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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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이다. ‘갈대아’는 오늘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라크의 남부지역을 지칭하며 ‘우르’는 그 지역에 있던 고대도시 이름이다. 지금부터 약 4000년전 이라크의 남부지역 ‘우르’에서 아브라함 가족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오늘날 전쟁의 먹구름으로 뒤덮인 이라크가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자란 땅인 것이다. 그곳이 걸프전 이후 또 다시 전쟁의 화염이 휩싸이게 될 것을 생각하면 아픈 마음으로 엎드려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공의가 하루속히 그 땅에 이루어져서 이라크도 세계 평화에 공헌하는 화평의 땅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하면서 이 글을 쓴다. 이라크는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배가량 되는 크기의 땅이다. 이 땅의 중심부에는 2개의 큰 강이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린다. 이 2개의 강은 이라크를 종단해 흐르다가 하류에는 합쳐져서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들어간다. 오른쪽의 강이 티그리스 강이고 왼쪽 것이 유프라테스 강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두 강 사이의 지역을 ‘메소포타미아’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 지명이 쓰이고 있다. ‘메소’란 그리스어로 ‘사이’라는 뜻이며 ‘포타미아’란 ‘강’을 뜻한다. 글자 그대로 ‘강 사이의 지역’이라는 뜻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고대에서부터 인류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이곳 남부지역에서 고대 4대 문명 중의 하나가 꽃을 피웠고 창세기에 기록된 바벨탑도 이 지역에 세워졌다. 또한 고대 중동지역 전역에 군림했던 아시리아(앗수르) 제국도 이 지역에서 일어났고 유다왕국을 멸망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워 파괴했던 바빌로니아 제국도 바로 이 지역에 있었다. 유다왕국이 멸망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한의 포로 생활을 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이렇게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구약성경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요나 선지자가 회개를 외쳤던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웨’,그리고 고대 세계 8대 불가사의 도성 ‘바벨론’ 등 역사적인 도시들이 많이 있어 고대 문명의 유적과 유물들이 산재해 있는 지역이다. 그러기에 12년전 걸프전 때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은 전쟁의 와중에도 유적들을 파괴시키지 않으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다행히 유적들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도 그렇게 되리라고 보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필자가 몇년전 ‘우르’를 찾았을 때 4000년 전의 문화유적 주위에 이라크군이 군사시설을 설치해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전쟁 때 공격을 막기 위해서 인류의 문화유산을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다. 이라크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고 ‘성경 세계’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그러기에 이곳은 성경 역사기행에서 빠져서는 안될 지역이다. 그러나 이곳은 걸프전 이후 항공기 운항이 금지되어 있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이번 전쟁으로 당분간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까지 이라크를 찾아가는 유일한 길은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자동차를 이용하는 방법뿐이다. 암만을 출발해서 동쪽으로 가면 황량한 요르단 동부 사막지대가 펼쳐진다. 사막 사이로 뚫린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350㎞쯤 달리면 요르단과 이라크 국경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요르단 출국수속과 이라크 입국수속을 밟아야 한다. 이라크에 입국한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그러나 의외로 사람들은 친절해서 1시간 이상 기다리여 하지만 따뜻한 차까지 대접한다.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입국수속 때 차를 대접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지루한 이라크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거대한 사담 후세인 동상이다. 이라크에서는 큰 거리나 대형건물에는 으레 후세인 동상이나 거대한 초상화가 걸려 있다. 바그다드대학 캠퍼스에도 그의 초상화가 여러 곳에 걸려 있어 후세인 우상화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말해준다. 이라크에 입국한 후 다시 광활한 사막에 만들어진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계속 달린다. 몇군데 간이주유소를 제외하고는 변변히 쉴 만한 곳도 없는 사막의 고속도로를 540㎞쯤 달리면 마침내 유프라테스 강과 만나게 된다. 이 강을 건너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지금까지 사막지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푸른 수풀,울창하고 우람한 대추야자 나무들. 한눈에 비옥한 땅임을 보여준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신기할 정도이다. 유프라테스 강을 건넌 후 동쪽으로 1시간 남짓 더 달리면 티그리스 강변에 세워진 고도(古都) 바그다드에 도착하게 된다. 이 도시는 762년 사라센의 아바스 왕조가 새 수도로 정한 이래 아랍세계의 중심도시 역할을 해왔고 ‘아라비안 나이트’를 비롯해서 수많은 아랍 설화문학의 무대가 되어왔다. 현재 인구 500만의 이라크 수도로 이번 전쟁에서 태풍의 눈이 되는 곳이다. |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 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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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전황이 점점 가열되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의 예상과는 달리 이라크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원래 이라크는 중동 아랍권에서는 군사강국이다. 