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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친목단체로 변하는 우리네 교회

Joyfule 2019. 2. 28. 08:24



 
   거대한 친목단체로 변하는 우리네 교회



우리 엄마 94세 권사님은 목사님 설교를 주일날 들으시고도 금요일 방송으로 들으시며 아멘 하시는 분이신데, 새로 오신 목사님설교를 방송으로 들으시지도 않고, 나에게 설교가 너무 좋다 자랑도 아니하시기에, 94세 할머니께 짤리신(?) 이유가 궁금하여 너무 아까운 나의 시간 30분을 할애하여 들었더니 과연 짤릴만 했다 십자가의 보혈도 회개도 구원도 천국도 지옥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교우 간에 '의리 있는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구원을 주신단다. 오 주여, 어찌하오리까? 평교인보다도 못한 목회자들이 너무 많다 양들을 잘못 인도한 저들의 죄를 어찌할꼬? 불쌍한 양들은....’

 

위의 글은 외국에서 기도훈련을 하는 자매님의 리포트 중의 일부이다. 그 자매님의 어머님은 94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남달라서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즐겨듣고 방송으로 올린 것도 즐겨 보시는 분이시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담임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새로 오셨나보다. 그런데 새로 오신 목사님의 설교를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십자가의 보혈도 없고, 회개도 구원도 없고, 천국도 지옥도 없는 알맹이가 없는 무미건조한 설교에 실망하신 모양이다. 94세의 노인의 눈에도 목회자의 진면목이 보이는 데, 대다수의 교인들은 이런 교회와 목회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기가 막힌 일이다.

 

필자도 사업에 실패해서 인생이 무지막지하게 떠내려갔던 시절, 대전에서 명성이 자자하다는 소문을 듣고, 아내와 함께 기대감을 품고 그 교회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기독교계 방송사 사주의 아들로서 외국에서 신학을 한, 그야말로 이 시대가 찾던 참신하고 멋진 목회자였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해박한 성경지식으로 감성을 터치하는 쫀득쫀득한 설교가 너무 좋았다. 교인들도 열린 마음으로 환영해주었으며, 다양한 교회의 프로그램도 필자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그렇게 1년을 흡족하게 다녔다. 그러나 영혼의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아내와 심각하게 이 문제를 나누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목회자의 설교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이런 이유가, 교인들이 앞 다투어 나가버려 문을 닫는 교회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름만 대면 명성이 자자한 대형교회나 자랑거리가 넘쳐나는 중견교회의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네 교회가 회복할 수 없는 깊은 병에 걸려 몸져누운 상태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필자의 얘기가 곧이 들이지 않는다면, 인터넷에 들어가서 유명한 목회자의 설교를 들어보라. 그들의 설교주제에 십자가의 보혈과 회개와 구원과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말이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안심하라며 등을 토닥거리는 데, 회개와 지옥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시대의 세속적인 교회와 탐욕스럽고 방탕한 자신들의 죄를 내어놓고 통렬한 회개를 촉구하지 않는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나 능력에 대해 가르치겠는가? 죄를 말하지 않는 교회는 보혈의 능력이 필요 없으며 지옥이 두렵지 않다. 그저 지금처럼 교회에 모여 종교의식을 거행한 후에, 교인들끼리 모여서 희희낙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바쁘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목회자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네 교회에 무슨 기도의 응답이 있는가, 아니면 성령의 능력이 있는가? 정신질환 환자들이나 고질병 환자들이 교회에 와서 고침을 받고 있는가? 귀신들린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해결 받고 있는가? 삶의 지난한 문제를 가진 교인들이 기도로서 가정이 회복되고 삶이 치유 받고 있는가? 교회에 와서도 건조하고 냉랭하며 갈급한 영혼이 기쁘고 즐겁고 평안한 영혼으로 채워지지 않으며, 고단하고 팍팍한 삶이 행복하고 형통한 인생으로 바뀌어 지지 않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궁리를 생각하지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에 드럼과 전자악기와 키보드를 들여다 놓고, 빠르고 현란한 기교로 무장한 복음성가를 부르며, 부흥집회라는 명목으로 나이트클럽을 방불케 하는 콘서트를 열기 시작했다. 그들이 부르는 찬양의 가사조차 알지 못하고, 열광에 빠져서 감정이 격앙되어서 괴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 이런 일은 내적 치유를 하는 집단에서 주로 사용하는 심리적인 치유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문을 나서자마자 건조하고 냉랭한 마음으로 신속하게 돌아단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지도자들은 교회를 거대한 친목단체로 만들기 시작했다. 비전센터라는 명목의 럭셔리한 커피숍을 차려놓고 교인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게 하고, 교인들을 직업별로 신분별로 취미가 비슷한 끼리 동호회를 만들어서 친목을 하고 이웃교회와 축구경기를 하고 등산을 다니며 야외로 놀러 다니게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교회 안에 각종 악기나 영어를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문화강좌 교양강좌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교회 안에 붙잡아 놓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중견교회나 대형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교회성장프로그램이고, 목회성공에 눈에 어두운 군소교회의 목회자들이 따라가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이런 교회가 천국이 좁디좁은 문임을 가르치면서,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회개를 촉구하며 지옥의 두려움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겠는가? 겨우 한다는 말이,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전부 구원을 얻는다는 거짓교리를 쏟아부어줄 뿐이다. 이런 교회는 미혹의 영이 잠들게 하여 영원한 지옥불로 던져지게 하는 교회이다. 이런 교회의 특징은 목회자가 기도를 하지 않으며 교인들에게 기도를 촉구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을 만나려 하지 않는 교회에는 하나님이 떠나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교회를 바라보면 예수님이 답답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실 뿐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3:13~20)

 

대부분의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가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과 닮아있다. 자신들은 믿음이 부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 문밖으로 쫓겨나서, 열어주기를 기대하며 문을 두드리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당신이 이런 교회에 몸담고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기 바란다. 아니라면 심판대 앞에서 당신영혼의 운명을 경악하며 직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