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전 CEO 정주영회장의 리더십
[정주영의 경영철학]
- 사람들은 곤경에 처하면 헤쳐나갈 길이 없다고 체념한다.
그러나 찾지 않으니까 길이 없지,
필사적인 노력으로 찾아나서면 다 해결 방법이 나오게 되어 있다.
[정주영식 손자병법]
- 병사들은 극한 상황에 빠지면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고,
갈 곳이 없으면 단결력이 굳어지며,
깊이 들어가면 투지가 생겨나고,
부득이하면 싸움에 임하게 된다.
[정주영 뛰어넘기 성공전략 포인트]
집념이 강한 사람에게는 하늘도 감동한다!
(1)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하면 집념은 저절로 생긴다.
(2) 매일 아침마다 소리 내어 '그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다짐하라.
(3)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 다른 사람을 감동 시켜라.
전주영 회장의 성공 비결(MBC)
★성공 비결 1 - 내 몸이 담보
강원도 통천,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정주영은 16세에 가출,
막노동판을 전전 하다가 서울의 쌀가게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와 신용밖에 없다고 생각한 정주영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그 결과 쌀가게 주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신용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스물 일곱 되던 해, 정주영은 자동차 정비공장을 차리게 되는데.
자동차 정비공장 문을 연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화재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빚을 얻어 시작한 정비공장이 전소되자, 정주영은 빚위에 또다시 빚을 지게 되고.
다시 일어서야 할 그때,
정주영에게 돈을 빌려 준 사람들은 쌀가게 시절 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정주영이 다시 일어나 오늘 현대그룹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신용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성공 비결 2 - 구두쇠.
30여년 전에 지은 그의 집엔 20여년이 넘은
소파와 10년이 다 된 17인치 TV가 전부였습니다.
17년전 작업복을 죽기전까지 입고 다녔을 정도.
정주영은 젊은 시절부터 아끼는데 있어서는 누구 못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한때 한국 제일의 부자 정주영은 구두쇠였던것이지요.
★성공 비결 3 - 아침형 인간
정주영 회장의 성공비결 또 하나.
그 누구보다 부지런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쌀가게 시절부터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문을 열고 점포를 정리했던 정주영은
자신이 사업을 하던 시절에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해가 빨리 뜨지 않는다고 역정을 내곤 했다는데.
현대회장으로 있을당시에도 새벽 6시 기상, 7시면 회사로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성공 비결 4 - 빈대만도 못한 놈
정회장이 부하직원을 야단칠 때 늘 하는 말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고 햇답니다.
그것은 부두 노동자 시절 몸으로 익힌 정회장의 철학이 담긴 욕설이라고 합니다.
부두 노동자 시절, 몸에 기어 오르는 빈대를 피하기 위해
네 개의 물그릇에 상다리를 담궈 놓고 상위에서 잠을 자던 정회장은
며칠 되지 않아 다시 빈대에게 시달리게 된다.
살펴 본즉 빈대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 천정 위에서 몸으로 뛰어 내린 것인데.
빈대도 머리를 쓰면 되는데, 사람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햇습니다.
정주영은 사업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어 멋지게 성공을 하곤 했지요.
한겨울 보리를 심어 잔디를 대신 했던 부산 UN묘지 공사며,
폐 유조선으로 단번에 물길을 막았던 서산 간척지 공사.
그의 성공은 상식에 매달리지 않는 신선한 발상의 성공이었습니다.
★성공 비결 5 - 불도저
정주영 회장의 별명은 불도저.
그것은 한 번 마음먹은 사업을 무섭게 밀어 붙이는 추진력 때문인데.
1970년, 울산 모래 벌판에 세워진 조선소는 모두가 불가능 했다고 말한 사업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시절,
그곳에 조선소가 세워지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오직 정주영 뿐이었습니다.
울산 모래 벌판의 사진 한 장을 달랑 들고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반에 해당하던 4500만불의 차관을 얻어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를 만들었던 정주영.
그는 조선소 도크 건설과 동시에
26만톤 짜리 두척의 배를 만드는 세기적 실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30개월 후,
대한민국 최초로 만든 거대한 유조선은
한국을 세계 제 1위의 조선국으로 도약시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