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화이야기

김문홍의 영화 이야기- 알레한드로 곤자레스 이냐리투의 <바벨>

Joyfule 2007. 3. 4. 01:25
소통의 단절을 극복하려는 희망의 모자이크
- 알레한드로 곤자레스 이냐리투의 <바벨>

김 문 홍


온 땅이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서로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라”하였더니...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구약성서 창세기 11장 1-9절


모로코 사막에 울린 윈체스터 라이플 총성의 나비 효과

에피소드 하나.
모로코 사막 위로 한 늙스구레한 사내(핫산)가 걸어가는 것으로부터 이 영화의 첫 시퀀스가 시작된다. 그 사내의 어깨 위에는 사냥용 윈체스터 라이플 한 정이 걸려 흔들거리고 있다. 그 사내는 친절한 사냥 안내의 보답으로 일본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총을 이웃 마을의 압둘에게 500 디람(모로코의 화폐 단위)과 양 한 마리의 가격으로 팔아넘긴다.
압둘에게는 딸 하나와 두 아들이 있다. 두 아들은 성격이 판이하다. 형 아흐메드는 장남답게 신중하고 소심하다. 그렇지만 동생 유세프는 모험심이 강하고 진취적이며 사춘기적 열정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누나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고 난 뒤 자위행위를 할 정도로 끓어오르는 본능을 주체할 길이 없다. 두 소년은 3 킬로미터 전방의 목표물 사격까지 가능하다는 총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양치기를 하는 도중 이리저리 총을 쏘아댄다. 마침 언덕 저 아래로 외국인 관광객을 실은 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동생 유세프는 버스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총을 발사한다.
에피소드 둘.
멕시코 출신 히스패닉 계열의 아멜리아는 미국인 가정에서 보모 노릇을 하고 있다. 그녀는 16년째 이 집에서 보모 노릇을 하면서 두 아이들을 자기 손으로 키운 만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친부모 이상으로 각별하다. 여행 중인 주인 부부를 위해 지금 아들 마이크와 딸 데비를 돌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녀는 멕시코에서 있을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해야만 한다. 이웃에 있는 히스패닉 계열의 여자 가정부에게 부탁을 해 보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미국인 두 아이들을 데리고 사촌의 승용차를 탄 채 멕시코 국경을 넘기로 한다.

에피소드 셋.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치에코는 청각 장애인으로 수화로 소통을 하고 있다. 그녀는 어머니가 권총 자살한 충격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살다 그만 언어를 잃어버리고 만다. 아버지(야쿠쇼 코지 분)와의 소통은 말할 것도 없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녀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벽을 쌓기만 한다. 그녀의 집 벽에는 가족사진들이 붙어 있다. 그 중에는 아버지가 모로코 사막의 여행 안내자(핫산)와 함께 찍은 사진도 한 장 들어 있다. 첫 시퀀스에 나오는 윈체스터 라이플은 바로 치에코의 아버지가 모로코 여행 안내자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것이 여기에서 복선으로 삽입된다.

