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카톡으로 삼각지 뒷골목에 있다는 국수집 얘기를 보냈다. 낡은 탁자 네개 뿐인 좁은 가게에서 그 할머니는 이십오년간 한결같이 연탄불로 진하게 멸치국물을 우려내 국수를 만들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일을 나가는 막노동자, 학생, 군인들이 들어와 쓰린 속을 따뜻한 국물로 풀고 가곤 했다.
어느 날 오후 노숙자 같은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배가 고파 독이 서린 눈빛이었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어버리고 아내까지 떠나버린 남자였다. 용산역 앞을 배회하던 그는 허기에 지쳐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끼니를 구걸했지만 음식점마다 냉정하게 그를 쫓아냈다. 그는 노숙자가 된 자신의 신세가 한스러웠다. 길거리에서 강아지가 주인을 잃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걱정을 했지만 노숙자가 된 그에게는 하루종일 말 한마디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투명 인간이었다. 그런 세상을 보면서 그는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폭탄이라도 있으면 세상을 폭파해 버리고 싶었다.
그날도 그는 굶은 채 뒷골목을 헤매다가 그 국수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당연히 쫓겨날 것으로 생각한 그는 독오른 모습으로 구석의 탁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쫓아도 버틸 생각이었다. 잠시후 가게 할머니가 국수 한 그릇을 탁자 위에 놓고 갔다. 그는 정신없이 국수를 입에 쳐넣었다. 게 눈 감추듯 국수를 뚝딱 해치울 무렵 할머니가 국수 그릇을 나꿔채듯 가져가더니 다시 국수와 국물을 가득 채워다 주었다. 국수를 다 먹어치운 그는 벽에 손글씨로 쓴 초라한 메뉴판을 보았다. 국수 한 그릇에 이천원이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그 돈이 없었다. 그는 할머니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틈을 이용해 자리에서 일어나 번개같이 문을 튀어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에서 할머니의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뛰지 말어! 다쳐. 배고프면 또 와”
그 말에 그는 울컥했다. 악담과 저주를 퍼 부을줄 알았는데 또 오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눈물이 쏟아졌다. 배우지 못하고 고생을 해 본 사람이 아퍼 본 사람이 남의 아픔을 아는 법이다. 그 할머니는 이름조차 쓸 줄을 몰랐다. 건축노동을 하던 남편이 마흔한살 때 사남매를 남기고 암으로 죽었다. 혼자 남은 그녀는 배고파 하는 아이들을 먹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삶이 너무 벅차 어느날 저녁 연탄불을 피워놓고 사남매랑 같이 죽으려고도 했었다. 그러다 사는데 까지 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녀는 용산의 뒷골목에서 국수장사를 시작했다. 연탄불에 다시다 물을 우려낸 국물에 국수를 말아 팔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십 오년을 한결같이 국수를 만들었다. 십년이 넘게 국수값을 이천원에 묶어놓고 면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주었다. 그런대로 살아졌다. 그녀에게는 버팀기둥 같은 믿음이 있었다. 매일 새벽 눈을 뜨면 손을 모아 기도했다.
“하나님!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제가 만드는 국수가 어려운 사람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건강하게 하소서.”
그 가게에서 국수를 먹고 도망쳤던 남자가 파라과이로 건너가 성공했다. 그가 방송사에 그 국수 가게를 알리면서 미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어느 날 윤석열 대통령이 관계자들과 그 국수집을 찾아와 국수를 먹고 더욱 화제가 됐다. 용산 삼각지 뒷골목에 있다는 ‘옛집’이라는 허름한 국수집 얘기였다. 세상이라는 벌판에는 비바람과 차디찬 추위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곳곳에 따뜻한 햇볕이 비추고 들꽃 같은 아름다운 사랑들이 피어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와 사랑 그리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용산역 앞에서 오랜 세월 밥을 지어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여성의 아들을 변호한 적이 있다. 그녀는 노숙자에게 밥을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본 지나가던 행인들이 지갑을 열고 지폐들을 꺼내어 손에 쥐어줄 때 가슴이 뭉클하더라고 했다. 쌀 한가마니 가져다 줄 생각을 했으면서도 실행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있다.
서울역 앞에서 노숙자들과 생활을 함께 하는 목사를 안다. 노숙자들이 묵는 건물의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층계참에는 사람들이 보낸 쌀과 빵 차들이 쌓여있는 걸 보기도 했다. 그들이 먹고 남은 누룽지를 도리어 내가 얻어온 적도 있었다. 남대문 시장 안에서 사십년동안 떡뽁이를 팔면서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진 할머니를 만난 적도 있었다. 자기가 손해를 보면서 다른 상인들을 몰래 돕는 큰 마음을 나는 우연히 엿보았었다. 드러나지 않고 선하게 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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