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장 고무신과 검은 운동화 - 정진철
형제는 많은데 집안이 가난하여 한입이라도 덜어야 할 형편이었므로 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 혼자 외할머니한테 보내져서 전학을 갔다. 그당시 하도 먹지를 못하여 삐쩍 마른 모습에 체구도 왜소한데다가 성격도 내성적이어서 학급내에서 나하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시간만 있으면 자주 놀러 가던 곳이 동네 교회였다. 교회는 작았지만 아담했었는데 주변에 미군 부대가 있어서인지 가끔 C 레이션이나 쵸코렛 같은 것을 나눠 준다는 것이 소문이 나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어린 아이들이 많이 다녔다. 주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먹는 것을 나눠 주고는 했는데, 그때만 되면 모두들 똘망 똘망한 눈으로 혹시라도 자기 순서를 빼앗길까봐 바짝 긴장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제인가 운동장 한켠에서, 먼지가 날리는 맨땅 위에서 방과 후에 아이들 몇몇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지금처럼 제대로 된 공이 아니고 물렁 물렁한 정구공을 가지고 편을 갈라서 돌멩이로 만들어 놓은 꼴대에 공을 차 넣는 축구 놀이였다. 그러던 중에 한편에 사람이 모자라서 우연히 내가 끼어 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방과 후에 혼자 지내는 외로움은 면할 수 있었다.
그당시 우리들 대부분은 깜장 고무신들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축구를 할때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하였는데 극장집 아들만 유독 검정 운동화를 신고 펄펄 날라 다니며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는데 그때만 해도 그 아이는 부잣집 아이라 운동화를 신고 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 했을뿐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고 다만 나도 한번쯤 신어 봤으면 하는 마음은 감출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중학교에 다니는 사촌형이 다니러 왔다가 그 형이 신고 있던 운동화를 쳐다 보며 부러워하는 눈치를 채고 얼마후 헌 운동화지만 나보고 신으라고 주고 갔다. 나에게는 조금 컷지만 하얀 끈을 바짝 졸라 메고 극장집 아들 못지 않게 날라 다녔다. 낡은 운동화였기 때문인지 몇 번을 실로 꿰메고 했는데도 그렇게 뛰어 다녔으니 온전할 리가 없었지만 보물 단지 마냥 줄기차게 신고 다녔다.
운동장에서 힘들게 뛴 날은 더 배가 고팠는데 혼자 사시는 외할머니도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여 밥은 커녕 감자 조차도 실컷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쩍 교회에 기웃거리는 횟수가 많아지게 되었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아니더라도 가끔 의외로 옥수수나 고구마도 얻어 먹으면서 허기를 달랠 수가 있었다.
드디어 축복의 날인 성탄절이 다가왔다. 그날은 교회에서 떡국도 주고 선물도 주었다. 다른 아이들 보다 조금 일찍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나서는데 아랫동네 윗동네 아이들까지 모두 몰려와서인지 교회 현관에 고무신과 운동화들이 뒤섞여 신발들이 너무 많아서 내 운동화가 어디 있는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찾아보다가 깨끗한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내가 신어 보니 내발에 꼭 맞았다.
그 신발을 신고 이리 저리 내 신발을 찾으려고 했으나 보이지를 않아 그냥 교회문을 나섰다. 그 신발에 욕심이 나서 건성으로 찾았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오는 도중에 그렇게 마음이 두근 거릴 수가 없었다. 교회를 벗어 날수록 양심의 가책이 크게 느껴졌다. 운동화 주인이 얼마나 속상할까하는 생각에 몇 번을 다시 돌아가서 운동화의 주인을 찾아 돌려주려고 되돌아 서다가는“ 이젠 다들 집으로 돌아 갔을거야 , 지금 가 보아도 아무도 없을거야. 차라리 내일 교회에 가서 물어 보면 주인을 찾아 줄 수 있을거야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그 이튿날은 못가고 며칠 후 나는 운동화 대신 깜장 고무신을 신고 교회에 찾아 갔다. 교회 일을 보시는 분을 만났으나 성탄절 날 운동화 잊어 먹은 아이 보지 못했느냐고 물어 보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으나 끝내 입밖으로 내보내지는 못했다. 며칠 있으면 그 성탄절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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