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성 교회 내부, 그림은 예수께서 나인성 청년을 살리시는 모습이다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 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하시고 가까이 오사 그 관에 대시니 관을 멘 자들이 서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눅7:11~17)
단
단은 고대 이스라엘 북단에 있던 도시로 헬몬선 남쪽 기슭에 있으며 두로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중 남북으로 갈라지는 지점으로 텔 단(T. D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93년 7월 21일 이스라엘 북부의 중요한 유적지 텔 단의 한 발굴자는 성문 밖 광장의 나지막한 돌담을 파헤치던 중 잘 다듬어진 새카만 돌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대부분 구조물들이 냇물에 다듬어진 매끈한 석회암이기 때문에 이 조각은 쉽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돌을 들쳐낸 순간 지금까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 뒷면에는 히브리어와 모양이 비슷한 고대 아람어 기록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문화가 발달했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발굴에서도 이러한 기념비의 발견은 대단한 일인데 기록물이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이스라엘에서 그것도 석비의 형태이기 때문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석비가 발견된 단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북쪽 경계를 이루는 도시였다. 원래 단 지파는 중부지역을 분배받았는데 해안에 이미 정착해있던 블레셋 사람들 때문에 그곳에 자리잡을 수 없었다. 할수없이 그들은 북쪽으로 올라가서 맑은 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도시 레셈(수 19:47), 또는 라이스(삿 18:29)를 점령하고 자신들의 지파 이름을 따서 이 도시를 단이라 명명했다. 요단강의 이름은 원래 단으로부터 흘러 내려온다는 뜻인데 세 군데의 원류 중에서 단의 샘이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길이 32cm 폭 22cm 크기의 석비 조각에는 고대 아람어로 모두 13줄이 기록돼 있었다. 비록 부숴진 조각이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아람의 한 왕이 이스라엘의 왕을 죽이고 정복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발굴자들은 곧 아람의 왕 벤하닷이 단을 정복했다는 열왕기상 15:16-22의 사건을 떠 올렸다. 서기전 9세기 초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두 왕국의 끊임없는 전쟁은 유다의 아사왕이 아람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아사는 자신의 적 북 이스라엘을 징벌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의 금고에 보관된 은과 금을 모두 끌어 모아 다메섹 아람왕에게 조공으로 바쳤다. 아람의 왕 벤하닷은 아사의 부탁을 받고 단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북부지역을 유린했고 그 결과가 바로 단에 세운 승전비에 기록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석비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홉번째 줄에 새겨져 있는 ‘베잇트 다비드’, 즉 ‘다윗 왕조’라는 단어 때문이다. 구약성서 외의 기록에서 다윗이 처음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때부터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심 있는 고고학자, 역사학자, 성서학자들 사이에 ‘역사적 다윗에 관한 논쟁이 오늘날까지 뜨겁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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