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에서 젊은이들의 감동받은 표정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오십대쯤의 여성 강사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여러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죠?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이 있죠? 마찬가지로 공부도 재능이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어요. 성실만 하면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젊은이들 얼굴이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어제 새벽 한 시경 무심히 눈이 간 유튜브의 한 광경이었다. 재능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쎄시봉 가수 윤형주씨가 방송인터뷰에서 하던 말이 떠오른다.
“노래라는 게 연습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예요.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성대를 받은 걸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맑고 낭낭한 노래를 들으면서 어쩌면 저렇게 고운 목소리가 있을까 하고 감탄을 했었다. 노력도 재능인 것 같다. 만드는 음반마다 백 만장 이상이 팔린 쿨 그룹의 가수 이재훈을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다. 그는 나를 변호사아저씨라고 불렀다. 고등학교 시절 그 아이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노래하고 춤을 춰서 부모가 걱정 하기도 했었다. 아직 어리던 이재훈은 그때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아저씨 한 노래를 천번 부를 수 있어요? 안 될 걸요. 그리고 저는 체육관에서 밤이 새도록 율동 연습을 해서 하룻밤에 운동화 한 켤레가 다 닳아요. 그런데 내 노력을 모르는 남들은 내가 춤추고 노래하는 날라리로 아는 거예요.”
발가락이 형편없이 뭉그러질 정도로 연습한 유명 발레리나의 사진을 보기도 했다. 재능과 노력이 있다고 그 길이 평찬한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세간에 알려진 지리산의 이호신화백의 성장 과정을 어려서부터 이따금씩 봤다. 친척인 그는 열 살 이전부터 이미 그림에 두각을 나타냈다. 가난한 집안의 그는 소년 시절부터 밥을 벌기 위해 마음에 없는 일들을 했다. 어느 시점이 되자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그림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미대를 나오지 않은 그를 화단은 끼워주지 않았다. 그의 선생님은 미술관 안의 그림들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뉴욕미술관과 대영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우연히 그의 그림을 발견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화단에서 무시되었던 그가 어느 한순간 세계적 화가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동화 속에 나오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여러 재능을 주고 있다. 돌이나 보석을 깍는 재능, 연주하는 재능, 철을 다루는 재능, 가르치는 재능등 각양 각색이다. 다만 모두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꽃이 되고 어떤 사람은 그 꽃을 받치는 잎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았다. 활짝 핀 꽃도 급이 같지만은 않았다.
원로 소설가 정을병씨가 생존시 내게 이런 고백을 했다.“국내에서는 내가 이름이 났지만 외국작가의 좋은 작품을 보면 절망해요. 나 자신이 삼류가 아니라 사류 오류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오류라도 이 길을 걸어가야죠.”
유명한 가수 전인권씨도 뉴욕을 가보니까 거기 삼류도 자신보다 나은 것 같더라고 내게 털어놓았었다. 나는 일찍부터 재능이 없는 내 주제를 느꼈다. 운동을 잘하고 싶었지만 운동 신경이 없이 태어났다. 나름대로 노력을 해 봐도 안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노래를 하고 싶어도 음치였다. 음악성 자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공간지각능력이 없는 것 같았다.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공부선수들을 옆에서 구경하면서 좌절한 적이 많았다. 고교시설 선생님이 칠판에 어려운 문제를 낸 적이 있다. 나는 그 문제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반 한 친구가 앞에 나가 그 문제를 완벽하게 풀고 나서 선생님께 문제 자체를 잘못냈다고 지적하는 걸 봤다. 그 친구는 서울대 교수를 마치고 지금도 혼자 공부하고 있다. 노벨상 후보로 종종 오르는 물리학자인 고교 선배는 내게 왜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날고 뛰는 재주를 갖지 못한 달팽이나 거북이도 나름대로 자기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느린 달팽이도 열심히 기어서 노아의 방주 속으로 들어갔다고 믿는다. 나는 내 주제를 알려고 나름 노력했다. 둔해 빠진 거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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