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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홍석황 장로 (장로교)

Joyfule 2009. 8. 18. 08:27

순교자 홍석황 장로 (장로교)

 

홍석황 장로(1901-1945)


1945년 11월 19일 소련군이 진주하고 북한 주민들은 소련군을 환영하기 위하여 용암포 국민학교에 모여 모두가 인공기로 무장한채 독립투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교회신도들의 얼굴이 비치지 않자 환영회가 끝날 무렵 공산당 정치부의 사주를 받은 누군가의 입에서 "민족과 공산주의를 배반하는 교회를 타파하자." 청년들이 우 합동으로 구호를 연창했다.

용암포제일교회로 몰려간 그들은 이기혁목사가 노회차 평양에가고 없자 가지고 간 곡괭이 삽 쇠스랑 등으로 강대상 파아노 의자들을 파괴했다. 그들이 무차별 성구를 부수고 있을때 소식을 들은 홍석황장로는 교회로 뛰어들어갔으나 살기가 번뜩이는 성난 무리들을 말릴 염도 나지 않아 교회당 한 구석에 선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주여! 이 살상과 증오로 가득찬 무리들 속에서도 당신은 계시는줄 압니다. 당신이 진정시켜 주옵소서" 이때였다."목사가 없으면 교회의 주인은 장로다"하며 성난 군중들은 홍장로 주변으로 모여들어 쇠스랑으로 무자비하게 홍장로의 등어리를 찍어 내렸다. "윽" 홍장로는 숨이 막혀 간헐적으로 단말마의 비명을 쏟아 놓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등 가죽에서 핏줄기가 물총처럼 솟구쳐 올랐다. 피.붉은 피가 예배당 마루바닥에 어지럽게 번져 나가자 무리들은 누가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홍장로의 쓰러진 몸을 짓 이겨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홍석황은 1901년 평북 용천군 용암포에서 용암포 제일교회 장로 홍승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3.1 운동 때 교회에서 경영하는 구세학교를 졸업한 후 신성학중학교를 졸업한 홍석황은 목공소를 경영하는 아버지와 함께 태극기를 목판에 새겨 복사해서 나누어주기도 했다.

1931년 홍석황은 30세에 용암포 제일교회에서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장로가 됨으로 3대장로의 가업을 이루게 되었다. 용암포는 비교적 조용한 동리였다. 온 마을의 주민들이 한 가족처럼 살았기 때문에 굶주리는 이들이 없었다. 조선의 천국이 바로 용암포였다. 그러나 해방이 되면서 공산당이 강점하고 정권을 수립하면서 용암포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땅 한평 갖지 못한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공산주의에 부화뇌동하여 용암포에 찬바람이 불기시작했다. 1945년 11월 19일 소련군 환영대회에 교우들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여공산당 푸락지들은 난동을 부리면서 학교를 때려부수고 끝내는 교회까지 침범해 파괴를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