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중문학상'에 빛나는 멋진 글 ㅡ 펌 ㅡ
글이 조금 길지만, 제가 읽어보니 공감가며 내용이 시의적절하고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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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중문학상'에 빛나는 휘문고 85회(전성욱君(서울의대 99졸,0 현 해운대백병원 산부인과 교수)의
멋진 글인데 조금 깁니다.
처가랑 가까이 사는 덕에 자주 저녁을 얻어먹으러 가곤 하는데 그럴 때면 장인 어른과
한잔 두잔 반주를 나누면서 나누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 속에 간혹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말씀을 들을 일이 생깁니다.
남천비치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사신 인연으로 자주 술도 마시면서 친하게 지내셨다고 하는군요.
당시 ‘노변(저희 장인 어른께서 당시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일컫는 호칭입니다)’은
아파트 반장이었는데, 저희 장모님 회상으로는 좋은 술이 들어왔다고 밤중에 파자마 차림으로
장인 어른을 찾아와서 장모님께 안주거리 좀 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몇 번 있었다고 합니다.
여하튼 제가 장인어른께 전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매우 소탈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노변”은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고자 악착같이 열심히 일하는 전형적인 젊은 가장의 모습으로
주로 세법, 조세 이 분야 일을 많이 했고, 특히 당시 변호사들이 주로 처리하지 않던
법무사나 사법서사들의 일까지 도맡아 하였다고 하시더군요.
저희 장인 어른께서 부산 상대를 나오신 까닭에 당시 노변이 여러 번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 제 생각에도 그 때 당시 모습은 영화 처음에 나오는 송강호의 모습에서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번 문재인하고도 같이 술 드신 적은 없으세요 라고
장인어른께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하고 만나거나 술 먹거나 그런 적은 없으셨고,
다만 한번 ‘노변’이 인권변호사 시절 이번에 정말 “좋은” 친구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은 적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문재인 변호사였더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좋은 친구”, 아마 노무현은 정말로 문재인을 좋은 사람,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선 친구를 보면 된다면서 자신은 좋은 사람 문재인의
친구이니 따라서 대통령을 할 만한 좋은 사람 아니겠냐교 하던 영상이 기억나더군요.
궁금해서 지금 구글링해보니 본문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아주 믿음직한 친구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가 아니겠습니까”
“좋은” 사람, “좋은” 친구, 정말 듣기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좋은”이라는 단어를 정의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바로 “누구에게” 좋은 사람인가라는 것을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나에게 좋은 사람이 남에게는 나쁜 사람일 수 있고,
반대로 나에게 나쁜 사람은 남에게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경우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의 호랑이 씨를
말렸다고 치를 떨었다는 얘기도 있고,
강강수월래의 “쾌지나 칭칭나네(쾌재라 청정가네)”의 유래가 되었다는 말도 있을 만큼
우리 민족에게는 악귀 같은 장수로 결코 좋은 사람일 수 없었지만
반대로 일본에선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도 보여지듯이 지용을 갖춘
선견지명이 있는 장수로 생각되는 것 같더군요.
또 다른 예로 칭기즈칸은 몽고의 국부이지만 이슬람 세계에서 그의 이름은 악마에 준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하기사 역사를 통틀어 그런 예야 당연히 수도 없이 많긴 하겠지요.
저는 현 대한민국 제 19대 대통령 문재인이란 사람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무위키를 참조하여 보았지요. 단원을 읽어보니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이 있더군요.
우선 당시 부산 최고 명문인 경남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재인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경남고 수석입학생인 그가 정작 서울대학교 입시는 낙방했다고 되어 있더군요
(당시 경남고는 서울대를 100명 가까이 보내던 초일류 지방명문이었습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 수석입학생으로서 정학도 먹었다고 하니 뭔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겠구나,
좋게 말하면 반항아 이미지, 솔직히 열나 똑똑한 반골 문제아가 아니었나 싶었지요.
