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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lo - celloconcerto D단조

Joyfule 2006. 5. 20. 01:29

랄로의 첼로협주곡 D단조 
    ♧ 랄로의 첼로협주곡 D단조 - 작품배경 랄로는 역량에 비해 무척 운이 없었던 음악가로 알려졌었다. 그는 프랑스 릴의 스페인 가계 출신으로 부친은 나폴레옹에게 직접 훈장을 받은 군인이었다. 유년시절 릴 음악원에서 베토벤 지휘로 연주한바 있다는 첼리스트 보만을 사사했다. 대를 잇기를 원했던 부친의 희망을 저버리고 16세에 집을 떠나 파리 국립음악원에입학했지만 고루한 교육방법과 어려운 생활로 고달픈 학창시절을 보낸다. 47년에 로마대상에 도전하여 2등에 머물자 작곡을 포기하고 아르맹고 4중주단의 비올라 주자로 들어간다. 1865년에 결혼, 다시 작곡을 시작해 오페라 공모에 도전하지만 3등에 그쳤다. 그러나 당시 그를 주목했던 파리 오페라극장 단장이 작품 의뢰를 해오나 그것도 전쟁, 화재,파산,등으로 결국 불발하게 된다. 결국 관현악을 위한 디베르티멘토가 발표되면서 비로소 조그마한 성공을 거두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50회 생일 전날이었다. 그후 1873년 사라사테가 연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대성공을 거두고 스페인교향곡에 이어 1878년 첼로 협주곡이 발표되자 작곡가로서 랄로의 위치는 확고해지며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곧 중풍증세가 시작되고 그의 유일한 오페라가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원했던 예술원에 뽑히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친다. D단조 협주곡은 1877년에작곡,그 다음해 파리에서 피셔에 의해 초연되었고 그에게 헌정되었다. 랄로 첼로협주곡 D단조 - 구성과 특징 제 1악장/프렐류드 : 렌토-알레그로 마에스토소 제 1악장/프렐류드 : 렌토-알레그로 마에스토소 광대하고 느린 서주가 첼로의 남성적 레치타티보를 선행한다. 1악장의 주주제는 리듬과 음정이 팡파레 같은 열정을 기초로 하는데, 서주의 인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엄숙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에 비해 종속 주제는 '돌체시모 에스프레시보'가 지시하듯이 매우 서정적이며, 2분박과 3분박의 배합으로 스페인풍을 자아낸다. 카르멘 행진곡 같은 삽입절이 잠깐 스치고 오스티나토적 리듬과 1주제의 팡파레적 요소가 합쳐져 극도로 발전된다. 재현은 삽입절 없이 1, 2주제를 등장시킨 다음 화려한 결론부로 직행한다. 제 2악장/인터메초 : 안단테 콘 모토-알레그로 프레스토 카잘스는 이 앙ㄱ장을 설명하면서 "여기에는 격렬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나 우아하고 스페인적이어서 고아함과 시적인 미를담아서 연주해야 한다"고 했다. 단순한 2부 형식으로 1주제는 고상하고 몽상적인 느린 멜로디이고, 2주제는 현의 피치카토와 플룻의 스타카토로 된 오스티나토 리듬에 맞춰 솔로가 싱코페이션의 가볍고 경쾌한 노래를 부른다. 약간 변형된 1, 2주제가 반복되고 나서 피치카토로 가볍게 끝을 내는데, 이를 듣노라면 너무나 사랑스러워 항상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제 3악장/안단테-알레그로 비바체 스페인적 무드가 고조에 달하면서 3악장은 첼로 독주가 하바네라 선율을 느리게 두 번 반복하며 서주를 장식한다. 이어 스페인 춤곡의 1주제가 비바체로 힘차게 연주되자마자 쉬지 않고 빠른 하바네라의 2주제가 나타난다. 론도 형식의 피날렐는 마지막 코다에 가서 체로는 a"의 고음까지 치닫고 여기에 금관과 팀파니가 가담하고 4개의 호른의 강주로 장대하게 곡을 마친다. 랄로 첼로협주곡 D단조 - 가치와 매력 드보르자크의 위대함이나 생상의 정교함 같은 것은 부족하지만 랄로의 협주곡은 우선신나고 즐겁다. 스페인 음악이 가지고 잇는 발랄함, 유희성, 유머감각과 프랑스 음악의 특징인 합리성과 멋스러움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오랜동안 작곡으로 성공하기 위해 공들인 연구과 노력을 모두 담아낼려는 욕구에 너무 많은것을 일시에 표현하려는 의도가 보여지는데, 이것은 낭만주의 음악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 그는 어려서 스승이던 보만의 가르침, 즉 "평범하다 혹은 관용적이다 함을 경계하라, 그렇다고 괴상하면 더욱 안된다. 그러고 남이 하기 때문에 행하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다고 느낀 것만을 행하라" 고 한 말을 늘 잊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비록 50세가 될 때까지 기다림이 있었지만, 랄로는 확실히 남이 흉내낼 수 없는 것과 자신이 하고픈 것만을 이루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