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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동체에서 이성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Joyfule 2005. 11. 4. 01:34
청년공동체에서 이성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호감을 가진 남녀 청년들 가운데서 '뭔가 특별한(something special)'
관계들이 얼기설기 만들어지기 시작할 무렵 ---.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사례들

1) A 선교단체는 이성교제 문제로 한 캠퍼스의 지부가 완전히 붕괴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리더와 신입회원이 사귀기 시작하면서 남녀회원들 간에 커플 만들기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이들도 생기고, 반대로 남녀간의 호의적 관계에 대해 신뢰를 점점 잃어가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다. 해당 캠퍼스 간사는 결국 이 커플을 모임에서 퇴출시키는 것으로 정리를 하려고 했으나, 결국 양쪽 입장이 팽팽히 엇갈리면서 모두가 마음이 상한 채로 모임이 와해되었다. 이 캠퍼스에서는 2년이 지나고서야 전혀 새로운 회원으로 모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이 단체는 훈련 중에는 절대 교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규를 만들었다.


2) B 형제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꼭 사교클럽 같다고 느낀다. 교회가 어느 정도 규모도 있고, 결혼적령기에 이른 이들이 있어서 교제를 금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청년들의 관심사가 온통 그리 가 있는 것 같아 마땅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일부 청년들이 가능성 있는 대상을 온통 들쑤시고 다니는 바람에 공동체 내의 관계가 이리저리 얽혀있기까지 하다.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공동체 내의 이성교제에서 비롯되다 보니 공동체의 신앙생활이란 것이 이렇게 생긴 정서적 상처를 달래주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게다가 교회에서도 주목받고, 인기를 얻는 배우자의 조건이란 것이 세상의 기준에 신앙심 하나 더 얹어 놓은데 불과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러니, 차라리 나가서 배우자를 찾고,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에 저 철저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선교니 헌신이니 하는 주제는 결혼이나 이성교제에 담 쌓은 노총각, 노처녀들을 위해 겨우 남겨둔 몫이냐는 항변까지도 가끔은 떠오른다.


3) C 자매는 이제 한 학기를 마친 대학 새내기이다. 재수를 했던 터라 대학생활을 마냥 천진난만한 기대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벌써 학교 분위기는 영어공부라도 열심히 하면서 취업을 위해 기초를 쌓아야 한다는 쪽이고, 고시를 볼려면 필요한 과목들을 부지런히 들어두라는 조언들이 심심찮다. 선교단체에 속해 있기는 한데, 그리 깊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개인생활에 너무 간섭을 받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연애하는 것까지도 문제 삼는 것에 이해를 못하겠다. 그건 사생활 아닌가?


#기본 태도의 문제


앞의 사례들에서는 이성교제 문제를 대하는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들이 엇갈려 있다. 신앙 공동체에서 사역자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단순화하면 두 가지로 양분된다. 첫째는 '자유방임주의'이다. 이성교제는 당사자간의 문제이니, 제3자가 일일이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여기서는 개인을 우선으로 놓는 입장이 두드러진다. 둘째는 '적극개입주의'이다. 이성교제는 공동체와 개인에 영향을 미치니 목회적으로 적극 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집단을 우선시 하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아주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과거에 교회는 전자의 입장이 많았고, 선교단체는 후자의 입장이 많았다. 요즘에는 상황이 너무 변했기 때문에 이렇게 일반화할 수가 없지만, 그 잔영은 남아있어서 신앙훈련을 강조하는 곳일수록 이성교제에 엄격한 입장을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사역자의 입장과 더불어 청년들의 의식변화도 비중을 두어 고려해야만 한다. 이미 청년들 상당수가 개인중심적 입장을 갖고 있고, 사역자가 방임적으로 대해주기를 기대하는 분위기인데, 사역자는 적극개입주의를 표방하고 나선다면 상당수준의 긴장감을 피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현실을 섬세히 살피는 것이 우선 중요하고, 유연하게 원칙을 적용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연령대나 관심사에 따라서 강조점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대학생 중심의 공동체와 그 이상 연령의 청년들 중심의 공동체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에서는 '이성교제'가 주된 문제라면, 후자에서는 '결혼'이 좀더 진지하고도 현실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전자에서 이성교제를 결혼을 전제로 한 것으로만 한정하고 그 외의 사례를 인정하지 않거나, 후자에서 현실감 떨어지는 원칙론만 반복하거나 훈련을 위해 연애금지를 선포한다면 공동체는 현안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셈이 된다.


