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인물이 되는 길
< 큰 인물이 되는 길 >
주고받는 삶에 익숙해지다가 점차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많아지는 삶을 꿈꾸라. 그런 꿈을 멋지게 이루는 인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말과 행위를 일치시키라
예수님의 고난 주간 셋째 날인 화요일은 흔히 ‘변론의 날’이라 불린다. 그날에 예수님은 권위 문제, 세금 문제, 부활 문제, 계명 문제 등에 대해 당시 교권주의자들과 변론을 벌이셨다. 변론을 마치실 즈음에 무리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본받지 말라고 했다(2-4절). 성도는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하고 더 나아가 사랑으로 말하고 사랑으로 행동해야 한다.
어느 날 교회에 등록한 초신자가 기존의 한 집사와 너무 닮았다. 다음 주일예배 후에 마침 둘이 같이 있어서 목사가 말했다. “집사님! 집사님과 인상이 비슷한 새 가족이 왔는데 서로 인사하세요.” 그때 그 집사가 정색하며 말했다. “목사님! 뭐가 인상이 비슷해요.” 그 말을 오해해서 초신자는 그 교회를 떠났다.
성숙함이란 언행의 일치를 이루는 것 이상으로 사랑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내가 무심결에 혹은 유머로 하는 어떤 언행이 남을 실족시키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이라.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남의 유머가 섞인 말을 넉넉히 받아들이는 것이나 웬만한 언행에 쉽게 실족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 부족한 존재이기에 일단 먼저 내가 주의하는 언행을 보여야 한다. 언행일치도 중요하지만 사랑과 이해를 앞세운 언행은 더 중요하다.
어느 사모가 심방 때마다 성도에게 꼭 한 가지씩 칭찬을 해 주기로 다짐했다. 어느 날 아주 가난한 집을 심방하는데 잘 둘러봐도 별로 칭찬할 것이 없었다. 그때 한 가지를 찾아내고 목사의 설교 상으로 내놓은 밥상에 덮인 작은 식탁보를 칭찬해 주었다. “식탁보를 예쁘게 잘 만드셨네요.” 그러자 심방 후에 그 성도가 식탁보를 싸서 사모에게 주었다. 얼마 후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욕심 많은 사모가 가난한 집의 식탁보까지 빼앗아 갔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을 듣고 사모는 큰 충격을 받았다.
누구의 잘못인가? 칭찬한 사람인가? 선물한 사람인가? 그 일을 오해하고 악평한 사람인가? 그 상황에서는 잘잘못을 따지고 문제를 확대시키는 것이 가장 큰 잘못이다. 때로는 나의 정당한 언행이 얼마든지 남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나의 정당한 언행이 남에게 손해나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인식하고 언행일치 이상의 사랑과 이해가 풍성한 언행을 훈련하라. 그렇게 훈련된 사람이 큰 그릇이 되고 큰 인물이 된다.
2. 과시와 자랑을 버리라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했다(5절). 또한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길 원했고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6-7절). 그만큼 대중적인 인기가 있고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과시하는 추악한 과시욕과 명예욕이 바리새인들에게 있었다. 얼마나 좀스러운 모습인가? 헛된 과시와 자랑을 버려야 진짜 큰 인물이 된다.
이제 12월에는 한 명의 권사와 두 명의 집사가 새로 임명된다. 새로운 직분자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은 직분은 과시용이 아닌 섬김용이란 사실이다. 그 사실만 기억하면 교회 직분 문제로 인해 시험 드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직분을 더욱 잘 섬기라고 주어진 것으로 여기고 힘써 섬기면 점차 그릇이 커진다. 가끔 보면 명함에 자신의 직함이 10개도 더 적혀 있는 사람이 있다. 그처럼 소개용이 아닌 과시용으로 삼는 명함을 받으면 큰 사람으로 보이기보다 오히려 작은 사람으로 보인다.