더구나 이라크군은 1980년대 이란과의 8년전쟁을 통해서 상당한 실전 경험을 축적했다. 1991년 걸프전으로 군장비는 과거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고대 중동 세계를 제패했던 바빌로니아 제국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이라크는 결코 과소평가할 상대가 아니다. 또한 걸프전의 패배를 거울삼아(사담 후세인은 이라크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승리한 전쟁이라고 자국민들을 세뇌시켰다) 현재 새로운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이라크 사람들은 이번 전쟁을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지하드’(성전)라고 확신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볼때 이번 전투는 단기간에 쉽게 끝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금 치열한 전쟁터가 되어 있는 이라크는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 역사의 중요한 무대 중의 하나이다. 이라크는 한반도 면적의 배나 된다. 국토의 70% 정도는 메마른 사막이나 험한 산악지대여서 사람이 살기 어렵다. 그러나 나머지 3분의 1은 대단히 비옥하다. 이 지역이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땅 곧 ‘메소포타미아’다. 기름진 땅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지역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이 일어났다. 구약성경에서 ‘시날 평지’(창세기 11장 2절)라고 부르는 이 지역에서 인간들은 나무 열매를 따먹고 강의 물고기를 잡는 수렵단계를 벗어나 한 곳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농업단계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시날 평지는 비옥한 토양과 수량이 풍부한 두 강이 흐르고 있어 농업문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두 강의 물을 농업용수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관개사업이 필요했고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공동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이 등장했고 점차 왕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가 형성되었다. 주전 3000년대에는 시날 평지에 수많은 도시국가가 생겨났고 왕실 행정을 기록할 필요에 따라 문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쐐기문자(설형문자)’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자의 사용은 인류 문명을 선사시대에서 기록을 남기는 역사시대로 전환시켜 주었다. 이렇게 메소포타미아 남부 시날 평지에서 일어난 고대문명을 수메르 문명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수메르 문명의 중심에 ‘우르’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르’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난 고향이다. 며칠 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나시리아’ 근처에 ‘우르’가 위치했었다. 주전 2000년께 수메르 문명은 전성기를 이루었고 그 중심은 ‘우르’였다. 당시 우르의 왕 ‘우르남무’는 상당히 방대한 분량의 법률 조항을 제정했다. ‘우르남무 법전’으로 불리는 이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 최고의 법전이다. ‘함무라비 법전’보다도 적어도 200년 이상 앞선다. 우르남무 왕의 업적으로 지금까지 우르에 남아 있는 유적은 그가 세운 거대한 계단식 탑이다. 달의 신(月神)에게 바쳐진 이 거대한 탑은 현재 21m 높이 부분까지 남아 있어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다. 진흙 벽돌로 정교하게 쌓았고 벽돌 사이에 사용한 역청은 4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바벨탑의 모습을 추정케 하고 있다. 고대 수메르 문명의 중심도시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 가족이 그곳을 떠나 문화적으로 낙후되고 지형적으로 척박한 땅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역사는 막이 오른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메마른 가나안 땅에서 비옥한 문명도시 ‘우르’로 이주하는 것이 오히려 합당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정반대이다. 인간의 타산적 계산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시작된 것이다. 찬란했던 수메르 문명도 영원히 계속되지는 못했고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축은 ‘바벨론(바빌로니아)’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바벨론 제1왕조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함무라비 왕(주전 18세기)으로 대표되는 바벨론 제1왕조는 비교적 단명하게 끝나고 새로운 패권국가가 등장하게 된다.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앗수르(아시리아) 제국이다. 약 800년간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절대적 세력으로 군림했던 앗수르 제국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무자비한 정복자로 등장한다.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조공을 바치며 굴종해야 하는 한낱 봉신국가에 불과했다. 이스라엘의 예후가 혁명을 통해 왕위에 오른 후 많은 조공품을 갖고 앗수르 왕에게 가서 무릎꿇고 절하는 모습이 돌에 부조로 남아 있다. 앗수르 왕궁에서 발굴된 이 역사적 자료는 이스라엘의 41명의 왕들 중에 그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이며 이스라엘과 앗수르 제국과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주전 8세기말 앗수르 제국의 살만에셀 왕은 대군을 이끌고 원정길에 올라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공격했다. 3년에 걸친 포위작전 끝에 사마리아는 함락되었고 북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후로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난 제국 세력과 이스라엘간 악연의 역사는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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