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 2
그때 우리는 분명히 존경하는 하나의 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그 신은 단지 인위적으로 구분된 세계의 절반만을 포용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공적이고 허용된 ‘밝은 세계’였다).
그러나 사람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경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자면 악마까지도 겸한 새로운 신을 갖거나 아니면
신에 예배하는 동시에 악마에게도 예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데미안은 그때 그렇게 말했었다. ---
그렇다면 지금 이 아프락사스가 신인 동시에 악마인, 바로 그 신인 것이었다.
얼마 동안 대단히 열심히 그 신에 대해 찾아보았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나는 아프락사스에 대한 것을 찾기 위해 온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나의 천성은 손에 쥐고 보면 돌맹이에 불과한 그런 진리를 발견해내는 일 같은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탐구에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한때 그렇게 몰두했던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서서히 관심 속에서 멀어져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그림자처럼 아슴하고 희미해졌다.
그것은 이미 나의 영혼을 만족시켜 주지못했다.
내 자신의 내부에 틀어박혀서 몽유병자처럼 살아온
내 생활 속에 기이하게도 새로운 형태가 형성되어가기 시작했다.
생활에의 동경, 아니 사랑에의 동경이라 할 수 있는 어떤 것과,
베아트리체를 예배하는 동안 잦아들어져 있던 성적인 충동이
다시 나의 내부에서 솟구쳐 왔고 새로운 영상과 목적을 갈망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내겐 어떤 충족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동경을 부인한다거나 아니면 내 친구들이 충족을 채우는
그러한 소녀들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다시 심하게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밤에보다 낮에 더 많이 꾸는 형편이었다.
표상, 영상, 혹은 소망이 나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으므로
나는 내 마음속의 그러한 영상들과 함께, 꿈과 그 그림자와 함께,
현실적인 일상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생명력 있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갔다.
어떤 일정한 종류의 꿈,
항상 되풀이하여 떠오르는 환상이 나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의 내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을 크게 미쳤던 꿈은 대략 이러했다.
나는 고향의 우리 집으로 돌아갔다. ---
현관 위에서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문장 속의 새가 황금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나를 맞이해주셨다---
그러나 내가 막상 어머니를 포옹하려고 하자
그는 어머니가 아니라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변했는데,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힘이 세었으며 막스 데미안이나
내가 그린 초상과 닮았지만 또 막상 보면 다른 모습이기도 했으며
힘차 보이면서도 극히 섬세한 여성다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나를 끌어당겨서 깊고 몸이 떨릴 정도의 사랑의 포옹을 해주었다.
희열과 공포가 뒤섞여 다가왔는데 그 포옹은 신에의 예배인 동시에 죄악인 것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너무나 많은 추억과
데미안에 대한 너무나 많은 추억이 나를 끌어안고 있는
이 여인의 모습 가운세서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져갔다.
그녀의 포옹은 엄숙한 경건성에는 위배되는 것이었으나 희열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이 꿈에서 때로는 깊은 행복감을 느끼며 깨어나기도 했고,
때로는 무서운 죄를 범한 것 같은 죽음의 공포와 양심의 가책에 떨며 깨어나기도 했다.
아주 내적인 이 영상과 외부에서 찾아든 탐구해야 할
신에 대한 암시 사이에 어떤 무의식적인 관련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점점 일정하고 친밀하게 결속되었다.
나는 이 예감의 꿈속에서 아프락사스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감지하게 되었다.
희열과 공포, 남성인 동시에 여성인 것의 혼합, 성스러움과 전율의 뒤엉킴,
다감한 천진성을 뚫고 지나가는 깊은 죄악에의 예감---
이것이 내 사랑의 꿈의 영상이었고 아프락사스 역시 그러했다.
사랑은 이미 내가 불안스럽게 여겼던 동물적인 어두운 충동이 아니었고,
동시에 내가 베아트리체의 초상에게 바쳤던 경건학 정신화된 숭배도 아니었다.
사랑은 그 양쪽 다였다. 양쪽 다였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천사인 동시에 악마였고 남성과 여성이 합일된 것이었으며
인간적인 것과 동물적인 것, 최고의 선과 극단의 악이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내 운명인 것이었고 이것을 맛보는 것이 숙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것에 대해 깊은 동경을 품음과 동시에 깊은 두려움에 떨었고
그것은 언제나 내 머리 위에 실재로 존재해서는 수시로 나에게 덮쳐왔다.
다음 해 봄에 나는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진학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아직도 어디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를 정할 수가 없었다.
내 입술 위에는 콧수염이 자리기 시작했으니 나는 이제 완전한 성인이 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으며 아무런 목표도 없었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나의 내부의 소리, 즉 꿈의 영상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이끄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한다고 느꼈다.
그것은 퍽 어려운 일이었고 나는 날마다 그것에 반항했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것일까?
그렇지만 다른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도 역시 할 수 있었다.
조금만 주의와 노력을 집중시키면 플라톤을 읽어낼 수도 있었고
삼각법의 문제도 풀 수 있었으며 화학적인 분석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나의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목표를 끄집어내어 내 앞에다 확실히 그려보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교수나 법관, 의사가 예술가가 되려고 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이루려면 얼마만한 기간이 필요하고
거기엔 어떤 현실적인 이점이 있는지를 잘 알고들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직업을 갖게 될 것이겠지만
지금은 내가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나 역시 몇 년을 찾고 또 찾아왔지만 아무것도 된 일은 없었고,
어떠한 목표에 도달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나도 역시 어떠한 목표에 도달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정말 난처하고 위험스러우며 무서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