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려보는 내 얼굴 - 윤모촌
이 글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납니다.
누구나 한두번쯤 거울을 보면서 배우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웃어본다든가
찡그려본다든가 살짝비틀어 이를 드러내며 웃어본다든가,
코를 들어올려서 이만큼 높았으면 좋을텐데..
요샛말로 턱을 요렇게 깎아냈으면 미인형일텐데..하고 요리조리 뜯어 고쳐보는 상상을 하지요.
공감대를 이루는 선생의 작품 놀랍게도 20년이란 세월이 지났어도 변함없습니다.
거울 가게앞에 비친 얼굴을 보고, 내 얼굴이 초라한 것을 의식하면서 걸을 때가 있다.
거울 속 얼굴이 많은 사람과 비교가 된다.
글 쓰는 사람 가운데는 자기의 글만큼 얼굴에도 마음을 쓰는 이가 있음을 보게 되는데,
주름이 잡혔을 나이에 젊은 시절의 얼굴을 내 보내는 심경을 알듯하다.
나는 내 용모가 잘 나지 못한 것을 자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남의 시선을 느꼈을 때는 무엇이 묻었나 싶어, 손을 들어 훑어볼 때가 있다.
그리고 나서, 얼마나 볼품이 없으면 시선을 끌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거울을 내려 놓고 찬찬히 들여다 본다.
눈에 띄는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다.
준수하지 않으면 엄장하다든가, 청초하지 않으면 소탈하다든가,
대추나무 방망이처럼 야무지지 않으면 언틀민틀이라도 해야할 터인데, 어느 한가지에도 당치가 않다.
여자가 아니니 화용월태(花容月態)란 말은 닿지않고,
그렇다고 선풍도골(仙風道骨) 은 더더구나 당치 않으니 말할 거리가 없다.
코 하나만 잘 생겨도 복이 있다는 데 그런 복도 없다.
못생긴 얼굴이라 해도, 표정에 따라 달라 보이는 수는 있다.
거울을 앞에놓고 몇가지 표정을 지어 본다.
턱을 끌어당기고 다문 입을 에_하고 처뜨려 거드름을 펴본다.
세상은 유들듀들해야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므로 돼지주둥이 모양처럼, 입술을 코 밑으로 추켜들고,
세상 하잘것 없구나 하는 시늉도 해 본다.
이빨을 드러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만사 즐거워서 살맛 난다는 면상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헌데, 이러한 표정들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뒤에서 이 꼴을 보던 안사람이 갑자기 무슨 짓이요 한다.
좀 잘나보이려고 연습 좀 해 보는거요 하자, 그런 얼굴을 하고 다녀보란다.
성을 내도 아이들이 우습다고 할 볼품 없는 얼굴 그대로일 뿐인데,
한 가지 내세울 것이 있다면 이목구비가 결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한쪽눈이 불구이던 소년이 있었다.
진학서류를 받아들고 원서에 붙여진 제 얼굴에 통곡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 소년을 생각하며 한쪽눈을 감고, 애꾸눈 형상을 해본다.
소년의 아픔에 짐작은 가지만, 소년이 아니고는 그 아픔을 헤아릴 수 없다.
사람이 이목구비를 갖췄대서 사람일까마는 그래도 사람들은 용모를 내세운다.
인면수심(人面獸心), 체면, 후안무치(厚顔無恥)등 얼굴을 중히 여긴 말들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허우대 좋고 풍채 있어도, 속에 가리워진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40년 정치사에서 그런 얼굴들을 많이 보아왔다.
나는 별다른 얼굴이 아니어서,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도 거리낄것이 없다.
정치인의 얼굴, 재벌 총수의 얼굴, 교육자의 얼굴, 시인과 예술가의 얼굴, 학자의 얼굴 등 많지만,
그런 얼굴을 그려봐야 내 얼굴로는 되지 않는다.
1950년대 TV가 처음으로 나왔을 부렵,엘리자베드 2세 영국 여왕은 크리스마스 연설 때,
그때까지의 라디오 마이크를 바꿔 TV 카메라에 얼굴을 내놓았다.
연설문을 읽는 모델의 필름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의표정을 취했다고 한다.
생긴 대로의 얼굴 이상으로 꾸며 보이려는 것은 여왕도 마찬가지였던가.
얼굴에 자신이 없는 내가, 미남이라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관상을 볼 줄 안다는 친구가 얼굴 바탕이 예쁘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붙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것은 내 궁상을 듣기 좋게 한 말이다.
거울을 들여다 보니, 홍안소년시절에 늙은이 시늉을 하던 장난이 떠오른다.
나지도 않은 수염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면서, 입가를 실룩거리던 장난...... .
거울에 대고 지금 그 시늉을 해보니, 엊그제같던 그 시절의 얼굴엔 주름과 자조(自嘲)만이 가득하다.(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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