그리고 더 찾아 보았더니 재수해서 합격한 경희대학교를 다니던 중에 시국 시위로 제적당하고
군대에 반강제로 입대했는데, 당연히 당시 시대 상황으로 보건대 부대에서 관심사병으로
핍박도 많이 받았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군 시절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그것도 여단장 전두환장군에게 직접 받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척 강건한 사람이었나 봅니다(군 시절 당시 사진을 봐도 전형적인 몸짱, 얼짱이더군요).
사법연수원은 12기 출신이라고 되어 있던데 민주화 운동 중에 그 힘든 사시 합격을 이뤄냈고,
정말로 똑똑한 사람들만 드글드글한 사법연수원을 원희룡 같은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도 아니면서
차석 졸업(시위전력이 없었으면 수석이라고 하더군요… ㄷㄷ)으로 마쳤다고 하는 걸 보니
거의 수재를 넘어, 천재, 아니 초인 수준의 인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친한 선배이자 친구인 노무현이 국회위원이 된 이후에도 정계에 나가지 않고
계속 부산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남았다고 하는 걸 보면 시류에 크게 흔들리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이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정치에 뛰어드는 대신
변호사 업무로 복귀하려 했고, 기껏 민정수석을 제안했더니
"공직을 맡는것은 이번 한 번 뿐이다.”라는 조건을 걸고 일을 맡아서
그 마저도 1년 만에 관두었고 하는 것을 보면 당시 그는 감투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한 사람이었던 가 봅니다.
즉, 정말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간에 친구로서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고대 로마시대 최고의 역사가로 알려진 타키투스의 역사(Historiae)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내가 이제부터 서술하고자 하는 것은, 로마제국에는 고뇌와 비탄으로 가득찬 시대의 이야기다
” 타키투스가 연대기에서 비난했던 당시의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역사적으로 게르만방벽을 건설하고
군대의 처우를 개선한 적지 않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검찰(델라토르)을 장악하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등 당대의 잔혹한 공포정치로 최종적으로 암살되었으며,
로마의 공직자에게는 당대 최악의 형벌인 죽은 후 기록말살형(Damnatio Memoriae)에
처해진 것으로 알려진 황제입니다.
제가 여기서 타키투스의 역사 서문을 언급한 이유는 혹시 후세의 역사가가
현 문재인 정부의 치세를 논할 때도 똑 같은 문구가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역병이 창궐하고 홍수로 사람은 죽어나갑니다.
경제는 파탄이고, 원전으로 대표되는 국가 인프라는 박살났는데,
그 나마 경제를 살려야 할 정부는 오히려 삼성으로 대표되는 기업들을 적폐 대상으로 몰아
척결하기 위해 안간힘입니다.
간신들은 제 세상 만나 너도나도 횡령하고 부정을 일삼는데 처벌 해야 할 검찰은 또 다른 간신배들로
판을 치고 있는데다 공수처란 희대의 권력기관까지 동원되어 정당한 법 집행은 요원합니다.
이 와중에 결정적으로 정부는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국가 재앙 사태에서 사기를 북돋아주어도
모자랄 전사들인 의료계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으로 모자라
그 것에 대한 올바른 비판과 최소한의 협의를 주장하는 의료계를 적폐,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 매도하고,
최후의 단계로 젊은 의사들의 작은 항거에 대해 유신시절이나 들어 봤을 음모, 엄단, 엄중 대처 같은
단어들을 들먹이면서 핍박합니다. 남보다 더 가진 것, 남보다 더 배운 것,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한 것,
상식에 입각한 옳은 소리를 하는 것, 이 모두가 죄로 간주되는 세상이지요.
“고귀한 신분도, 재물도, 공적도, 공직을 거부하는 것조차도 죄로 간주되었다”
타키투스의 연대기 서문을 읽다 보면 2000년 전 고대 로마의 한 폭군의 시대가
현 시절과 너무 많이 겹쳐져서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번 대통령은 바보다, 대통령이 레임덕이다, 대통령은 주사파의 꼭두각시이다,
대통령은 하는 일 없이 쩝쩝대기만 한다, 등등….
