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힘들고 지친다는 이들에게
오늘 아침에 외국에서 거주하는 동포가, 필자가 그동안 해온 기도 간증이 들어간 블로그의 칼럼에 질문을 하였다. 질문인즉슨,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하는 게 지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자신도 절박하게 기도하고 싶은데, 재미있는 기도가 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이런 딜레마는 열심히 기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던 생각일 것이다. 사실 필자가 이 기도를 하기 전에는, 새벽기도회에도 변변히 참석하지 못한 그렇고 그런 교인에 불과했다. 아침 5시에 일어나는 일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부랴부랴 출근해야 하는 일이 녹록치 않아서이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작정하면 잠이 모자라서 오후가 되면 피곤해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의 기도회에 성실하게 참석하는 사람들은 담임목사나 다른 교인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장로나 권사 등의 중직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필자가 어떻게 해서 기도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는지 궁금하실 법도 하다.
그동안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수단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교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기도제목을 나열한 후에, 자신이 원하는 기도제목을 열거하는 기도를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려고 나타나는,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요정 지니가 아니다. 그분의 세상의 창조주이시자 우리들의 주인이시다. 말하자면 우리가 그분의 노예(종)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그분의 뜻에 합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소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관심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희생의 강도를 높일수록, 기도가 노동이 되고 종교적인 행위가 되어서 자기 의와 자기만족의 수단이 될 뿐이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잠30:15)
그렇다면 어떤 기도를 해야 행복하고 즐거운 기도가 될 수 있을까?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는, 자신의 소원을 얻어내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기도이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정작 기도할 때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는 떼를 쓰고 있다면, 그게 종의 모습이겠는가? 그래서 교인들이 아무리 열심히 희생적으로 기도하더라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을 불러 모셔 들여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기도이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4,5)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2~14)
사도들과 수많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따랐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기이한 명령을 내리신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가서 성령을 간절히 구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1분짜리 영접기도에 아멘하기만 하면 성령이 자동적으로 내려오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3년 반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사도들과 제자들에 비교해서 엄청난 특혜를 주신다는 게 아닌가? 사도들도 열흘가까이 하루 종일, 오로지 성령을 부르는 기도에 힘쓴 끝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사도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는 성령의 능력으로 영혼구원사역을 한데 반해서, 영접기도로 손쉽게 성령이 내주한다고 믿는 우리네 교인들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다. 기이한 일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위의 예수님의 말씀의 대상이 누구인가? 바로 초대교회였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들이다.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는가? 아니다. 고향과 가족과 평안한 삶을 내려놓고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었던 유대인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 안에 계시는가? 아니다. 예수님은 그들 밖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하고 계신다. 즉 예수님은 그들과 따로 떨어져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겠다고 제안하시고 계시다. 이렇게 한 때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었던 초대교회의 교인에게조차 예수님이 안 계시는 사람이 허다한데, 우리네 교인은 항상 계신다고?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안에 모신 사람의 특징은 평안과 자유와 잔잔한 기쁨이 넘쳐흐르게 된다. 필자가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인 이후에, 성령이 오셔서 이런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필자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시며, 놀라운 영적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는 영적 능력으로 영성학교 사역을 인도하게 해주셨다. 이렇게 사도들도 전심으로 성령을 부르는 기도를 한 이후에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전부였는가? 그 이후에도 쉬지 않고 기도하며 깨어서 항상 성령과 교제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였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당신도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누리고 싶다면,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요청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들어오시면 기도하는 시간이 기뻐지고 기도하고 싶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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