에피소드 넷.
모로코 사막을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는 미국인 부부 리처드(브래트 피트 분)와 수전(케이트 블란쳇)도 함께 앉아 있다. 그 두 사람은 셋째 아이(샘)를 잃어버린 상실감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지금 모로코를 여행 중에 있다. 그들 부부는 히스패닉 보모인 아멜리아에게 두 남매를 맡겨 놓은 채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중이다. 갓난아기 샘이 죽었을 때 리처드는 두려움에 잠시 가족을 떠난 일이 있었는데, 아내 수전은 남편의 도피를 용서하지 못해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갑자기 수전이 기대고 있던 버스 차창의 유리가 균열되면서 수전의 목은 피범벅이 된다. 압둘의 둘째 아들 유세프가 발사한 총알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것이다. 버스는 모로코의 벽지 마을에 한동안 정차되고, 수전은 모로코인 수의사에 의해 응급 처치를 받는다. 리처드는 미국의 여동생과 모로코 주재 미국 대사관에 연락을 취하며 구급차를 요청하지만 첩첩산중 일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꼬이기만 한다.
이 영화는 멕시코의 천재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44)의 세 번 째 영화이다. 그는 첫 영화 <아모레스 페로스>(2000)로 세계 최고의 예술영화 축제인 칸느영화제에서 ‘천재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그 후에 그는 숀 펜과 나오미 왓츠를 주연으로 기용한 <21그램>으로 다시 한 번 그 독특한 영상과 다른 시  공간의 사건과 인물들이 서로 맞물려 얽히고설키는 입체적인서사 구조의 내러티브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영화 <바벨>은 그의 ‘진실 3부작’ 중의 마지막 영화로, 2007년 1월의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헐리웃 외신기자 클럽이 수여하는 글든글로브 영화상은 오스카(아카데미) 영화상의 전초전으로, 여기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은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수상될 확률이 높다. 이 작품은 2007년 2월 25일 개최되는 제79회 아카데미 영화상에 작품상과 감독상 등 6개 부문이 노미네이트되어 있다. 2006년 칸느영화제 감독상 수상, 전미 비평가협회 선정 올해 10대의 영화 선정, AFI 10대 영화 선정, 뉴욕 비평가협회 10대 영화 선정이라는 화려한 수상 경력은 이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와 감독의 독창적 감각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멕시코 출신의 알폰소 쿠아로, 델 토로와 함께 ‘멕시코 3총사’로 불릴 만큼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는 현재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주해 살고 있다. 미국영화에 의한 영화 시장 잠식으로 자국 영화 제작의 터전을 잃은 멕시코의 열악한 환경이, 어쩌면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한 그런 천재 감독을 배출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로코의 사막과 미국 샌디아고, 그리고 일본의 도쿄와 남미의 멕시코 등 3개 대륙과 4개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사건과 인물이 시퀀스 별로 서로 교차하며 맞물리는 내러티브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나비효과처럼 모로코 사막에서 울린 한 방의 총성으로 일파만파로 사건이 전개되는 독특한 서사 구조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단절된 사건과 인물들의 교차에 의한 순환구조의 입체적인 내러티브는 각본을 담당한 길레르모 아리가의 공이 크다. 감독 이냐리투는 이 영화를 통해 언어와 문화가 다른 국가와 인종들을 서로 균열시키는 소통의 단절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결국은 그것들을 극복하고 순수한 영혼과 정신이 상호 교류될 때 그러한 소통의 단절은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염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주제의식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캐스팅에 있어서도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등과 같은 일본, 멕시코, 미국 등 다 국적의 배우들을 동원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소통 단절과 극복의 여러 가지 징후들

이 영화는 언어와 문화 환경의 차이, 그리고 정치적 이슈를 비롯한 후기 자본주의 병리적 징후 로 인한 소통의 단절의 현상을 에피소드 곳곳에 병치해 놓고 있다.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치에코의 에피소드는 인간의 본질적인 소통의 병리적 징후를 선명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치에코는 치과에서 충치를 치료하고 있다.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입안을 살피고 있는 의사에게 여러 차례 키스를 시도하기도 하고, 의사의 손을 잡아 자신의 몸에 접촉을 시도한다. 일반인의 시각에는 그녀의 그러한 시도는 비도적인 행태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그녀 자신에게는 영혼의 교감을 통한 진실의 전달이라는 갈증이다. 그러나 의사는 그녀의 영혼의 소리를 읽지 못한 채 당황해 하며 그녀를 진찰실 밖으로 내쫒는다.
그렇지만 마미야라는 젊은 형사와 아버지의 에피소드는 그러한 소통 단절의 극복을 완성시키고 있다. 아버지가 모로코인 사냥 안내인에게 선물한 총이 미국과 모로코의 외교 분쟁으로까지 번지자, 젊은 형사 마미야는 아버지가 없는 사이에 그녀의 아파트를 방문한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마미야 앞에 선 채, 그의 손을 잡아당겨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비윤리적 행위로 영혼의 교감을 원한다. 마미야가 그러한 그녀를 따스한 눈빛으로 포옹하는 행위를 통해 소통 단절의 극복을 형상화해 보여 주는 대목은 뭉클한 감동을 유발한다. 밤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알몸으로 베란다에 서 있는 딸을 포옹하는 장면 역시 소통 단절의 극복을 상징하고 있다.
모로코 오지 마을에서의 에피소드 역시 소통의 단절과 극복을 보여 주고 있다. 관광버스를 무한정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관광객들과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는 리처드가 실랑이를 벌이는 대목, 모로코인 수의사가 응급처치를 하려 하자 이를 적의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거부하는 수전의 대목 등은 소통의 단절이 얼마나 인간 영혼을 황폐하기 하는 것인지를 반어적으로 역설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리처드와 수잔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모로코 주민들의 관심과 사랑에 눈물을 흘리며 이기적인 자신을 헐뜯는다. 고통을 참지 못하는 수전에게 모로코인 노파가 아편이 든 담배를 빨게 하며 고통을 잠재워 주며 머리를 쓰다듬는 대목, 모로코 소녀가 전통 차를 대접하자 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리처드, 구조 헬기 앞에서 고마움의 표시로 리처드가 돈을 건네자 이를 한사코 거절하는 모로코 사내의 따스한 눈빛 등은 소통 단절의 극복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유세프의 총질이 미국을 향한 테러 행위라고 역설하는 아나운스먼트는, 9  11 사태로 인한 미국의 타 인종에 대한 두려움에서 근거하는 신경질적인 반응임을 알 수 있다.
멕시코인 가정부 아멜리아의 에피소드는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모성적 인간애를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녀는 국경 검문소에서 조사를 받다 사촌 동생의 음주 운전 적발로 인해 도주한다. 국경 너머의 캄캄한 어둠 속에 버려진 그녀와 미국인 두 아이는, 극한 상황 속에 처한 인간의 본질적 상황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갈증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그녀는 국경 수비대의 순찰차에 의해 발견되고, 그녀는 불법 체류자로 밝혀지게 된다. 심문을 하고 있는 미국인 경찰관은 아멜리아의 불법 체류라는 현실적인 사안에 대해 끊임없이 추궁하지만, 그녀는 사막에 버려진 미국인 두 아이의 안부를 묻는 본질적인 인간애를 우선하고 있다. 미국인 두 아이의 안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 아멜라아의 참회의 눈물은 소통 극복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좋은 사례이다. 멕시코 출신의 이냐리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교류보다는 자국의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왜곡된 태도를 신랄하게 야유하고 있다. 모로코 경찰의 추적에 형을 잃은 유세프가 손을 들고 투항하며 모든 것은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울먹이는 장면은, 팍스 아메리카나와 같은 강대국의 정치적 이슈의 그늘 아래에서 허덕이고 있는 약소국가의 명암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 같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어둠 속에 있는 나에게 밝은 빛이 되어 주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감독의 헌사와 이 장면이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헌사의 의도는 어쩌면 아직 영혼이 순수한 미래의 아이들에게서만이 이러한 소통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냐리투 감독의 전작인 <21그램>에서는 사건과 인물의 병치와 교차에 의한 내러티브의 순환적 구조가 생략에 의한 장면 전환이 비약되어 화면을 읽는 데에 많은 고통이 따르지만, 이 영화 <바벨>에서는 감독의 그러한 자의 식적 장면 전환이 많이 순화되어 시퀀스 별로 시  공간과 사건을 순차적으로 교차하여 다소 정돈된 느낌을 주고 있다. 전작에 비해 이 영화는 주제의식으로서의 메시지와 극적 상황 전달로서의 장면 분할이 정리되어 있다. 헨드헬드 카메라에 의한 촬영은 동시대적 감각으로서의 호흡이라는 사실적 느낌과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소통의 단절을 극복하는 대목마다 애절한 기타의 선율이 흐르는 영화 음악 역시, 마음의 문을 닿고 벽을 쌓아가는 현대인들의 삭막한 영혼을 적셔주고 있다.