스스로를 과시하고 자랑하면 이상하게 짐이 무거워지고 쉼이 사라진다. 예수님 안에서 짐을 내려놓고 쉼을 얻으려면 과시와 자랑을 버리라. 예수님은 스스로 키를 한 자도 자라게 할 수 없음을 알라고 하셨지만 성인은 한 자는커녕 스스로 1센티도 자라게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의 실상을 인식하면 과시와 자랑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삶은 은총이다. 누구도 과시할 것이 없다. 삶의 과시는 삶의 가시를 낳는다. 자랑을 버리고 사랑을 앞세울 때 짐은 가벼워지고 쉼을 얻으면서 인물의 복 가능성이 커진다.
3. 오직 하나님만 높이라
예수님은 팔로워와 제자들에게 사람을 랍비, 아버지, 지도자로 높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라고 하셨다(8-10절). 계급의식과 차별의식을 가지지 말라. 그렇다고 “당신이나 나나 똑같다.”라고 하면서 교회 리더를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성도는 교회 리더를 리더로서 존중해야 한다. 반면에 교회 리더는 자신에 대한 신격화를 거부해야 한다. 왜 예수님이 성만찬 예식을 정하셨는가? 예수님 안에서 다 형제라는 의식을 일깨우시기 위해서다. 사람을 신격화하지도 말고 차별하지도 말라.
목사는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구별된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존중 받아야 하기에 교회나 목사에 대한 비판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의해서 하라. 하나님이 그 상황을 다 보시기 때문이다. 다만 목사 자신은 신격화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낮아져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목사도 교회의 한 지체다. 몸의 각 지체는 우열이나 귀천이 없이 기능적인 차이만 있다.
머리도 중요하지만 발도 중요하다. 발톱도 어떤 필요성이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의 정교하신 손길로 설계해서 있게 하셨다. 때로는 몸의 약해 보이는 지체가 더 귀하게 쓰임 받고 더 소중하게 다뤄져도 몸의 다른 지체가 그 지체를 머리가 편애한다고 시기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게 여긴다. 하나님은 약자를 돌보는 공동체와 사람을 복 주시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약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마음을 품고 살면서 늘 하나님만 높이라.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의 높여 주시는 은혜가 있다.
4. 자기를 낮추고 섬기라
본문 11-12절을 보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큰 인물이 되려면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천국 법칙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어 주신 세족 예식 후에 성만찬 예식을 하신 것은 때와 먼지가 낀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셔서 음식에 세균이 묻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히고 낮은 자세로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시기 위해서다.
예수님은 성육신 하셔서 낮아지셨고 세족 예식을 통해 구체적인 낮아짐의 실물 교육을 시키셨다. 예수님처럼 어디에 가든지 어떻게 잘 섬길까를 생각하며 힘써 섬기면 하나님이 신기하게 섬김 받는 위치로 올려 주신다. 그때 그 위치에서 또 섬기려는 마음을 가지고 섬기면 하나님은 신기하게 더욱 섬김 받는 위치로 올려 주신다. 결국 진짜 큰 인물이 되려면 늘 자신을 낮추고 섬기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라.
왜 회개가 중요한가? 자신을 진심으로 낮추는 입문 단계와 같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거나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으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회개다. 어떤 시련이 생겼다면 그 시련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 우연히 내 가정이나 삶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욥기 5장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의 징계에는 반드시 선한 뜻이 있다. 우연한 사건은 없다. 모든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다.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녀나 사업이나 가정에 문제가 생길 때 거기에 깃든 하나님의 음성을 믿음으로 들으면 위기는 기회가 되고 시련은 더 큰 축복의 산실이 된다.
시련이 올 때마다 겸손한 회개 고백을 하라. “그래, 내가 너무 부족했어. 내가 너무 잘난 척을 했어. 내가 너무 기도하지 못했어. 너무 자랑을 많이 했어.” 그처럼 자기 부족을 깊이 느끼고 겸손해지면 하나님은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더 나아가 위대한 인물이 되길 원하면 시련이 찾아오거나 기도 제목이 생기지 않아도 먼저 겸손함의 틀을 끊임없이 훈련해서 갖추라. 그러면 시련과 어려운 기도 제목이 덜 생길 것이다. 늘 겸손한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인물이 되고 천국 영광의 때를 예비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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