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길 - 김기림

Joyfule 2007. 5. 16. 16:37
 
   
길 -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혼자 때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가로 내려 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두움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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