하지만 저는 이러한 맹목적인 비판에 동의하고 싶진 않습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한 바와 같이 제가 찾아본 인간 문재인은 역대 그 어떤 대통령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걸출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의문이 생겨납니다. 왜 좋은 사람 문재인이 대통령인데,
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똑똑하고, 많이 배우고, 심신이 건강한 좋은 사람인 그가
대통령으로 있는 이 나라가 오히려 이 모양 이 꼴 개판 오 분전으로 돌아가고 있을까요?
전 그에 대한 해답을 바로 그가 “좋은 사람”, “좋은 친구”라는 것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그의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문재인의 [운명] 중에서).
”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에서 상주로 의연히 서있던 문재인을 기억합니다.
당시 많은 시민, 정치인, 그리고 유족들의 눈물과 통곡, 성난 분노의 목소리 와중에도
정작 상주로 서 있던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요.
심지어 그 순간 가장 증오스러웠을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도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차분히 인사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진정한 “좋은 친구” 문재인은 과연 그 순간 가장 친한 친우이자
그의 책에서 언급한 “운명”의 대상의 비통한 죽음 앞에서, 당시의 그 의연한 외연의 모습 속에
감춰진 내면에서 어떠한 불길을 끌어 올리고 있었을까요?
정비석의 소설 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주인공 손무(손자)는 사실 페이크 주인공일 뿐
실제 주인공이 누군지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유현덕(유비), 제갈공명(제갈량)과 마찬가지로 본명인 오운보다 그의 자로 더 많이 알려진
오자서는 아마도 춘추전국시대를 넘어 중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최고의 근성 가이가 아닐까 싶은 인물인데요.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으나 아버지와 형이 억울한 누명으로 왕에게 죽음을 당한 후
친구 신포서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한 이후 무협지를 능가하는 고된 여정 끝에 도달한
오나라에서 자신을 믿어주는 군주를 만나 뜻을 이루게 되고 최종적으로 그의 지고의 복수를 완성하게 됩니다.
그 어떤 무협지 주인공보다도 드라마틱했던 그의 삶이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그의 얘기들이 야사가 아니라 실제 정사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자서는 가장 많은 사자성어와 관련된 인물로도 알려져 있지요.
자신을 버린 초나라를 멸망 직전에 이르게 하였고, 자신의 부모와 형의 원수인 초나라 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구리 채찍으로 수백 대를 쳐서 형체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들었지요(굴묘편시[掘墓鞭屍]).
그의 도주를 도왔던 친구 신포서가 '아무리 복수라지만 시체 훼손은 차마 못 할 짓이 아니냐'고 꾸짖자
그에 응한 오자서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날은 저무는데 길이 멀은지라(일모도원[日暮途遠]),
거꾸로 행하며 거꾸로 베풀었소이다(도행역시[倒行逆施])
” 문재인 정부 3년의 시간, 굳은 신념과 강철 같은 의지로 무장한 “좋은 사람” 문재인의 통치기는
적어도 제게 있어선 마치 13년 마냥 힘겹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KOREAN AVANGER 실사판의 주인공인 우리 근성의 대통령 께서는
이미 골방 늙은이로 전락한지 오래인 이명박을 기어이 끌어내어
그의 친우가 겪었던 똑같은 과정으로 몰아넣은 끝에 결국 굴묘편시하여 버렸지요.
그리고 그의 운명을 자살로 몰아가는데 크게 일조했던 검찰이라는
또다른 숙적을 추미애라는 마귀할멈을 이용하여 가루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나라를 증오와 분열과 비방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만든 폭정의 시간 동안
그는 KBS, MBC, TBC 등 주류 언론을 제압하고,
그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의 언로를 막았으며,
한편으로 그의 충직한 팬덤들이 자신의 남은 적들에 대하여
총칼없는 인터넷 사냥질을 하는 것을 방조, 또는 묵인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실제는 그렇지 않을 자신만의 망상 속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고자 또 다른 철퇴를 준비합니다.
