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마음의양식

예수가 그대의 삶 전부인가 아니면 일부분인가

Joyfule 2024. 7. 15. 23:53

    
    
    
         ◆ 예수가 그대의 삶 전부인가 아니면 일부분인가 ◆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많은 부딪힘으로 사역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지닌 율법 종교로서는 구원이 없음을 말씀하시기 위함이시다.
    
    율법 종교의 특성은 행위적이요 형식적이며 의식적인데 있다.
    모두 한통속이다.
    즉 저러한 것들로서는 구원이 없다.
    
    저들은 교만하고 돈을 좋아하므로 예수를 미워하였으며 어찌하든지 예수를 배척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저들을 아시므로 저들 속으로 들어가셔서 복음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당시 유대 사회와 종교를 끌어내셔서 아님을 밝히시고 복음을 증거하신 것이다.
    즉, 저들이 전하는 율법의 의미가 바로 당신 자신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없는 율법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저들에게 던지신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율법을 가지고 돈을 벌며 상좌에 앉은 자들이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예수 없는 믿음을 많이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단지 믿는다는 이름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기도 하며 허탄하고 허황된 꿈을 기대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예수를 부분적으로 믿으며 자신의 삶도 일부분만 내어 놓는다.
    입으로는 자신의 삶을 전부 드리겠노라고 헌신한다 하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목사가 되었고 장로 집사의 직분을 받았음에도 말이다.
    입만 무성하고 잎만 무성할 뿐이다.
    반만 아니 십분의 일만 희생하며 헌신하고 나머지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으로 사용한다.
    그리고는 입으로 다른 이들을 향해서는, 난 전부 주께 드립니다 라고 드러낸다.
    
    참 파렴치한 짓거리다.
    겉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중심을 보신다.
    온갖 음행과 시기와 질투와 모함과 욕심과 향락과 거짓을 다하면서 말이다.
    걱정 근심은 둘째 치고 삶 대부분을 자신을 위하고 언행을 자기 중심으로 하면서 말이다.
    
    교회에서도 누구 한 사람, 예수 위하여 하나가 되어주지 못하고
    오직 자신만이 잘났다고 하며 쪼개고 분리시키는 자들이 
    입으로는 그저 자신만은 우월하다며 드러낸다.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모임을 만들어 자신이 뽑은 임원이 있음에도 자기 드러내기에 바쁘다.
    
    예수가 나의 전부인가 아니면 내가 예수님을 마음대로 움직이며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자인가를 바라볼 때이다.
    통회 자복을 잊은 자는 성도로서의 삶에서 벗어난 자이다.
    한 영혼을 위해서 오늘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돈 때문에 영혼을 무참히 짓밟지는 않았는지
    운동이나 오락 등의 결과에 미쳐서 한 영혼에게 심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자존심 때문에 한 영혼에게 상처를 주지는 아니했는지
    나의 자아 때문에 없는 말도 하며 한 영혼에게 뒤집어 씌우지는 않았는지 등등 말이다.
    
    예수님은 나의 전부를 받기 원하신다.
    말씀을 다시 붙잡고 돌아갈 때이다.
    말씀만이 나를 성령으로 이끄시며 충만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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