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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꿈꾸던 진시황의 사후 지하 궁전

Joyfule 2013. 7. 20. 11:02

 

 
영생을 꿈꾸던 진시황의 사후 지하 궁전

 

'세계 10 대 기적의 하나'로 꼽히는 진시황 릉 (秦始皇 陵)은 중국 최초의 황제 인 진 시황제의
묘지로 중원을 통일 한 진나라의 도읍지 인 함양 (咸阳) 땅인 산시 성 (陕西省) 시안 (西安)에서
30km 떨어진 동현의 원산 원 (骊 山 园)에 자리하고있다.
咸阳능묘를 건설 만 기원전 246 년에서 208 년까지 39 년 동안 펼쳐진이 황릉은 최대 70여 만
명의 인력이 동원 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현재는 여산이라 불려지는 높이 76m의 야산에
무덤이 안치되어 있으리라 짐작 만 될뿐 완전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있는 .... 실정이야,.
중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 건설에 착수 한 진 (秦) 나라 시황제 (始皇帝)의 무덤에 관한 문헌 인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 본기 편에 의하면 황릉은 지하 궁전으로 지어졌으며 내?와 강을 이룰 정도로 엄청난 양의 수은을 이용하여 어셈블리 무덤을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보호 되 게끔 시설되었다고 쓰여져 - 그래?.
그 동안 추측 만했을뿐 진시황 릉은 베일에 싸여 있었으나 우물을 파던 농부의 삽끝에서 우연히 '세기의 발견'이라 불리는 진시황 릉의 병마용갱 (兵马俑坑)이 1974 년 발견 됨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된다. 진시황 릉원 동쪽 담에서 1km 떨어진 곳에 진시황의 사후를 지키는 친위 군단 인 병마 도용을 수장 한 갱도가 긴 어둠을의 세월을 걷어 내고 세상 모든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곧 바로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총면적 25,380m2에 달하는 4 개의 갱이 발굴되었다. 1 호갱의 규모를 보면 길이 210m, 너비 60m, 깊이 4.5 ~ 6.5M의 총면적 1만2천m2로 본래이 갱 위에는 회랑 식 건축물이 있었으나 불타 없어 졌다고한다.
병마용갱 전체 도용은 약 6,000 개로 추정되며, 도용의 크기는 1.75 ~ 1.86m, 도마 용은 높이 1.5M, 길이 2m의 실물대이며, 갑옷을 원피스를 입고 무장 한 무사의 표정들은 마치 살아있는 .... 듯하고 얼굴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2 호갱은 부분적으로 발굴되어 다량의 목제 전차와이를 끄는 마용 356 건, 기 병용 116 건, 안마 116 건, 보병 용 562 건이 매장 된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완전 발굴 된 520m2의 3 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되는데, 장군의 것으로 보이는 채색 된 전차 1 량과 갑옷 입은 보병 용 64 건, 마용 4 건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진시황 릉 서 북측에서 동마 용과 동 용이 딸린 대형 동전 차가 1 대 발견되었다.
'세계의 8 대 경이'중의 하나로 꼽히기도하는이 병마용들은 하나 하나가 모두 훌륭한 예술품으로 평가 변수되고 있으며 진시황 친위 군단의 강력한 에너지 원을 추적하라 위용은 물론, 당시의 군사 편제 · 갑옷 · 무기 등의 연구에도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 하고있는 귀중한 문화 유산이다 .
정작 시황제의 무덤은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으나 아마도 4면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흙 둔덕 바로 아래 지하 궁전에있을 것으로보고있다. 중국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진시황 릉의 구조가 하나의 거대한 지하 도시로 전체 면적 이 60여 만평에 달하고, 지하 4 층의 거대한 궁전으로
되어 있으며, 묘역 안팎에는 내성 (内城)과 외성 (外城)을 쌓아 당시 도읍지 인 장안 (长安)과 같이 외 성곽 길이만도 12 ㎞에 달한다는 발표 다. 한마디로 진시황 릉은 '거대한 묘역 도시' 인 셈이다.
일반 황릉과는 달리 황후와 합장하지 않은 것도 특이하다. 황후를 합장하지 않고 진시황 단독 묘를 쓴 것은 당시 '황제 권력은 한없이 높다 '는'황권지고 무상관 (皇权至高无上观) '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진시황 릉에 대한 발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허지만 현재의 발굴 기술로는 원형을 훼손 할 가능성이 크다는 중국 정부의 판단 때문에 대대적 인 발굴은 미뤄 달라는 형편이야,. 완전한 발굴로 그 실체를 밝히기까지는 앞으로도 몇 세대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고고학자들의 이야기다.
절대 권력자로서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시황제는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서 내세 (來世)의 영생을 믿으며 '삶 과 죽음은 동일하다 '는'생사 동일 관 (生死同一观) '하에 천년, 만년, 영원한 제국을 이루고자 한 진시황! 사후 2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무한 권력자의 생사 마저 초월 코자 추정하신대로 그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진시황 릉이야,.1987 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진시황 병마용갱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 데,
불멸의 생을 꿈꾸었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하려는 목적으로 어마 어마한
규모로 제작 한 것으로 추정되며, 세계 8 대 불가사의로
꼽힐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고 있습니다.
찰영 : 김형용 2013. 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