행정부의 수장이자 군 통수권자이며, 180석이라는 입법부의 힘과
‘우리법연구회’로 대표되는 사법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는 아직도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은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라고 외치면서,
우리 국민들을 겁박하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습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 노무현은 ‘바보 노무현’이었을지 모르나 결코 문재인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 자신이 지난 시행 착오를 부정하고 자신과 자신의 추종자들의 결점에
눈을 감는 이유가 무어일까요?
바로 그 스스로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이 멀다고 느낀 나머지 거꾸로 걷고 거꾸로 일을 해야 할지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멈출 생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 저물기 전에 그에게 주어진 소명을 해내기 위해선, 그 일을 끝마치기 위해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돕는 충직한 이들의 작은 부정 따위는 거꾸로 걸으며 일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있지 않을까요?
국가 수반이 검찰 피의자 조국을 감히 ‘마음의 짐”이라고 일컬으며 옹호하는 그 순간,
그의 지지자들의 열광과 함께 대한민국의 헌정은 통째로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그는 결코 흔들림이 없었지요.
그래서 저는 대통령 문재인이 스스로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는 결코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능력이 있고 이미 상황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사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 모든 상황을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게 하니까요.
특히 최근의 의사들의 저항을 찬성하는 사람이든, 아님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이든 간에
누구나 드는 의문, 왜 하필 이 시점에서 모든 의료인들이 반대할 것이 뻔한
4대 악법을 시행하겠다고 외치는 그의 일방적 독선의 이유를 설명하기에
이 보다 적합한 설명이 적어도 저로서는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나라 대한민국의 비극이 초래되었다고 보여집니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잘못된 신념의 의지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모택동이 그랬고, 킬링필드를 초래한 캄보디아의 폴포츠도 그랬지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에서 웃음이 가져오는 해악을 두려워했던
부르고스의 호르헤 수사는 결국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살인을 불사하였을 뿐 아니라,
최후에는 기독교 세계의 마지막 보루라던 해당 수도원의 장서관을 통째로 불살라버리기까지 했습니다.
누군가를 지키고, 누군가의 뜻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신념은 그
목적의 숭고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목적의 숭고함으로 인하여
그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해악을 헤아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운명이다’를 되뇌이는 우리 대통령의 모습 앞에서 그 어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천계가 온통 눈물바다가 되건 해골의 산이 되건 상관없다”고 말하던
제석천(CLAMP 성전)의 모습과, 자신이 나고 자란 팔라디섬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땅고르기”를 발동하여 남은 지상의 모든 생명을 말살하고자 한
에렌예거(진격의 거인)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그네들의 폭주기관차를 누군가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세상을 멸하는 거인들의 뒤에 서서 홀로 ‘자유다’를 외치며
신나하는 에렌예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만약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적이 폼페이우스가 아니라 이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떡밥이 역덕들에게 늘 제기되는 그 인물, 고대 불의 장군이자 공포의 독재자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묘비에는 자식이 직접 지은
다음과 같은 묘비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No better friend, no worse enemy(최고의 친구, 최악의 적).’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친구, 대가리가 깨져도 그를 따르겠다는 수많은 열성 지지자에 둘러 쌓인
좋은 사람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상대해야 하는 지금, 하루 하루가 마치 1년처럼 느껴지는
이 나라 국민은 아마 저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저희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나머지 백병원 전공의들도 사직서를 제출하였다고 하네요.
전국의 수많은 젊은 의사들이 사직서 외에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할 방법이 없는,
끝이 잘 보이지 않는 이 현실 속에서 제자들에게 작은 힘 조차 되어 주지 못하는
이름 뿐인 한 의대 교수의 작은 가슴 속 깊은 곳엔 그 온도조차 알 수 없는 마그마만 계속 끓어오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누군가는 말했던가요.
결국 이 힘든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이렇게 강대한 적과의 싸움이 필연일 수 밖에 없다면
저 역시 담담히 이 강대한 적에 피하지 않고 맞서길 원합니다.
제 동료, 선배,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의사로서, 스승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사랑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의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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