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좋아하는 표범
아프리카에 한 마을이 있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숲속에서 표범 새끼를 잡아왔다.
새끼이지만 '표범'을 아이들이 데리고 노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여서 다들 나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밖이 소란스러운가하고 마을의 추장이 나왔다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애들아, 너희들 그거 어디서 잡았니?"
"숲속에서 혼자 울고 있어서 데려왔어요."
"어미가 찾아오면 어떻하려구!?!"
"어미는 없는 것 같던데요?"
"얘들아, 그래도 표범은 사람을 잡아먹으니까 빨리 내다 버려라."
"괜찮아요, 여태까지 계속 풀만 주는데도 잘 먹어요!"
"지금은 새끼니까 그렇지! 나중에 크면 너희들을 모두 잡아먹고 말거다!!"
어른들이 아무리 겁을 주고, 버리라고 해도 아이들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일단은 두고 보기로 했다.
새끼 표범은 자라면서 풀만 먹었다. 시
간이 조금 흐르자 표범은 금세 큰 표범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순했다. 아이들과 뛰기도 하고 같이 장난도 치면서 즐겁게 놀았다.
먹을 때도 같이 먹고, 잘 때도 같이 잤다. 덩치만 컸지 고양이와 다름없었다.
아이들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풀만 먹고 자란 표범은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었고
정글에서도 다른 들짐승들로부터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자 역할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전과 같이 표범과 함께 정글로 놀러갔다.
한참을 재미있게 놀다가 한 남자아이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빠르게 달리다가 넘어진 터라 무릎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너무 아픈 나머지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표범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앞서 가던 아이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표범은 안쓰럽다는 듯이 아이의 무릎에 있는 상처를 혀로 핥아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표범의 눈빛이 이상해졌다.
원래, 고기를 먹는 동물인 표범이 드디어 피 맛(?)을 본 것이다.
결국 그 표범은 아이들 모두를 덮쳐 잡아먹고 말았다!!
'에디오피아인이 그의 피부를 바꿀 수 있으며, 표범이 그의 점들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 13:23).
아담의 본성을 타고 난 우리들은 모두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다.
우리들이 아무리 봉사를 하고, 선행을 할지라도 우리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다.
표범이 아무리 고양이 같이 행동할지라도 표범은 표범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때는 아무리 착하고 순하게 보일지라도
우리의 본성 자체는 '죄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요 3:7)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행동을 개선하는 것 말고,
우리 자체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거듭나는 것은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들일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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