런 사실이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런 사실이 없다”가 아니라 “그런 사실이 있지 않다”는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지금 돌아보니 도둑이 제 발 저리는 화법이었다.
추 장관은 박 의원이 다시 확인하듯 “당시 보좌관에게 (전화하라고) 지시했느냐”고 묻자 “뭣 하러 그런 사적인 일을 지시하겠느냐”고 답했다. 굳이 질문에도 없는 사적인 일이란 말을 꺼낸 것은 앞선 대답의 단호하지 못함을 깨닫고 보상하려는 심리였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박 의원이 “만약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전화하라고) 지시했다면 직권남용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자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되는데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그런 사실이 없다”며 쐐기를 박았다.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추 장관 아들과 보좌관이 형 아우 하는 친밀한 사이여서 부탁한다면 직접 부탁했을 것이라고 방어막을 쳤다. 검찰 수사 결과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준 사실이 드러났다. 본인이 인정한 대로 직권남용죄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추 장관은 추석 연휴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한마디 사과도 없이 오히려 의혹을 제기한 측에 책임을 묻겠다고 썼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표현으로는 격화소양(隔靴搔양)의 느낌이 없지 않다. ‘똥 싼 게 성내는’ 꼴이었다.
추 장관은 추석 연휴에 페이스북에 두 번째 글을 올렸다. 이번엔 드디어 ‘보좌관에게 지원장교 전화번호를 준 사실’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아들에게서 전달받은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전달한 것을 보좌관에 대한 ‘지시’라고 볼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세상에는 당연해서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는 자유심증(自由心證)의 사실이 있다. 과연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최초에 아들에게서 전달받았는지 의문이지만 누구에게서 전달받았든 그 번호를 보좌관에게 준 것은 전화를 하라고 지시하기 위함이다. 그 인과관계는 입증할 필요도 없는 것이며 당연시된 인과관계를 깨려면 깨려는 측이 반대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해명도 안 되는 해명을 늘어놓는 것은 궁지에 몰린 추 장관의 궁핍한 처지만 드러냈을 뿐이다.
1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어느 장관의 사퇴를 요구할 때는 그 요구가 합당하든 아니든 경질을 고려하는 것이 대통령의 도리다.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등 민주화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잠시 고집을 부렸겠지만 결국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을 경질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조 전 장관이 마지못해 사퇴를 했을 때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후속 인사를 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국민을 조삼모사(朝三暮四)에 속는 원숭이 취급하는 후속 인사를 했다.
더 이상 쓰레기차나 똥차를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하다. 쓰레기차를 배차하고 똥차를 배차하는 운영자의 문제다.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 사퇴 이후 그를 향해 ‘마음의 빚’ 운운한 데 이어 추 장관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 열린 권력기관 개혁 회의에 웃으며 나란히 입장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국민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검찰 수사로 추 장관의 거짓말이 드러난 후에도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거짓말을 했던가요”라며 의뭉스러운 딴소리를 했다. 여권에서 가장 합리적인 축에 속한다는 사람의 반응이 이렇다. 말로 하는 정치를 위해 여야가 공유해야 할 ‘최소한의 사실’마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언론의 비판도 통하지 않을 때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지만 현명한 국민들은 방역을 망친다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분노를 삭이며 올 10월 3일 광화문 집회를 보류했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머릿속에서는 1년 전과 같은 광화문 집회가 열려 사퇴와 하야 요구가 하늘을 찌르는 상상이 펼쳐졌다. 그러니까 경찰차벽으로 ‘재인산성’을 쌓은 것 아니겠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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