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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청년이 본 한국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22. 14:57





인도 청년이 본 한국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이천육년 겨울 한 달 동안 인도를 돌아다녔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인도 청년 ‘아지트’에게서 많은 걸 듣고 깨달았다. 작달막하고 까무잡잡한 그 청년은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에도 잠시 갔다 왔다고 했다. 오늘은 갑자기 잊고 있었던 그 청년이 세월 저쪽에서 내 마음속으로 쳐들어 왔다. 그때 그는 만나자 마자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

“인도에서는 확실한 거 아무것도 없어요. 그 때 그 때 달라요. 기차도 떠나는 시간이 기관사 마음이예요. 그렇지만 인도사람들 기차가 늦게 떠나도 안 싸워요 느긋하죠. 한국 사람들처럼 생각하면 막 싸우죠. 여기서는 인도사람처럼 생각하시고 이해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나는 인도 청년의 말에 거부감이 없었다. 내가 어렸던 시절 시골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출발이 운전수 마음대로였다. 승객들이 버스를 타고 기다리고 있는데 운전수는 그 옆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 운전수를 차창을 통해 무심히 바라보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인도는 인구가 많으니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챙기면 괜찮습니다. 특히 여권을 조심하시고 큰 가방에 넣지 마세요.”

그렇다. 어느 나라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일부 만나는 사람을 보고 그 나라를 좋은 나라 나쁜 나라로 평가하기도 했다. 지상에서 가장 포근한 나라라고 하는 스위스의 로잔의 골목에서 나는 돈을 강요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뉴욕의 역에서 돈을 뺏으려는 노숙자를 보기도 했었다. 나는 그의 말을 계속 듣고 있었다.

“저는 인도의 델리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는데 한국어의 을,를, 이, 가를 그때그때 어떻게 쓰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어려워요.”

외국어만 어려운 게 아니고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어도 어렵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말 중에 그 청년의 한국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물었다.

“제가 한국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저 한국을 사랑해요. 그런데 한가지 점만 고치면 한국 사람들 아주 좋을 거예요. 제가 서울로 갔을 때 사람들이 너무 무시하는 거예요. 방글라데시 사람이라고 막 깔봐요. 그거 안 좋아요. 한국 사람들 노동이 필요해서 외국사람들 끌어들인 거 아닌가요?”

그가 아픈 곳을 찔렀다. 그는 말을 조심해서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아직 어둠에 묻혀 있는 바라나시의 새벽길을 걸어 갠지스 강쪽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여기저기 소들이 웅크려 엎드려 있고 낡은 건물 귀퉁에는 모포한장을 덮고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그 옆에서 개도 코를 바닥에 박은 채 자는 모습이었다. 자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도청년 아지트가 이런 말을 했다.

“여기 바라나시의 거지들은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관광객이 만든 거지죠. 자식을 구걸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해요. 다른 하나는 갠지스강에서 죽으려고 찾아오는 철학적 거지예요. 전생의 업 때문에 거지로 살아왔다는 거죠. 거지로서의 이 생을 마치려고 하는 겁니다. 더 이상 나쁜 카르마를 짓지 않고 빨리 이 세상을 하직하려고 해요. 그래야 내세에서 편안히 살 수 있으니까요. 누가 한 푼 주면 먹고 아니면 말고 그렇게 삽니다. 인도는 살기 위해서 먹어요. 먹는 게 소박하죠. 밥을 물에 말아서 소금을 뿌려 먹어도 욕심이 없어요. 제가 한국에 가서 느낀 건 거기에서는 먹기 위해 사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리고 이마에 줄이 그어져 있거나 양미간이 좁혀진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거죠. 인도사람들 얼굴을 한번 자세히 보세요. 가난해도 명상적인 얼굴 아닌가요? 여기 바라나시에는 일본사람, 유럽사람들이 많이 죽으러 와요. 여기서 죽으면 바로 천국으로 간다는 거죠. 사람들이 여기 화장터에서 명상을 많이 해요.”

그 나라 공기에는 그런 철학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청년은 태생적으로 철학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덧붙였다.

“저는 세상을 수레바퀴로 생각해요. 예전에 인도가 잘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일 내려가 있어요. 그런데 보세요. 인도가 다시 상승하고 있잖아요? 미국이 더 이상 중국을 도와주지 않아요. 이제는 경계 대상이 된 거죠. 그래서 인도를 도와주는 겁니다. 수레바퀴가 바닥에서 올라가는 거죠. 인도사람이라고 그냥 게으르게 늘어져 있는 건 아니예요. 내 조카가 중학생인데 한국 중학생이 구구단을 외우는데 비해 우리 조카는 삼십 구단까지 외워요. 우리는 계산기가 필요없죠. 보통 사람들이 다 사십구단까지 외워요. 그래서 IT나 소프트웨어 핵무기를 잘 만들어요.”

그와 아그라시에 있는 오래된 성에 들어갔을 때였다. 광장에는 식민지 시절 그 성을 통치하던 영국 장군의 묘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식민지 시절의 잔재들을 모두 이렇게 보존하고 있나요?”

내가 물었다. 중앙청을 없앤 우리와 비교가 되는 것 같았다.

“우리 인도사람들은 영국의 통치 흔적을 그대로 둬요. 없앤다고 이백년 영국통치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죠.”

잠시 동안 인도 청년과의 대화에서 우리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낙후됐었던 우리의 옛 모습을 너무 빨리 잊은 것 같았다. 우리도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는 노예 같은 식민지 백성이었다. 성경은 너희들도 이집트에서 노예같이 살았으니 외국인에게 잘 대해주라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무시하는 건 천민자본주의의 갑질이었다. 그리고 그 청년의 말에서 역사를 배웠다. 부끄러운 부분을 지워버린 역사는 이미 역사가 아니었다. 여행은 나의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 구도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