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검정고무신 - 한인애

Joyfule 2005. 12. 28. 00:49
     
    검정고무신 - 한인애 
    어둡고 구멍 숭숭 난 시간을 질기게도 걸어 왔던거야,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시간인거야, 
    쓸쓸한 심장을 데워주던 기름통에 
    노란불이 켜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오는 법,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조차 떨어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눈을 감고 싶었을 뿐이야, 뚝. 
    마을 소공원의 벤취에 
    날마다 나와 앉으시던 노 할머니 
    검버섯 같이 내려와 앉는 낙엽을 
    떨리는 손으로 줍고 있었다 
    담쟁이처럼 얽혀 살던 눈빛 하나가 
    햇살처럼 손을 포개며 
    ‘감자 먹고 가지, 왜 그냥 갔어’ 하면 
    ‘응, 응’ 하고 채 머리만 흔들더니 
    그 잘디잔 허들 걸음으로 어디를 가셨나 
    바람이 조금 더 일렁일 뿐인데 마음이 자꾸 울컥거린다 
    지독한 그리움이니 까닭모를 눈물이니 하는 애상이 
    구름처럼 떠다니고 
    손안에는 무료한 시간만 들락거린다, 
    무릎이 비어가는 계절 
    햇살은 자꾸 등을 기대오지만, 
    더 이상 달리지 못하는 시간이 이제는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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