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백개의 안락의자
바닷가에 어둑어둑 밤이 내리고 있었다. 어제 내린 눈이 바다로 흘러내리는 산자락들을 하얗게 덮었다. 검푸른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물결이 차갑다.
나는 늦은 시각 바닷가 언덕위의 단골 중국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파장 분위기였다. 손님이 없었다.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잡채밥을 시켰다. 잠시 후 식당 주인 남자가 군만두 네 개를 서비스라며 가져다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주인 남자는 의외로 지적인 타입이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하얀 얼굴이었다. 세련된 가는 테의 안경을 썼다. 그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슬쩍 내 눈치를 보면서 그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은행에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외환위기무렵 퇴직을 하고 동해로 내려왔습니다. 선배가 한번 중국음식점을 해보라고 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제 계약기간도 끝이 나가고 나이도 내년에는 환갑입니다. 뭔가 인생의 후반부를 맞이하면서 의미 있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역시 인생의 굴곡이 만만치 않았구나 하는 짐작이었다.
“외환위기 때 어떤 고생을 하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제가 근무하던 은행이 외국의 질이 나쁜 펀드에 인수됐습니다.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하고 은행을 인수하더니 나 같은 직원들을 육 개월마다 여기저기로 인사 명령을 내는 겁니다. 나가라는 소리죠. 그들은 그렇게 구조조정을 지능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으로 하더라구요. 은행의 수익성이나 경영은 관심도 없는 것 같았어요.”
“맞아요. 신문에서 그걸 너무 헐값에 외국펀드에 매각했다고 해서 담당 관료나 은행관계자를 수사하고 기소했다는 걸 봤습니다. 제 고교동기인 재무부의 국장도 뇌물죄의 의심을 받고 감옥에 일년 있다가 무죄로 풀려나왔죠.”
“그게 수사가 될 때 저 같은 말단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배경이 있다면 권력의 비자금이겠죠. 그걸로 재판을 받는데 증인으로 끌려갔는데 몇년동안 질질 끄는 겁니다. 스트레스를 받아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딘가 몰두해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곳 동해로 내려오고 목공을 배웠죠.”
시대적 상황이 한 은행원을 바닷가의 목공으로 변화시킨 것 같았다. 나는 잡채밥을 먹으면서 그의 다음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공 기술을 배우면서 저는 작은 요트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걸 타고 먼 바다 저쪽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런 꿈을 가지고 요트 만들기에 몰두하니까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어요. 요트를 타고 처음에는 가까운 양양을 가보고 다음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오끼나와까지 갔다 왔어요. 저는 그래도 은행에 근무하면서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서울의 아파트와 퇴직금이 있고 지방인 이곳에서 중국음식점을 하게 됐으니까요.”
그의 음식점에서 만드는 ‘어항 동고’는 인터넷상으로 꽤나 유명한 것 같았다. 나는 잡채밥을 거의 다 먹어가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저도 어느새 나이가 환갑입니다. 요즈음은 새로운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도네시아의 나무가 많은 섬으로 갈 겁니다. 거기서 제가 배운 목공 기술로 안락의자 백개를 만들 겁니다. 그리고 그 의자를 내가 평생 정을 주고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선물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그 말이 갑자기 내 마음기슭에 잔잔한 물결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더구나 그가 직접 만든 안락의자는 감사와 함께 그에 대한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는 죽어도 그가 만든 안락의자로 그 존재가 남는 것이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기억 의 갈피 속에 들어있던 사실이 떠올라 그에게 말했다.
“제 법무장교 동기 중에 암으로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죽기 몇 달 전에 동기생들에게 사과 한박스씩 선물로 돌리더라구요. 그걸 받으면서 가슴이 애잔했습니다. 멋있는 작별이었습니다.”
잡채밥을 다 먹고 적막한 검은 거리를 운전해 돌아오는 데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쳐들어왔다. 임종을 앞 둔 어머니는 죽은 후 선물할 사람들을 말하고 나보고 그걸 대신 실행하라고 유언을 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죽은 후 정확히 보름후 교회에서 친했던 사람들을 초청해 삼계탕을 대접하라고 했다. 어머니는 삼계탕을 잘하는 음식점까지 지정해 주었다. 어머니는 정들었던 사람들 몇명을 지정하면서 죽은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이라면서 돈을 주라고했다. 사람마다 구체적인 액수를 지정해 주었다. 어머니의 유언대로 나는 성실하게 집행했다. 어머니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이 하얀 눈물을 흘리는 걸 봤다. 함경도 출신인 어머니한테서 평생 싸우는 모습만 본 아들이었다. 어머니의 선물은 살아서 매듭지었던 모든 걸 단번에 풀어버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게 화해와 용서의 현명한 방법을 알려준 것 같다. 나도 저세상으로 건너갈 때 무엇을 선물하고 갈지 다시 생각하게 된 저녁이었다. 주는 것은 받는 것 보다 기쁘다고 그분이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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