중요한 것은 사역자들이 이 주제를 부수적인 것으로 두지 말고, 연구를 하며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커리큘럼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키거나, 그렇지 않다면 암묵적으로라도 이 문제가 공동체 안에서 원칙 있게 다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이 음지(陰地)에서 '오도된 성(性)'을 배워왔듯 이 문제도 지하로 숨게 되어 '쓴 뿌리'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공동체 사역의 포인트


1) 이성관계에 대한 한 '현실주의(realism)'를 가르치라


이성교제는 단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것이 아니다. 이런 경향이 부추겨질수록 실패의 경험을 더 쓰라리게 겪는다. 더군다나 한국사회는 급속히 '성적 판타지'로 빠져들어가는 사회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포르노 사진이나 영상에 접근이 가능한 곳이다. 인터넷으로 영화나 음악을 다운 받아 쓰고, 채팅이 전화보다 더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가는 사회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이상주의적 이성교제론은 무익한 것이 아니라, 유해하기까지 하다. 신앙공동체에서 가르쳐지고, 제시되는 내용은 이런 현실에 눈감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적나라한 현실인식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무분별한 이성교제 예찬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훈련과정에 이와 관련된 현실적 상황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성윤리와 관련된 특강을 마련하는 것은 아주 좋은 기회가 된다.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성문화, 낙태나 미혼모 출산 문제 등을 전문가가 직접 다뤄주면 매우 효과적이다. 평소 하기 힘든 직설적인 이야기도 받아서 대답해 줄 수 있고, 잘못된 오해도 교정해 줄 수 있고, 신앙공동체의 가르침에 매우 현실감을 부여해준다. 상당히 여러 단체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강의를 제공 받을 수 있는데, 기독교 관련 단체로 <낙태반대운동연합(www.prolife.or.kr, 02-2652-6046)>을 꼽을 수 있고, 일반 시민단체에서도 적절한 수준의 강의를 제공 받을 수 있다.


사역자들은 최근의 대중문화적 흐름을 짚어가면서 이 주제를 자연스럽게 설교나 토론의 대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옥탑방 고양이>는 동거문제를, 영화 <싱글즈>는 자유연애(free sex)와 미혼모 문제를, 드라마 <앞집 여자>와 영화 <바람난 가족> 등은 부부의 외도 문제를 경쾌하고 밝게 그려내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런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찬반으로 나눠 토론을 이끌어 냄으로써 청년들이 직접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다. 더 이상 몇 개의 성경구절을 들고, 현실을 개탄하는 식의 접근으로는 만족스런 대답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산다. 사역자가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청년들의 말문을 먼저 터주는 노력이 요긴하다.


2) 남녀의 차이(gender difference)에 대해 알게 하라


남자는 여자에 대해 착각을 하고, 여자는 남자에 대해 무지하다. 이성교제 문제에만 오면 영성 깊다는 형제 자매들이 쉽사리 좌초하고 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화의 코드가 다르다는 것은 함께 사는 부부라고 해소가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얻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나,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등은 남녀의 차이를 매우 섬세하게 짚어 내준다. 남성의 '성취지향적 태도'와 여성의 '관계지향적 태도'가 만날 때 각자는 매우 다른 기대치를 상대에게 부과하게 된다는 사실은 간단한 비유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그는 최고 높은 산을 올라갔고, 가장 깊은 바다를 헤엄쳤고, 가장 넓은 사막을 건너갔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떠났다. 그가 집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남자. 지도. 여자>, 196)


이런 남녀관계의 해묵은 갈등에 대한 반짝이는 통찰을 얻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다 기독인 저자들이 쓴 책은 아닌 만큼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겠다는 자세로 읽어나가면서 성경적 가르침과 적절히 연결 짓기를 권한다.


* 존 그레이(김경숙 옮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서울: 친구미디어, 1993).


* 앨런 피즈, 바바라 피즈 (이종인 옮김),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Why men don't listen & women can't read maps) (서울: 가야넷, 2000).


* 스티븐 아터번, 마가렛 링크 (조은혜 옮김), 그대일까? 그넘일까?(Avoiding Mr Wrong) (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2002).


남녀차이를 강조하다 보면 자연스레 남녀차별적 태도를 고착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위의 책들에 대해 남녀에 대한 기존관념을 고착화한다는 비판도 존재함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한국교회는 개신교 선교초기에 매우 선진적인 남녀관계가 사회적으로 정립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많이 낙후된 감이 있다. 남존여비니 가부장적 질서 등은 별로 성경적이라 할 것이 못 된다. 여성주의(feminism)에서 지적하는 남성위주 사회의 병폐는 통렬하다. 극단적 여성주의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할 부분이 많겠으나, 아직 우리 사회는 여성주의의 통찰에 귀 기울여 배울 바가 매우 많이 있다.


