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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4과)3

Joyfule 2010. 11. 9. 07:48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4과)3

스가랴(1):  위로의 메시지 (1-4장)


1장 위로의 메시지(1-4장)

 

 

3. 정결케 된 제사장 이스라엘(3장)

 

3-1. 여호수아와 고소자(1-3)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1).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2),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3)."

 

  스가랴는 앞에 언급된 세 가지 예언적 환상을 통해서 짓밟힌 하나님의 백성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었다. 이 부분에서 스가랴는 세 가지 주제, 즉 하나님의 백성의 축복을 구하는 메시야의 기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열국들에 대한 심판의 예고,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통한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과 이방인들의 개종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들이 이스라엘에게 임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변화되어야만 했다. 네 번째 환상의 의도는 제사장의 직무 수행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인정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겔 22:26)에 기록된 바와 같이 제사장직은 타락했기 때문에, 포로기 이전과 포로기 때에 제사장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스가랴에게 이 환상을 소개한 것은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셨다. 스가랴는 여호사닥의 아들인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천사 앞에 서 있고, 그를 대적하는 사탄이 그의 우편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사건들이 발생한 장소는 어디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이 환상의 의미에서 그 장소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이 환상의 첫 부분에서 여호수아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입장이 아니라, 제사장 직무와 백성들을 대표하는 표본으로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했다. 환상의 결말은 궁극적으로 여호수아 개인에게도 위안을 주겠지만, 본문에서 그는 공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로 증명할 수 있다. 1) 그가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3:1,5,8).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불변의 근거에서 사단이 책망을 받고 있다(3:2). 3) 그 땅의 죄악이 제거될 것을 에시하기 위해서 여호수아를 정결케 하셨다(3:9). 그러므로 사건의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만일 여호수아가 정결하게 된다면, 이스라엘의 국가도 정결케 될 것이다. 만일 그가 대제사장직을 뺏긴다면 이스라엘 민족도 제사장직을 박탈당할 것이다.

 

  천사 앞에 서 있는 것은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해석상에 문제가 제기된다. 이 말의 첫째 의미는 (신 10:8, 대하 29:11, 겔 44:15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제사장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서 있었다는 말은 그가 지성소 안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말의 둘째 의미는 재판을 받기 위해서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 말이 여호수아가 바사의 법정에 고소를 당했거나, 아니면 고소 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사자의 심판석 앞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 환상에는 공식적인 재판 절차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러므로 가장 타당한 태도는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고려해 보는 것으로 보인다. 여호수아는 성전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때에 그는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의 적인 사단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 고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정에서 일반적으로 오른쪽은 기소자의 위치이지만, 그것은 또한 피고의 위치이기도 하다. 유대교 주석가들은 이 환상에 대해서 근거 없는 해석을 펴고 있다. 탈굼과 랍비 문서들은 여호수아가 에스라서(10:18)와 느헤미야(13:28)서에 기록된 것처럼, 자기의 자손들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한 이유로 기소를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이러한 견해는 이 환상에서 등장하고 있는 여호수아의 공적인 입장을 고려해 볼 때에 타당성이 적다. 소수의 기독교 주석가들은 이 본문이 유다서 9절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다서 9절은 스가랴 3장과 내상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유다서에 기록된 바 유대인의 회중을 언급하는 "모세의 시체"라는 표현의 병행귀절은 구약 성경에는 사용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를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은 전혀 다른 개념과 다른 관계에 근거한 것이다. 유다서에는 분명히 문자 그대로 모세의 시체를 말하고 있다.

  (3:2)에서 사단에게 한 대답을 보면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메시야는 사단과 사단의 한 고소에 대해서 두 번에 걸쳐 책망을 한다. 이와 같이 거듭해서 책망한 것은 사단의 고소를 파기시킬 것을 분명히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책망한다"는 표현은 책망받는 자들을 크게 꾸짖어서 침묵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전체적인 사건 처리에 있어서 가장 현저한 특징은 하나님께서 사단의 고소를 무효화 하신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의롭거나 죄값을 지불하거나 잘하겠다고 약속하거나, 또는 사단의 주장이 아무 근거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사단의 고소를 기각하신 것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적인 은혜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하고 자기 백성을 삼으신 이스라엘을 향해 언약을 따라 은총을 베푸실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사단의 정죄를 이기고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만들 것이다.

 

  (3:2)에서 이스라엘은 타오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로 비유되었다. 이 비유는 나무가 불 속에 던져지거나 혹은 떨어졌다가 주인에 의해서 구출된다는 점에서 친밀감을 준다. 그 주인은 타다 남은 나무의 미래에 대해 어떤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타버리기 전에 그것을 꺼낸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벌하여 바벨론 사람들의 포로가 되게 하셨으나, 은혜 안에서 완벽한 파멸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불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아브라함과의 언약, 모세에게 임한 계시, 출애굽기에서의 구원,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심, 성막을 세우는 일, 광야 여행, 그밖의 많은 사건들이 불과 관련되어 있다. (3:3)에서 스가랴는 기소를 당해 하나님의 사자 앞에 서있는 여호수아의 실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에서 더러운 옷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있는 죄인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더럽혀진 이스라엘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들은 겉으로는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었지만, 제사장의 사역에 관한한 그들은 타락할 가능성이 많았다. 그들은 불결한 바벨론 땅에서 게속된 생활로 인해 제사장직의 의식적인 면에서 불결 뿐 아니라, 도덕적인 불결도 의미한다. 여기에서 언급된 더러움은 도덕적 타락을 상징하는 바 육체적으로 가장 더러운 상태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지만, 정결하게 되지는 못했다. 이 표현은(3:3)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3-2. 대제사장을 성결케 하심(4-5)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4),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5)."

 

  여호수아가 자신을 정결하고 순결케 하는 데 무력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자는 주권적으로 시중 드는 천사에게 대제사장의 더루운 옷을 벗기라고 명하신다. 이것은 인간의 도움이 필요없는 하나님의 독자적인 사역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이라는 또 하나의 분명한 증거가 나타난다. 더러워진 옷을 벗기는 것은 (3:4)에 언급된 옷을 입히심과 함께 용서, 용납, 그리고 특권 위치에로의 회복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 것은 제사장직의 회복을 나타낸다. 이 상징은 (사 61:10)에서 인용한 듯하다. 스가랴는 그 의식이 진행되는 것을 보는 동안,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여 여호수아를 정결케 하고 제사장의 옷을 입히시기를 원하는 자신의 열망과 기도를 표명한다. 대제사장의 관, 혹은 터어번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말이 새겨진 정금의 패가 부착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사자는 인자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배풀어지는 절차와 은혜를 지켜보면서 그 곁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