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엄상익 변호사 - 만난 사람들이 나의 인생

Joyfule 2024. 8. 16. 13:11


엄상익 변호사 - 만난 사람들이 나의 인생

 

이스라엘을 여행하다가 성경속의 디베랴 호수가에 머문 적이 있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과 구운 생선과 빵으로 아침을 먹던 바로 그자리였다. 예수가 배로 가서 물고기 몇 마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날 새벽 잡힌 물고기는 백오십세 마리였다. 나는 예수가 아침을 먹은 그 부근에 앉아 그 여행에서 어떤 의미를 건져 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 예수가 제자인 베드로에게 너는 인간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백오십 세 마리는 인간을 상징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새벽 밤새 허탕을 친 어부인 제자들에게 예수가 나타나 그물을 배의 오른쪽으로 던지라고 했었다. 잡은 물고기는 그 결과였다. 변호사의 일을 하면서 그 분이 나에게 주는 백오십세명의 인간을 섬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났다가 금세 잊혀지는 뜨내기 고객보다 변호사로서 백오십세명의 고정적인 의뢰인을 만들어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삶을 동행하는 것이다. 그걸 나의 직업적 나침반으로 하기로 했다.


그 사람들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한개의 사건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계속 지켜보고 보호해 주기로 했다. 법적인 문제점만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기로 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곧 나의 인생이었다. 수많은 인연들이 나의 길이었다. 나는 내게 다가온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지속적이고 오래 관계를 맺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인연을 쌓으며 삶을 조금씩 완성해 가고 싶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알고 세상을 알아간다.

어느 날 뇌성마비인 여인이 휠체어에 실려 나에게 왔다. 억울한 사정이 있어 변호사를 구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인터넷을 뒤졌다고 했다. 거기서 내가 뜨더라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의 법률고문을 하고 있다. 그분이 내게 보낸 소중한 물고기였다. 암에 걸린 한 노인이 찾아왔다.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땅을 사기당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하나님이 나한테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는 그가 잘 아는 장로가 내게 보낸 것이다. 그 장로를 나는 모른다. 나는 토지사기범들과 집요하게 법정투쟁을 했다. 그리고 이겼다. 그 노인도 내가 선물 받은 물고기였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모자가 있었다. 찜질방에서 살다가 나중에는 노숙자로까지 전락했다. 나는 악덕 사채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 모자에게 채워진 사채의 족쇄를 풀었다. 내게 오는 물고기들이 늘어났다.

모략을 받은 원로 소설가 정을병씨를 변호했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귀한 인연을 맺었다. 그의 외로운 죽음을 가까이 지켜본 세사람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노숙자시설에서 한 상습 절도범의 재심을 부탁했었다. ‘대도’로 언론에 많이 알려졌던 사람이다.

운동권의 언더써클에 있던 여성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같은 운동권의 남학생과 결혼을 하고 빈민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부자집 딸이었어요. 그리고 명문대 정외과를 졸업했죠. 저는 브루죠아계급인 걸 부끄러워했어요. 그리고 스스로 가난 속으로 혁명으로 뛰어들어 갔어요. 빈민촌의 골목골목에 붉은 깃발이 휘날리기를 바랬어요. 그러다 그게 허상이라는 걸 알았죠. 철거민촌으로 가서 빈집에 있었더니 수시로 강간을 하러 오는 거예요. 세상 밑바닥도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이었어요. 먼저 영혼이 바뀌고 인간이 되어야지 사상은 헛된 추상일 뿐이었어요. 나는 변호사님의 물고기 백오십세마리 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더러 질 나쁜 물고기들도 섞여서 들어오기도 했다. 나의 선의와 어리석음을 보고 사기를 치기도 했다. 나를 돈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나쁜 물고기들은 마음속 물통에서 골라 던져버리기도 했다. 사람을 낚는 변호사 생활이 삼십년을 넘고 사십년 가까이 되어간다. 이제 사무실 문을 닫고 변호사 인생을 결산해 본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나의 인생이었다. 그분은 사람들을 통해 내게 엄청난 축복을 주었다.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주었다. 가난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