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豫定論)은 신학자나 교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는 계시 진리이다. 과거 어거스틴은 물론이고 칼빈을 비롯하여 루터와 쯔빙글리 등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모두 예정론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주장한 것은 예정론이 성경적인 진리이기 때문이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작정 섭리에 따른 예정 사역을 너무도 분명하게 확증해 준다. 구약은 여호와의 언약의 내용이고 신약은 그리스도의 성취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약의 핵심적인 내용인 여호와의 언약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과 예정에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예정론은 성경적인 진리임이 분명한 것이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이나 성도들은 예정론을 낡은 사상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특히 인본주의 신학자들은 예정론을 무지한 시대의 유물쯤으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 오늘날 신학계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예정론을 가르치고 전해야 할 장로교의 목사들마저도 예정론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고 예정론을 가르치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하나는 인본주의 신학과 신앙이 범람하면서 예정교리가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있으며, 또 하나는 예정론이 성도들의 신앙적인 열심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소심한 생각 때문이며, 또 하나의 이유는 기독교 예정론 자체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허다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예정론을 반대하는 자들 중에는 대부분 예정론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 보지도 아니 했거나 알아 보았다 해도 잘못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예정론이 말도 안되는 것라든지 숙명론 같은 것이라고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고 아예 더 언급하기를 싫어하고 논의 하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예정론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들추면서 반론을 펴기도 한고 비난만을 일삼는다. 이와 같은 태도는 너무나 경솔한 태도이며 진리에 대한 진지성(眞摯性)의 결여로 인한 과오이며, 성경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 기독교 예정론은 그렇게 경솔하게 속단해 버릴 만큼 허술하거나 가벼운 진리가 아니라 너무나 깊이가 있고 무거운 진리인 것이다. 1. 예정이라는 말의 뜻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豫定)이라는 단어의 뜻은 대개 미리 계획(計劃)을 확정(確定)해 놓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롬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엡1:4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살후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즉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작정섭리 안에서 인간 각 개인에 대한 모든 경륜을 미리 결정해 놓으셨다는 의미이다. (행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롬8:29)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칼빈은 말하기를 “우리가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이라고 하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각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일을 스스로 결정하시는 것을 말한다.” 라고 말하였다. 성경에는 예정에 대한 진리를 증명해 주는 여러 명사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는 ‘예정’으로 직역이 되는 것도 있고, 그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구약성경에서 예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야다’라는 말과 ‘빠카르’라는 말이 있는데 ‘야다’라는 말은 ‘지식한다’‘인식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단순한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어떤 자를 사랑의 관심 또는 선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용어이다. 그리고 ‘빠카르’라는 단어는 ‘선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영원한 선택을 포함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용어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정이라는 의미를 나태내는 헬라어의 ‘기노스케인’과 ‘프로기노스케인’과 ‘프로기노시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모두가 예지(豫智)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히브리어 ‘야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와 뜻을 가지고 있는 용어인 것이다. 그리고 ‘에클레게스다이’나, ‘에클로게’라는 말도 있는데 이 모두는 ‘선택’ 이라는 뜻으로서 영원적(永 遠 的 ) 선택(選 擇)을 포함하는 말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모두가 ‘예정’을 표현하는 용어들로서 한결같이 ‘예정’이라는 신학적인 명사로 변역된 구원론적 술어 안에 함유되어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이다. ( 롬9: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딤후1:9)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욥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準繩)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2. 예정의 성경적 개념 예정교리는 하나님의 작정섭리에 포함된 인간의 구원과 멸망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진리이다. 하나님의 작정섭리는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이고 불변적인 것으로서 유한한 피조물과는 아무런 조건이나 관계됨이 없이 하나님의 절대적이며 영원한 신적인 의지에 의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에서만 기원한다. (사4: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나님은 만사를 작정하시고 인간을 예정하시고 정하신 뜻을 따라 우주와 만물을 운행하시고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정하신대로 주관하시고 천사와 마귀는 물론, 모든 영계까지도 피조계에 속한 전 우주를 미리 작정해 놓으신 대로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작정섭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온 우주에 속한 모든 태양계와 천체들의 위치와 운행은 물론 지구의 공전과 자전 그리고 모든 만물의 생성과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문명들의 번영과 쇠퇴, 그리고 국가들의 부흥과 패망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영역을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은 이 피조계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시119:89) “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시148: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할지어다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지어다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저가 또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시고 폐치 못할 명을 정하셨도다“ (욥1:12) “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고전 2:7) “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인류의 역사와 자연계의 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보았다. 그들은 이 계시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하신 뜻이 완전히 실현될 것으로 보았다. 이같이 하나님의 작정섭리 안에 예정섭리가 포함 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예정론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기쁘신 뜻에 의해서 형상따라 지으신 인간 가운데 구원얻을 자와 멸망받을 자를 미리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計劃)을 말한다.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한 예정론은 그동안 숱한 반대자들의 비난과 조소를 받아 왔다. 특히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끈질긴 반대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칼빈의 후예들인 장로교 안에서도 예정론에 대하여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으로 받아 드리고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깊은 뜻을 바르게 깨닫게 된다면 누구도 예정론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신구약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절대적인 작정과 예정섭리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너무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정론을 반대하거나 부정한다면 성경의 무오성, 또는 완전영감설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며 성경자체를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과오를 범하게 될 것이다. (벧후 1:20) “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롬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요 17:6) “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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