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줄 놓지 말라, 히틀러도 '선출된 권력'이었다
진중권
나치 치하에 사는 유대인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로 유명한 빅토르 클렘퍼러.
문헌학자였던 그는 나치가 막 부상하던 시기에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독특성에 주목한다.
그 시절의 메모를 토대로 쓴 ‘제3제국의 언어’에서 그는 나치 이데올로기가
대중이 사용하는 일상언어에까지 침투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다.
전체주의의 독특한 언어
그 시절 독일에서 암살은 ‘특별조치’,
고문은 ‘강력심문’,
강제수용소행은 ‘대피’라 불렸다.
‘광신적’은 자기들을 수식할 때는 긍정적 의미로,
적을 수식할 때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됐다.
‘이질적 종자’나 ‘영원한 유대인’ 등 적을 공격하는 다양한 상투어들을 만들어 퍼뜨리는 것 역시
전체주의자들 특유의 언어습관에 속한다.
비슷한 현상이 이 나라에도 나타나고 있다.
증거인멸은 ‘증거보전’,
대리시험은 ‘오픈북’이라 불린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대상에 따라 의미가 달라져
그 대상이 자기편일 경우에는 ‘대법원의 확정판결 전까지는 다들 입 닥치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가 하면 정적에 낙인을 찍는 상투어들도 널리 유행하고 있다.
‘기레기’나 ‘윤짜장’은 애교에 속한다.
‘토착왜구’와 같은 표현은 다소 심각하다.
그 바탕에 이데올로기, 즉 인종주의·민족주의 이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을 반복적으로 입에 담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념에 적하된(ideology-laden) 상태가 된다.
이념이 실린 의식을 가진 이들과는 정상적 소통이 불가능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맥락에는 ‘적폐’라는 표현이 즐겨 사용된다.
주로 적으로 지목된 집단에 사용되는 말인데,
최근 법원에서 몇 차례 정권에 거슬리는 판결을 내리자
‘검찰적폐’와 ‘언론적폐’에 이어 새로 ‘사법적폐’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렇게 그들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새로 ‘적’을 발명해 그 앞에 이 딱지를 붙이곤 한다.
선출권력은 법을 초월하는가
최근 그들이 빈번히 사용하는 것은 ‘선출된 권력’이라는 말이다.
이 표현은 ‘쿠데타’나 ‘통치행위’라는 말과 하나로 묶여 대통령을 헌법 위에 올려놓고
청와대를 대한민국의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선포하는 데에 사용된다.
‘누구도 법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법치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표현인 셈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대통령도 법의 구속을 받는다.
그 잘난 ‘통치행위’도 헌법과 법률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 사람들에게는 이 상식이 없다.
그들은 대통령에게 ‘통치행위’라는 이름의 초법적 행동을 할 권한이 있다고 믿고,
거기에 따르지 않는 이들은 ‘선출된 권력’에 저항하는 ‘쿠데타’ 세력으로 간주하곤 한다.\
김두관 의원의 말을 들어 보자.
그는 법원의 판결이 “대통령의 권력을 정지시킨 사법 쿠데타”라며 이렇게 다짐한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검찰과 법관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일을 반드시 막겠다.”
머리도 참 나쁘다.
절차를 위반한 징계가 대통령의 통치행위였다니, 결국 대통령의 직권남용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임종석도 끼어들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짓밟는 일을 반드시 막겠다.”
출마 선언을 참 이상하게도 한다.
정치인만이 아니다.
서울대 민교협에서도 법원이 판결로 “선출된 권력에 노골적으로 저항”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모 신문에는 묘한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이제 판사를 선거로 뽑아야 할까?’
독일의 민주주의 파괴한 히틀러
이 표현의 바탕에는 부당전제가 깔려 있다.
즉 ‘오직 선출된 권력만이 정당하며 선출되지 않은 기관은 기득권층’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프레임이기도 하다.
자기들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력이니, 검찰이든 감사원이든 사법부든 선출되지 않은 자들은
자기들이 하는 신성한 개혁질에 손도 대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다.
‘선출된 권력론’을 떠들어대는 것은 실은 자기들 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생각해 보라.
그 역시 ‘선출된 권력’이었지만 선출되지 않은 9명의 헌법재판관들에게 탄핵당했다.
그 일이 그렇게도 부당하다면, 지금이라도 감옥에 있는 그를 데려다 부정취득한(?) 정권을 반납할 일이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삼권분립에 있다.
그중 사법부는 원래 선출된 권력이 아니니,
‘삼권분립’이란 선출권력과 비선출 권력 사이의 견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고로 그저 ‘선출’됐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이 전권을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그 꿈은 다른 체제에서나 가능하다.
실제로 ‘선출’된 후에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지도자가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나치당은 문재인의 대선 득표율보다 고작 2% 더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1933년 3월 그 힘으로 ‘전권위임법’을 통과시켜 총통에게 전권을 몰아주게 된다.
바로 그날 독일의 민주주의는 종언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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