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참전군인 위안부 증언…‘중국 부녀자 사냥’ 목격
기사입력 2013-05-23 22:12:00 기사수정 2013-05-23 22:13:03
위생병 출신 마쓰모토씨 "나도 전쟁범죄자…고통스럽지만 밝혀야"
"日 총리 제대로 사과하고 보상할 사람에게 보상해야"
일본인 "위생병 시절 중국 부녀자 사냥 목격했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90대 일본인 남성이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위안부 동원 행위를 증언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과거 잘못을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목사 은퇴 후 가나가와(神奈川)현 사가미하라(相模原)에 사는 마쓰모토 마사요시(91)씨는 23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자신이 1944년 초부터 1946년 3월까지 일본군 제1군의 '가타메(固)여단' 7대대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월27일 자택에서 취재에 응한 마쓰모토씨. 연합뉴스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90대 일본인 남성이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위안부 동원 행위를 증언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과거 잘못을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목사 은퇴 후 가나가와(神奈川)현 사가미하라(相模原)에 사는 마쓰모토 마사요시(91)씨는 23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자신이 1944년 초부터 1946년 3월까지 일본군 제1군의 '가타메(固)여단' 7대대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첫 6개월가량은 산시(山西)성 양취안(陽泉)시 위현(盂縣)에 있던 대대본부, 이후 1년반가량은 조사진(上社鎭)에 있던 1중대에 속해 있었다. 그의 주된 임무는 일본군 장교와 병사들에게 콘돔을 나눠주고 위안부들이 성병에 걸렸는지 검사하는 일이었다.
대대본부에 있을 때에는 조선인 위안부 6∼7명이 탈출하려고 해도 탈출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장교 50여명을 상대하는 걸 목격했다. 정식 위안소가 없는 중대의 실태는 더욱 잔혹했다.
마쓰모토씨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은 중국인 주민을 잠재적인 게릴라로 취급했고, 마을을 공격해 '부녀자 사냥'에 나서곤 했다.
"요퍄오쿠냥(정확히는 '요우피아오량더쿠냥'<有漂亮的姑孃>=예쁜 여자애 없느냐)이라는 중국말은 지금도 기억나요. 여자들을 찾으면 부대로 끌고 가서 집단으로 강간하는 걸 목격했죠"
위생병 마쓰모토씨는 한 상등병이 부녀자를 잡으러 민가에 들어가다가 지뢰를 밟아 숨진 일과 당시 부대장이 마을 촌장과 교섭을 벌여 부대원들이 마을에서 잡아온 뒤 강간한 부녀자 7∼8명을 돌려보내는 대신 다른 여성 2명을 데려온 일을 회상했다. 지뢰를 밟아 숨진 상등병은 국가를 위해서 숨졌다며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됐다고 한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전투를 해본 적이 없어요. 주민들이 우리를 습격할까 봐 겁을 냈고, 부녀자들을 사냥하는 게 일이었죠"
마쓰모토씨가 속한 부대가 실제 전투에 나선 것은 일본이 패전한 1945년 이후였다. 당시 1군단장이던 스미타 라이시로(澄田래(貝+來)四郞.1890∼1979) 중장이 병사들을 중국 군벌인 옌시산(閻錫山.1883∼1960)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일본인 병사들은 중국 군벌 휘하에서 중국 공산당과 전투를 벌였다.
"수천명 중에서 650명이 전사하고, 700명은 다치거나 도주했어요. 결국 공산당에 붙잡혀서 전범 수용소에 있다가 귀국했죠. 당시 전우 중에는 중국 공산당으로부터는 비교적 인간적인 대접을 받았는데, 일본 귀국 후에 경찰 감시를 받은 사람들도 있어요"
일본인 "위생병 시절 중국 부녀자 사냥 목격했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90대 일본인 남성이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위안부 동원 행위를 증언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과거 잘못을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목사 은퇴 후 가나가와(神奈川)현 사가미하라(相模原)에 사는 마쓰모토 마사요시(91)씨는 23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자신이 1944년 초부터 1946년 3월까지 일본군 제1군의 '가타메(固)여단' 7대대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월27일 자택에서 취재에 응한 마쓰모토씨. 연합뉴스마쓰모토씨는 1946년에 먼저 일본에 귀국한뒤 기독교 목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목격한 일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부녀자 사냥을 벌이다가 숨진 상등병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것을 계기로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가했다.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 옛 전우들의 권유로 자신이 목격한 일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마쓰모토씨는 로이터통신과도 인터뷰를 했다. 그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나는 전쟁 범죄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은폐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고통스럽지만 나는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안부 여성과 성 관계를 가지려고 위안소 앞에 줄지어 서 있던 군인들이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자 각반을 풀고 바지를 내리곤 했다며 "그것은 마치 화장실에 가려는 모습과 같았다"고 말했다.
마쓰모토씨는 위안부 여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증언한 뒤 일본군의 위안부 제도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 겸 일본유신회 대표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하시모토 대표는 지난 13일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해 "그 정도로 총탄이 오가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강자 집단에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라면서 "왜 일본의 종군위안부 제도만 문제가 되느냐, 당시는 세계 각국이 (위안부 제도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해 국제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마쓰모토씨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하시모토 대표의 발언에 대해 "잘못을 한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도 잘못했다"며 "다른 사람이 살인했다고 해서 자신이 살인자가 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아베 총리에 대해서도 "일본 총리는 일본 국민을 대표해서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며, 보상을 받을 사람에게는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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