3) 공동체의 유익을 알게하라


이성교제 문제는 목회자나 간사들은 참견할 필요가 없는 '개인사(privacy)'가 아니다. 신앙훈련이란 것은 교리를 주입하고, 신앙공동체의 행동수칙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변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성교제 문제만큼 정서적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 많지 않은 만큼 이 기회를 신앙적 훈련의 기회로 잘 활용하면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이런 이성교제를 하는 이들에게 귀찮은 훼방꾼으로 여겨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앙 공동체는 이성교제에 몇 가지 측면에서 유익한 환경이 된다. 예를 들면,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갈등해소에 도움이 될 목회자나 선배들이 있다. 또, 중보기도를 통해 영적 지원을 잘 받을 수 있고,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 검증이 가능하다. 이성간에는 잘 보이지 않는 영역은 동성의 친구들을 통해 발견할 수도 있고, 그의 신앙적-성격적 특성 등은 개인 대 개인의 관계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더 잘 검증된다. 물론 이런 부분은 그 공동체의 영적 건강성과 균형감각에 직결된 문제이다. 일부 공동체는 특정한 인간형을 이상적으로 여기고 모든 사람을 정해진 과정을 통해 찍어내듯 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분위기는 다 다른 특성을 갖는 이들에게 억압적 요소로 작용하기 쉽다.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은 사람일수록 '관계에 있어 투명성'이 높아지고, 남들이 보는 모습과 자기 스스로가 인식하는 자아상 간의 괴리가 적다. 이런 부분은 신앙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는 최적의 장으로 역할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4) 최악의 순간을 대비하라


이성교제 문제에 있어서 가장 곤란한 상황은 관계가 깨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정작 더 곤란한 것은 깨어지는 일보다 사후에 아무런 목회적 배려 없이 방치되는 것이다. 커플이 헤어지게 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당사자들은 상당 정도의 정서적 기복을 겪고,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나 실망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청년 사역자들은 감정적 기복이 심한 이들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분노, 거절감, 집착, 정서적 조작이나 착취 등을 잘 구별해내어야 한다. 문제는 늘 복합적이지만, 좀더 엄밀하게 상담을 해보면 자신에게 내재된 문제와 상대방으로 인한 문제들은 구별이 된다. 좀더 나아가 가정적 요인이나 주변의 경제적, 문화적 환경까지도 염두에 두면서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때로, 사역자들은 긴급한 상황(낙태, 미혼모 등)에 처하게 될 때 전문적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도 알고 있는 것이 좋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 안에 증가하는 '싱글(single)' 문제를 연구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이들을 노총각, 노처녀로 지칭하며 이성교제나 결혼문제에 있어서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일이 많았으나, 현재의 한국사회는 훨씬 이 문제를 적극적이고 밝은 분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한국의 30-50세 1천5백만 명 가운데 순수 미혼자(이혼, 사별제외)가 1백30만 명이다. 약 10%에 육박한다. 거기에 최근 급증세인 이혼 및 사별 인구를 포함하면 엄청난 수가 된다. 1인 가구도 2백22만 가구로 5년 전 통계에 비해 35%가 늘어났다. 이는 전체 1천4백31만 가구의 15.5%로 일곱 가구당 한 가구가 독신 가구인 셈이다. 여성학에서는 이들을 '미혼(未婚)'보다는 '비혼(非婚)'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신앙공동체에서 제안할 적절한 역할모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맺는 말


청년공동체에서 이성교제란 '뜨거운 감자'인 것이 사실이다. 좋은 청년이 이 문제에 걸려 힘겨운 처지에 놓이는 것도 볼 수 있고, 공동체가 이 문제로 들썩거리는 경우를 당할 수도 있다. 사역자가 미혼인 경우에는 또 다른 측면에서 주의할 영역이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에서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지만 이 마지막 세대를 살아감에 있어서는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 7:24)고 언뜻 보면 오락가락 하는 듯한 입장을 보인 것도 이 문제를 둘러싼 정황이 만만치 않음을 반증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에 대한 소망이 확고하지 않다면 이성문제에 대한 어떤 대처도 만족스럽지 않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소망이 우리 공동체의 핵심에 잘 자리를 잡고 있다면 우리는 상당히 유연한 대응이 가능함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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