<바벨>이 의미하는 희망의 메시지

구약성서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을 쌓은 이야기가 나온다. 노아의 홍수 이후, 인간은 흩어짐을 막고 자신들의 욕망을 이룩하기 위해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는다. 이를 안 야훼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을 징벌하기 위해 그 때까지 하나였던 인간의 언어를 다르게 함으로써 바벨탑을 쌓는 무모함을 중지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이처럼 인간은 언어가 달라짐으로써 인종과 국가를 달리 했으며, 이로 인해 인간과 인간, 더 나아가서는 인종과 인종의 소통의 단절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개그 프로그램 중에 ‘대화가 필요해’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역시 가족과 이웃간의 대화의 부재에 의한 소통의 단절이라는 자성적 성찰을 담고 있어 이 영화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 영화 <바벨>은 그러한 구약 성서의 소재에서 영감을 얻어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병적인 징후와 국가 간의 소통의 단절을 어둡게 제시하고, 모든 문명과 문화의 허울을 벗어던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영혼의 교감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감독 이냐리투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스카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봐요. 그리고 내 삶에는 아직 오스카보다 더 중요한 게 많습니다.”라고 묵시적은 발언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자국민의 보호와 이익만을 우선하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 페쇄적인 정신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적인 가치를 우선하는 영화에 수상의 영예를 주는 아카데미 영화제가 이냐리투의 그러한 풍자와 역설을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대화의 부재에 의한 소통의 단절이라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거나, 혼탁한 상업주의에 의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영화는 소통 단절의 극복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모든 문명의 허위를 벗어던진 후에 오로지 순수한 영혼의 교감에 의해서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처방을 이 영화는 교시하고 있다.

 감독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멕시코)
 제작연도 : 2006년(미국)
 각본 : 길레르모 아리가
 러닝 타임 : 142분
 출연 :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외

'━━ 감성을 위한 ━━ >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바라기  (0) 2007.03.05
바벨 - 드라마영화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  (0) 2007.03.04
'트로이(Troy)'  (0) 2007.03.03
[스크랩] 7인의 신부  (0) 2007.03.02
샬롯의 거미줄  (0) 2007.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