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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의 신비 1.

Joyfule 2005. 7. 24. 01:43



오리엔트의 신비 
              다까바시마오 저, 한영철 역 
1.고대 오리엔트학은 언제 탄생했는가.
유럽인이 고대 오리엔트의 역사나 풍토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중근동을 여행하게 된 것은 지리적인 발견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고대 오리엔트학의 기초가 잡힌 19세기까지의 고대 오리엔트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주로<구약 성서>와 그리스.로마시대의 고기록이나 
유럽인의 여행기에 한정되어 있었다,
즉 모세의 5경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여러 전승과 헤로도투스나 
스트라본 등의 여러 기록을 중심한 것이었다. 즉 구약성서와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확대경으로 삼아서 고대 오리엔트에 관한 지식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그 리스인으로서 이집트에 군림한 영주 프토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퍼스(재위 B.C.285-46)가 당시 이집트의 테베의 신관이며 
고사에 정통했던 마네톤(BC 3세기)에게 명해서 이른 시대부터의 
이집트의 역사를 편찬시킨 <이집트지>나 마네톤과 함께 고문서 기록에 밝았던 
바빌론의 신관 베롯소스(B.C.3세기)가 셀레우코스 왕가의 셀레우코스 1세
(B.C.358-280)의 왕명에 의하여 집대성한 <바빌로니아지>(3권)가 
고대 오리엔트에 관한 2대 명저로 알려져 있다. 
이것들은 당시의 풍부한 사료를 구사하여 그리스어로 쓰여진 정확한 
기록이었다고 하나, 고대 로마의 정치가,문인,웅변가로 이름 높은 
키게로(B.C.103-63)시대부터 없어지기 시작하여 애석하게도 현재는 
완본이 남아 있찌 않다. 
따라서 19세기까지의 우리의 교대 오리엔트에 관한 지식은 원사료를 갖지 못한 
간접적인 사료에 근거한 것이다.
나일강 유역과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양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고대 문명의 
세쇠 전반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진짜 과학적인 학문이 생긴 것은 
19세기의 서유럽에서였다. 
이것은 당시의 유럽 열강,특히 프랑스,영국의 식민지 할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J.F.샨포리온(1790-1832)이 나폴레온 보나파르트(1769-1821)에 
의하여 반입된<로제타 석비>의 성각체 문자(hieroglyph)를 해독(1822)하는 한편, 
페르시아 주재 영국 사관 H.C.로린손 경(1810-95)에 의하여 메소포타미아의 평야에서 
페르시아의 오지로 통하는 고대의 교통 요로의 하나인 오늘의 이란의 
켈만샤와 하마단 사이에 있는 베히스툰 마애의 비문이 해독(1837-47년 입수,
19세기 중엽 해독)되어,여기서 고대 오리엔트학의 쌍벽인(이집트학)과 
<앗시리아학>학이 탄생했다.
이집트학은 그 대상 지역이나 인종이 단순하지만, 앗시리아학은 고바빌로니아,
신바빌로니아 등 쐐기 글자가 사용된 문화 지역의 모든 민족을 포함한다. 
그후 구미에서 고대 오리엔트에 관한 여러가지 문헌이나 유적,유물 등을 사용해서 
고대 오리엔트의 역사,문화 및 사회 전반을 연구하는 고대 오리엔트학의 
제분야의 연구가 전문화 되어, 현재에는 <슈멜학><바빌로니아학><엘람학>
<히타이트학><이란학><구약성서학 ><우가리트학>등 독립된 연구 분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