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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아출신의 고백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21. 10:10






어떤 고아출신의 고백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보육원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여자아이가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날 오후였다. 엄마 아빠들이 우산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데 그 아이는 데리러 올 사람이 없었다. 우산도 없다. 혼자 남은 아이는 뒤늦게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걷는다. 햄버거집 창 안으로 아빠엄마와 감자튀김을 먹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아이에게서는 슬픔이 안개같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커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음식점에 가서 일을 했다. 더러 술을 따르라는 손님도 있었다. 싫었다. 남몰래 몸을 만지는 보육원 원장의 손길이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이 끔찍했다. 산다는 게 죽는 것 보다 더 힘든 것 같았다. 그 아이는 검은 강물이 내려다 보이는 다리 위에 서서 밤하늘을 쳐다본다. 잠시 자기를 버린 엄마를 떠올린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다리 난간 위로 올라간다. 


어젯밤 늦게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다. 

산다는 게 죽기보다 힘들다는 그 아이의 말이 마음 기슭에서 물결치면서 고교동창인 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도 고아 출신이었다. 항상 얼굴에 그늘이 져 있던 자그마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그림을 잘그렸다. 추운 겨울날 내 방으로 와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려주었다. 카드속에 포근한 초가집을 그려넣었다. 그 아이의 손이 쓱쓱 선을 그리면 봉당이 나타나고 좁은 툇마루가 보였다. 

대학입시준비에 바쁜 무렵이었다. 그 아이는 내게 다가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보아 뱀 얘기를 하곤 했다. 둔한 나는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인생의 늦가을 낙엽이 되어 떨어질 나이가 됐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빈대떡과 막걸리를 파는 집에서 나와 술잔을 나누다가 갑자기 과거를 꾸역꾸역 토해놓기 시작했다.

“내가 네 살 때였어.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시장을 갔었는데 내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나를 버리고 간 거야. 나는 그 자리에서 몇 시간을 진땀을 흘리며 울었지. 어린 내게는 하늘이 무너진 거지. 그 앞 가게 작업대에서 나를 지켜보던 재단사 아저씨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어. 그 아저씨는 나를 고아원으로 보내지 않고 잔심부름을 시켰지. 그 아저씨는 나를 초등학교에 보냈어. 나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어. 재단테이블 아래서 닥치는 대로 책을 달달 외웠어. 그 아저씨는 ‘이놈 봐라?’하면서 신기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중학교에도 보내줬어.”

우리가 같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세상은 명문이라고 했다. 자식교육에 열성인 집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걸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 속에서 그는 독특한 예외였다.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중학교에 가서도 그 아저씨를 도와 재단 일을 계속했어. 그런데 영어가 너무 재미있는 거야. 교과서뿐만 아니라 도서관에 있는 영어책까지 문장은 다 외워버렸어. 수학도 재미있고 공부한다는 자체가 너무 좋았어. 내가 가장 편하고 즐거운 게 공부하는 순간이었지. 중학교에서 전체 일등을 하니까 선생님이 그 학교에 있지 말고 명문고등학교 입시를 한번 쳐보라고 하는 거야. 합격하더라구. 

고등학교때 생텍쥐페리 작품이 심취했었어. 모두들 대학입시에 몰입할 땐데 나는 그럴 형편이 못됐어. 재단 일을 해야 하고 나를 도와주던 그 집안에서도 도움은 거기까지더라구. 그 집 아이들은 오히려 나를 시샘하는 것 같았어. 내게 넉달만 공부에 전념할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나는 서울대에 들어갈 자신이 있었어. 그런데 그게 안되서 한 단계 낮은 대학으로 간 거지.”

그가 장학생으로 나온 대학도 사회적으로는 명문대학의 반열에 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신문사에 입사해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일생을 언론인으로 지냈다. 그의 동료들은 내게 그가 천재가 아니냐고 물었다. 

아버지의 머리를 물려 받았는지 그의 아들과 딸이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정년퇴직하고 노인이 된 그를 고교동기들의 기도모임에서 봤다. 뒤늦게 배운 피아노로 찬송가 반주를 하는 그의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의 인생에 고아라는 것은 어린시절 잠시 그를 가렸던 어둠일 뿐이었다. 

엄마가 버린 아이들에게 하나님은 직접 빛을 비춰주기도 하는 것 같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야학에 나와 공부하던 고아가 있다. 대학동기인 친구가 그 시절 야학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아이가 성장해서 카톨릭의 훌륭한 사제가 됐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젯밤 보았던 영화는 자살하려던 고아 소녀가 호스피스 병동에 가서 일을 하면서 빛의 세계로 옮겨가는 과정을 그렸다. 어둠 속에서 살다가 어둠 저쪽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라도 그들의 영혼이 빛으로 나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 방법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