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저의 분배 / 박기옥
언제부터인가 ‘경제 민주화’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경제라는 눈사람에다 민주화라는 모자를 씌우려는 것이다. 기발한 발상이다. 그러나 눈사람은 녹기 쉽고 모자는 날아가기 쉽다. 햇빛과 바람은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친정어머니 살아계실 때 그분은 늘 당신의 기준으로 형편이 나아 보이는 자식 것을 떼어다 부족한 쪽에 채우고 싶어 하셨다. 살림이란 것이 꼭 연봉이나 아파트 평수로만 측정할 것이 아닐 텐데도 은수저 열 벌인 자식을 보면 그중 한 벌을 없는 집 자식에게 갖다 주고 싶어 안달하시는 것이었다. 다른 자식들이 여러 차례 어머니의 부당함을 지적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때의 어머니 반응은 한결같았다. “너희들도 자식 낳아 길러봐라.” 그 말씀은 그대로 사실이 되고 말았다. 나 역시 ‘은수저의 분배’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
명절 때 둘째가 선물이라면서 명품 백을 내놓았다. 나는 고맙게 받았으나 순간적으로 첫째한테는 반반한 백 하나도 없는 것을 떠올렸다. 친정어머니가 은수저 열 벌 있는 자식 앞에서 한 벌도 없는 자식 떠올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었다.
잠시 후 나타난 첫째가 지갑을 내어놓았다. 지갑은 정말 특이하고 예뻤다. 저한테도 없는 것을 엄마를 위해 무리하게 준비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가 탐이 나는지 만지작거렸다. 나는 문득 나도 모르게 둘째에게, “얘, 너 이 지갑 갖고 저 가방 언니한테 주면 안 될까?” 그때 만일 셋째가 나서지 않았다면 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셋째는 단호하게 가방과 지갑 모두를 나의 무릎에 던졌다. “엄마, 자식들 사는 것 다 각각의 몫이야. 억지로 엄마 시스템에 맞추려 들지 마!”
자식들에게 부모의 잣대대로 살아달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부모의 마음이란 것이 잘사는 놈 못사는 놈 제 꼴대로 방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은수저 열 벌인 자식 것 떼어다 없는 자식에게 갖다 주면 민주화가 이루어질까? 형제끼리 똑같이 은수저를 나누어 갖는 것이 경제 민주화일까?
뜬금없이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일자 무식꾼이었으나 십 리 밖 가난은 당신들의 책임이라 생각하셨다. 춘궁기에는 기꺼이 먹거리를 나누었고 아기가 태어나면 미역과 참기름을 보내 축하했다. 농경사회의 미덕이다.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은 게 아닐까. 말만 들어도 향기롭고 달콤한 ‘민주화’ 앞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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